가포Band
교회 사역(부서, 목장, 선교회 등)과 개인 활동, QT, 독서 등을 자유롭게 나누는 공간입니다.
개인적인 신앙에 대해서 간증합니다
2015-08-21 17:51:09
이예현
조회수 1830
안녕하세요 예현입니다.집으로
돌아가는 기쁜 마음을 가지고 온지 벌써 시간이 지나 다음 주면 다시 유학을 떠납니다. 역시 집은 특별히 무엇을 해야겠다는 마음보단 가족과 친구들과 교회에 갈 수 있는 평범한 것이 제일 보람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밥을 해주는 누군가가 있음이 엄청난 행복이었고, 통금시간에 친구들과 못나눈
시간을 뒤로한채 집에 오는 등 정말 익숙한 아쉬운 시간들에 금방 시간이 지나간 것 같습니다. 교회 수련회도
저의 신앙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합니다. 수련회를 새벽기도로, 미디어금식으로 준비하는 정성을 드렸고 그 정성만큼 은혜를 사모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더욱
은혜스러운 것은 전주의 선교문화를 체험하며 한국의 복음화를 위해 성령의 열정으로 순교하신 선교사님들의 헌신을 느꼈고 또 우리의 복음이 감사함의
제약으로- 복음화에 열정과 약속 함께- 시작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다짐도
했습니다. 이제는 익숙한 것도 미루고 제 책상에 앉아 저의 신앙을 간추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됩니다. 지난 2년 동안 네덜란드에 머물면서 저에게 공부 뿐만이 아니라, 지난 신앙을 되짚을 수 있게 될 기회를 허락해주었습니다. 마침 너무나 감사하게도 대학교 학사를
연수중이신 한국 목사님을 만나, 지속적으로 큐티를 하면서 신앙을 다시 점검하게 되었습니다. 타지에서 바라본 한국교회의 현재모습에 대해서 아무런 제약없이 토론하고, 믿음이 무엇인지,
나 자신을 되도록 솔직하게 보여주며 하루 한번씩 만나 모임을 가졌습니다. 유학 중
기도모임이 위로적인 차원임을 떠나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에게 신앙이란 무엇이었고,
어떤 의미와 어떤 방향성을 가지게 되어 성장시켜 나갈지 되돌아 보았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묵상을 여기에 글로써 진지하게 담아보려고 합니다.목사님의
자녀로써, 저에게 신앙은 길지만 결코 깊지는 않습니다. 깊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단연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영접하는 것에 문제가 아니라 단지 그 영접에 개인적인 접점을 찾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외국에 나와 목사님의 말씀보다는 종교관에 대해서, 신의
존재에 대해서 사람들과 얘기를 하며 젊은 영향을 받은 계기가 많았습니다. 그 영향들이 신앙에 대해서 계속해서 스스로 질문을
구하게 되었고, 그 질문들은 양심의 가책이나 거리낌보다는 저의 신앙에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분명
현대적인 자신의 이성적인 사고에 부딫히고 타협할 수 밖에 없는 기독교의 모습에
신앙이 굳건하다고 섣불리 말하는 것은 나 자신만의 단편적인 진리로 무장한 신앙의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말이 진리라 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현대 과학과 철학의 쟁점에, 저와 같은 청년들이, 무신론자와의 대립하는 위치에 놓여지게 되었습니다. 호전적인 무신론자, 그들을 이교도로 받아들인 그리스도인과의 싸움은 이따금 개판을 이룹니다. ‘개독교’라 놀림받은 슬픔 시선에, 제가 보기엔, 나날히 냉철해지고
비판적인 사회의 시선에서 우세할 만한 어떤 지식이나 그 것을 보여줄 신앙인의 모습은 이미 정해져있는 무관심과 배척으로 정해져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게으른 교회의 배척이, 교회의 문턱을 넘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무엇인가 선을
긋는 다는 인식이 느껴지게 됩니다. 교회의 자립적이고 전통적인 종교적 규범에 있어서 개인의 신앙의 넓이가
고착되기에 경험과 인내가 따릅니다. 약간은 범위를 넓히면, 십자군 전쟁이나
마녀사냥과 같은 기독교만의 인간적인 절대적인 가치를 둠에 있어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 결코 홀로코스트의 극단적인 예만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죄의 인지에 맹점을 가졌을
때 인간으로써의 믿음의 모순을 보여주게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에, “신앙은 비타협적이며 타인에 존중과, 겸손하지만 숭고한 타협적인 모습으로 성장해나간다”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은 하나님의 권력에 무기력하지만 매력적이고 겸손한 메세지로 예수님을 닮아 살아갈 그리스도인의
현대적인 철칙을 제시해줍니다. 예수님은 왕국이 이 세상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정치와 문화에 교회의 자립에서 신의 것은 신에게 주고 카이사르는 카이사르에게의 적용이 억압적 관용이 아닌 낮은 개방된 위치에 주님을
닮는 것이 교회의 방향이고 그 안의 저의 모습 또한 비슷하지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방향은 제게 고통적인 부르짖음보단
더 이성적이고 자문하는 기도를 구하도록 요구하고있습니다. 신앙을 계속해서 다시 묻는 것이 제 신앙으로 굳건히
자리을 수 있는 것이 지금 제가 구하고 있는 주제입니다. 개인적으로 경험해야하는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함에
뜨거운 열정이 필요하며, 또 사회적으로 신앙을 굳건히 지켜나가야할 이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아직은 훈련이 필요하고 정확히 말할 것이 없고 저도 아직이 무엇이 확실한지 정하는 것도 싫습니다. 계속되는 시험가운데 제 자신이 성장하는 주님의 역사를 기대하고 또 쓰임을 받은 미래에도 기대합니다. 이 글에 해주실 충고, 조언 감사하게 받겠습니다.임마누엘 하나님을 찬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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