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작은 나무 십자가의 비밀
2010-09-17 16:30:58
가포교회의 선교동력자님들께
주님의 사랑으로 문안 인사를 드리며,
일본선교의 지난날들을 뒤돌아보며 쓴 선교엣세이를 보내드립니다.
우리의 일본선교의 모든 열매는 가포교회의 것들입니다.
그 동안 기도와 사랑으로 후원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좋은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인숙 선교사가 드립니다.
"신비한 작은 나무 십자가의 비밀"
일본인에게 꽃은 삶의 일부분이요,
종교의식에까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현관 입구에는 늘 꽃이 있고, 차를 마시고 손님을 맞이하는 방은 물론이고,
벽에 붙어있는 카미다나(집안에 신을 모셔놓은 선반)의 앞에 언제나 꽃이 있다.
불당에 꽂는 꽃은 ‘불화’라는 소재로 작은 꽃다발을 만들어 슈퍼나 꽃집에서 팔기도 한다.
특별한 날이 되면 꽃집은 성황을 이룬다.
계절마다, 명절마다, 행사마다 정해진 소재를 써서 꽃꽂이를 한다.
정초에는 소나무 가지를 넣는다거나, 하얀 국화는 장례식이나 불당에 주로 쓴다거나…
그래서 나는 일본에 와서 하얀 국화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일본인들은 어떤 일정한 틀(와쿠)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똑 같이 움직이기를 좋아한다.
다른 사람과 다르게 되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는 것 같다.
똑같이 입고 똑같이 행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튀어나게 보이는 것을 불편해 한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좀 크다.
만약에 일본에서 병문안을 갈 일이 있어,
꽃집에 가서 꽃을 고른다면 절대로 화분에 든 꽃을 사지 말라고 일러주고 싶다.
난이든 어떤 꽃이든 화분에 든 꽃을 예쁘게 포장을 해서 가져간다 해도 마찬가지다.
뿌리가 있는 꽃은 금물이다.
왜냐하면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사람에게 병원에 ‘뿌리를 내리라’는 의미를 주기 때문에 금기로 되어 있다.
일본은 이렇게 어떤 사물이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여 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십자가는 본래 흉악한 죄인을 다루는 형틀이었다.
예수님도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리셨으니 말이다.
이런 흉한 형틀이 구속의 은혜의 형틀이 되고부터 십자가의 이미지가 정반대로 바뀌었다.
때로는 크리스천이 아니더라도 십자가 목걸이를 걸고 다닌다.
자기를 보호해 주고 축복해 준다는 의미의 상징으로 믿기 때문이다.
저주가 축복이 된 십자가는 인류의 소망이 되었다.
한때, 강단 앞에 걸어놓은 십자가에 대해 우상의 시비가 있어, 십자가를 내린 교회도 있었다.
구약성경을 읽다 보면,
이스라엘백성이 섬기던 우상 중에 광야에서 불뱀에게 물려 죽어가는 백성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이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살 방법을 가르쳐주신 놋뱀이 있다.
놋뱀을 장대에 달아 올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자는 불뱀의 독(죽음)에서 구원을 받았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예표하는 사건으로 일회용으로 끝났다.
그런데 놋뱀을 만들어 걸어놓고 복을 빌고,
병을 치료해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을 하나님은 우상이라 말씀하셨다.
만일 십자가 그 자체를 믿고 있다면 분명히 우상이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십자가의 도를 묵상한다면 은혜가 된다.
십자가를 떼어놓고 기독교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불교식 장례식에 갈 때 검은 옷 위에
나무 십자가 목걸이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나는 크리스천이라는 것을 알리고
분향이나 다른 종교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기 위해서다.
우리 가족이 1993년 4월 12일에 일본에 들어 왔다.
공항에서 가까운 시스이그리스도교회(일본그리스도교단)의 협력선교사로 초청을 받았다.
담임은 호리쿠치이사무목사님으로 연세가 드신 분이었다.
목사님이 경영하는 유치원이 아주 컸는데 그 강당에서 예배를 드렸다.
우리 가족은 유치원 건물 4층에 있는 빈방에 세를 얻어 살았는데
전에 누가 살았는지 모든 살림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곳에 있는 물건은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허락이 있었기에 창고에 쌓아놓은 물건들(거의 버릴 것들)을
가끔씩 뒤져 보는 즐거움을 누리곤 했다.
한번은 물건들을 뒤지는데 ‘작은 나무 십자가’가 눈에 띄었다.
길이 40센티 정도의 짙은 갈색 나무 십자가는 니스칠도 잘되어 반질반질 빛이 났다.반가웠다. 수건으로 먼지를 닦아서 집안 한 곳에 걸었다.
보고 봐도 예쁘고 멋진 십자가였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이국의 집에 십자가를 달고 나니,
훨씬 친근감이 생기고, 마음이 든든했다.
1년을 협력선교사로 있다가 사임을 하고,
나리타시에 집을 얻어 개척교회를 시작했다.
집안에서 제일 큰 방을 예배실로 꾸미고,
허전한 예배실에 시스이교회에서 가져온 작은 나무 십자가를 달았다. 잘 어울렸다.
2년간 작은 나무십자가는 예배실 같지않은 예배실을 예배실 같게 빛내 주었다.
그리고, 2년 후에 시스이지역에 교회개척의 기회가 왔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같은 부부가 우리 교회에 등록을 했다.
자기집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싶어 오랫동안 기도했다는 간증에 감동을 받은
남편은 곧 바로 교회를 시작하자고 했다.
일본의 첫 입성지인 시스이에는 우리 가족을 초청해 주었던 교회가 있었다.
이미 교회사역을 접고 있던 목사님(병으로, 얼마지 않아 별세)의 허락받았다.
1996년 10월, 시스이에 살고 있는 호사카요시히데형제 집에서 ‘
시스이 성서 그리스도교회’라는 이름으로 새 교회가 탄생을 했다.
자매가 레스토랑으로 사용했던 작은 식당이었는데 아늑하고 예뻐서 예배 분위기가 참 좋았다.
강단에는 두 번째로 작은 나무 십자가가 영광스럽게 달렸다. 참 예쁘고 근사했다.
매주, 나리타에서 1,2부 주일예배를 마치고 나면 차를 몰고 시스이교회로 달려가 4시의 예배를 드렸다.
개척 2년 만에 예배당도 짓고 교회가 성장하자,
개척 5년 반이 되어 한국선교사에게 교회를 맡기고 우리는 철수를 했다.
그 후, 세 번째로 작은 나무 십자가는 오오아미교회(독립, 현재는 오오아미시온예수교회로 개칭)로 다시 옮겨갔다.
니시모토카즈요자매의 집에서 시작한 가정교회는 놀라운 역사로 젊은 부인들에게 전도의 열매를 맺어갔다.
니시모토자매의 남편이 구원받아 세례를 받자, 부부가 힘을 합하니 부흥의 불길은 더욱 타올랐다.
여호와증인의 활동무대인 지역으로 이단 교리에 지식이 있는 이들에게
참된 복음을 가르치니 더욱 깨달음이 빨랐다.
여호와증인으로 7년간의 교육을 받고 간부급이 된 모치즈키치하루부인은 참 복음으로 구원받고 나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자료를 가지고 왔다.
자기처럼 여호와증인에 빠진 사람들을 전도하는데 써 달라고 했다.
전도되어 오는 30-40대의 부인들은 선교사가 가르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하여,
구주로 영접하고, 눈물을 흘리며 세례를 받았다.
젊은 부인들의 자녀들은 초등학생들로서 순식간에 가정교회안을 가득 메웠다.
6년이 되어,
같이 찬양으로 섬기던 후지키타카시목사에게 교회를 맡기고 또 그 곳을 떠났다.
그 후로 니시모토자매가 신학을 공부하여 지금은 담임사역자로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다.
아직 집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어 그 작은 나무 십자가는 아직도 그 곳에 머무르고 있다.
언젠가 새 예배당을 짓고 나면 다시 가져오고 싶다.
그 십자가가 내려오면 개척교회가 또 시작되지는 않을까…기대하면서 말이다.
작은 나무 십자가가 멈추고 있는 동안,
교회개척의 역사도 멈춰있기 때문이다.
한 때 버려졌던,
이 작은 나무 십자가는 나리타---시스이---오아미,
세 곳의 교회의 강단을 빛내며 개척동지로 같이 일했다.
작은 나무 십자가를 잃어버린 시스이그리스도교회는 그 존재가 사라지고 말았다.
교회를 이어 갈 후계자를 세우지 못한 교회가 지상에서 사라질 것을 아셨던 하나님은 이미 다른 곳에, 다른 종을 15년 전부터 예비하고 계셨다.
그리고 때가 차매, 그 십자가를 그리로 옮기셨다.
이 놀랍고 ‘신비한 작은 나무 십자가의 비밀’을 아는 자는 하나님과 우리 부부밖에 없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 : 18)
일본에서 이인숙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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