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Community)

말씀요약

말씀요약

[25.10.19 주일말씀 설교전문]
2025-10-19 13:00:00
가포매니저
조회수   23

요즘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이 어떠신지요? 만족하십니까? 삶에 설레임이 있으십니까? 아이들 말로, 사는게 재미 있으십니까? 
어떤 이가 말하기를 우리 삶이 <설레고 재미있으려면, 무료하지 않고, 익사이팅한 기대되고, 설레고, 살아꿈틀거리는 삶이 되려면, “날마다 삶의 신비를 느끼고 살아아ㅑ한다” 말합니다. 참 그렇죠. 우리가 살아가는 삶 자체가 신비로운 것이고, 우리가 얻는 구원이 신비로운 것이고, 생각해보면, 익사이팅한 것들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그런 하나님 나라 신비와 영적세계의 황홀함 속으로 부름받은 사람들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럼, 그렇게 인생에 재미도, 기쁨도, 만족함도 있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는 삶을 살려고, 노력합니다. 어떤이들은 쾌락을 추구합니다. 먹고 싶은거 먹고, 놀고 싶은거 놀고, 이성적인 만남도 거리감없이 누리고, 그럼 정말 만족할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삶에 지나친 방종은 자기자신을 망치고, 이웃을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또 어떤 이들은 바쁘게 살아갑니다. 바쁘게 사는 분들중에는 장말 일이 바쁜 분들도 계시겠지만,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찾아오는 삶의 권태, 회의 이런 것들이 두려워서 바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성공하면 인생이 만족하고 재미있을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성공하는 과정에 많은 것을 잃기도하고, 또 얻은 성공을 유지하려고 쓰는 에너지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이렇게보면, 인생을 그렇게 만족시키고, 재미있고, 기쁘게 살게하는 것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꾸 인류에 여러가지 종교가 많들어진 것인지도 모릅니다.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를 보시면, 이분은 인생이 너무 불만족스러워서 집을 나가버리고, 또 고민해보니, 인생이 고뇌와 번민뿐이라는 걸 알게된거예요. 
유교를 창시한 공자도 마찬가지죠. 이분도 삶의 재미와 만족, 이런것까지는 둘째치고, 어떻게하면 싸우지 않고 화목하게 지내냐.. 그러려면 서로를 인자하게 대해야한다 가르쳤던 분입니다. 
이슬람을 창시한 마호메트, 이분도 이땅에서는 도대체 만족한게 없다. 재미가 없다 해서, 인생이 고대할 것은 저 사후, 극락세계다. 해서.. 이땅에서 교리 잘 지킨 사람은, 나중에 극락세계에 가면, <남자들은 부인 5명과 살게될 것이다.>

사람마다 왜 만족함이 없는가? 다 이유가 있겠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뭐라 말씀하는가? 한마디로 <그 인생에 하나님이 없어서> 그렇다 말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과의 사귐>이 없기때문에, 인생에 <익사이팅하고, 설레고 재미있고, 만족한 것들이 없이> 산다는 것입니다. 
사귐이란게 뭘까요? 
무료하게 살고 있는사람도, 정말로 반가운 사람만나면 어때요? 말도 많아지고, 농담도하고, 잘웃고, 화색이 돌죠. 우리가 내가 원하는 좋은 사람들과 만나면, 참 좋습니다. 그런데요.. 우리가 어찌 내가 원하는 좋은 사람만 만나고 살수있을까요? 안되죠. 그래서 관계에서, 내가 원치않는 아픔도 느끼고, 실망도하고, 경계를 짓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인간관계는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럼 누구와의 사귐으로 나아가야할까요? 
오늘 사도는 이 사귐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3-4절을 보십시요.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이것을, 요한일서, 이 편지를 쓰는 것은, 너희들과 우리와 서로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런데. 우리와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그리스도 더불어 하는 누림이라> 그냥 인간과 인간과의 지지고 볶고, 만났다 헤어졌다, 좋았다 원수됐다 그런 인간의 사귐이 아니고, <온세상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와 그하나님께로 갈수있는 길과 진리, 생명이 되어주신 예수님과 더불어.. 그 안에서 누리는 사귐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귐이 있을 때, 뭐가 주어진다는 거예요? 4절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그래서 참 인생의 재미와 만족, 충만한 기쁨은, 하나님과의 사귐, 그 안에서 성도들이 함께 누리는 사귐을 통해서 일어난다 하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을 때, 어떤 유익을 누릴 수 있을까요? 
먼저는 <소유를 공유>하게 됩니다. 가족이 그렇죠. 남편게 아내것이고, 아내것이 남편것이고, 부모것이 자식것이고... 뭐 요즘은 계약결혼, 뭐 이런것이 나와서, 결혼할때, 가지고 온 재산은 노타치! 해놓고, 이혼하게되면, 서로의 소유를 침해하지 않는다 조건을 걸고 살기도 합니다. 통장도 따로 쓰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좀 그렇다 싶죠.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고 신뢰하고, 서로간에 하나되면, 니거 내거 구분이 잘 안되는 겁니다. 뭐 사랑하는 사람한테 돈 쓰는거 아깝지 않죠. 좀 아깝다 하면, 진짜 사랑한다 말하기 어려운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 사랑하면 <내 가진 재물, 그거 하나님과 공동소유인거예요. 뭐 더 엄밀히 따지면, 하나님것이죠. 내게 맡겨주신.. 그러니, 하나님이 이거에 좀 쓰자.. 그러면, <예 하나님, 하나님 소유이신데, 하나님 맘대로하세요.. 그래도 니 명의도 있으니, 사인해라> 그러시겠죠. 
물질뿐만입니까? <내 가족, 내 시간, 내 재능> 모든 것들이 공동소유예요. 
그럼 우리가 누리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것이 다 내거예요.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권세.. 그분의 영광까지.. 그게 다 내거예요. 그래서 신나는 거예요. 이게 익사이팅, 흥분되는 일 아닙니까? 내거 아닌, 내가 뭐 풀한포기, 나무한그루 심었습니까? 하나님 나라에.. 내가 한거 아무것도 없는데, 그걸 공동소유하자고 하시는 거예요. 세상에.. 
그래서 하나님과의 사귐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여러분들, 하나님과 친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또 사귐이 있으면, 친구가됩니다. 친구는 서로를 알아주는 거죠. 마음을 알아줘요. 소원이 뭔지, 아픔이 뭔지... 크게 말하지 않아도, 가까운 친구는 그 마음까지 아는 거예요. 정말 가까운 부부는 많이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알죠. 뭘 원하는지.. 
저는 아내하고 커피타임을 자주 갖는데, 뭐 많은 말을 안해도, 같이 있는게 좋은거죠. 
요한복음15:15에 보면,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그러니까, 우리 주님이 우리와 얼마나 친구하고 싶으신거예요. 우리와 가까운 친구가 되어주셔서, 그마음을 다 알려주고 싶으신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아픔, 고민> 이런걸 다 알려달라 그러시고, <우리의 기쁨, 꿈, 소원, 비전> 이런것을 나와 공유하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게 맡겨라> 그러면 내가 너를 도와주고 인도해주겠다..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얼마나 좋아요. 
그게 사귐으로의 초대입니다. 우리를 그 은혜의 자리로 초대해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초대에 우리가 마다할 것이 없죠. 
우리를 만족하게하고, 기쁨을 충만케하는 이런 사귐을 거부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죠.. 적극적으로 응하는 거죠. <주님,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를 주님과 더 깊은 사귐의 자리로 인도해주세요> 그렇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이런 주님과의 깊은 사귐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귐을 이루어갈 것인가? 우리 연약한 인간이, 하나님과 사귐을 갖는다는것이 불가능한 일인데.. 어떻게 해야하는가? 
바로 하나님께 나아갈수있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사귐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할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2가지를 생각해본다면, 
1.하나님이 크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크신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우주는 그 크기를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을 이 작은 머리로 알려한다는 것은 꼭 뭐와 같은가? 종이컵하나로 태평양물을 다 담아내려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그렇게하다가, 혼동이 되고, 하나님은 어디나계신다— 범신론자가 되기도하고, 하나님은 없다- 불신론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수있는 방법은, 단한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분이 당신을 계시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렇게 오신 예수님이 뭐라 하셨습니까? 
빌립이 하도 하나님을 보여달라 하니,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거에요. 
[요 14: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그래서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는 것은 예수님을 보면 됩니다. 예수님은 사랑으로 사람들을 대하시고, 사랑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시구나를 알게됩니다. 예수님은 의롭게 행하셨습니다. - 그래서 예수님과 3년을 살았던 베드로가 나중에 베드로서신에, <그분은 의로우신분이다. 죄를 보지 못했다> 말하는 거예요. 그런 의로우신 예수님을 통해서 <아!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구나>하는 걸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 폭풍을 잔잔케하셨는데, <이 자연법칙도 예수님께 순종하는 걸보니, 이 만물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구나> 하는 걸 알게됩니다.  
죽은지 사흘이나되는 나사로를 살리셨는데, <아! 영원한 생명을 하나님이 주실 수 있구나>하는 걸 알게됩니다. 
우리는 이렇게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되고, 그 하나님과의 사귐의 자리로 나아갈수있게 됩니다. 그럼 하나님께 나아갈수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그래서 두번째..  

2.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감히 누가 나아갈수가 있겠습니까? 
절대적을 순결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죄에 빠진 인간이 그 하나님과 사귐을 갖는다... 이건 겪에 맞지 않아도 크게 안맞는 일입니다. 
이렇게 생가해보세요. 
아주 예쁜 꽂다운 여대생이, 예쁜옷을 입고, 버스를 타려고, 버스정류장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목욕도 않하고, 얼굴도 새카맣고, 아주 누추하기 그지없는 냄새나는 옷을 입은 거지가 <아! 예쁘다>하고, 다가가서, <사귀자고 덤빈다면> 그게 될까요? 안되겠죠. 
그 그거지가 사귈만이 정말 있다면, 최소한 목욕하고, 옷이라도 갈아입고, 깨끗이 단장하고 가야하지 않겠어요? 
하나님과의 사귐이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귀려면, 우리가 목욕도하고, 새옷도 입고 그러고 가야하는데... 이게 될수없는 일이라는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 가까지로 와주지 않으시면, 우리가 하나님과 사귄다는 것이 불가능해요.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위해 해주신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신 거예요. 그분이 우리가 받을 죄의 천벌, 죄의 저주를 십자가에서 다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우리죄를 자백하면 그분이 흘리신 그 피로, 우리죄가 씻어지고, 누더기 죄의 옷을 벗겨주시고, 우리에게 새옷을 입혀주시는 거예요. 
그렇게 의로움의 새옷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가되는 특권을 받았으니, 이제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되었고, 그러니, 이제는 한가족이 되어 <거룩하신 하나님과 사귈수 있게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말씀을 보십시요. 
[엡 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히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크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있게 된것이고, 그분과 사귐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그럼 그 예수님은 정말로 믿을만한 분인가? 그것을 사도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3.예수님은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정말로 믿을만한 분인가? 우리가 누군가를 신뢰한다. 믿는다 할때는, 뭘가지고 그렇게 할까요? 
어떤 사람은 <나는 내가 본것만 믿어!> 아니, 정말로 그럴까요? 만일 어떤 사람이 그렇게 <나는 본것만 믿어> 한다면, 얼마나 그 인생이 협소하고, 제한적인 인생이예요. 자신의 인생을 제한하고 사는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누구를 안다, 믿는다하는것은, 누군가의 증언에의한 것인데, 그증언이 믿을만하다 하면 그냥 믿는거예요. 우리는 이순신장군, 세종대왕 우리 눈을 안봤어도, 그냥 있었다는걸 믿어요. 
원자, 분자가 우리눈에 안보여도, 있는줄 믿어요. 

그럼 예수님에 대한 증언은 믿을만한가? 
증인이 어떠냐에 달려있죠. 
먼저, 증인이 명몇이냐? 한명, 두명이면 수상할수있죠. 부활의 증인들, 여인들, 12명, 오백여명.. 
믿을만한 사람들인가? 평소에 거짓말많이하는사람들? 많이 배운사람들, 진실한사람들. 
그들의 변화: 베드로, 바울, 야고보가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우리가 보고 들었다. 증언합니다. 
우리 1-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0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첨부 파일
295 [25.10.19 주일말씀 설교전문] 가포매니저 2025-10-19 23
294 [25.10.19 주일말씀요약-주보용]    가포매니저 2025-10-16 24
293 [25.10.12 주일말씀 설교전문] 가포매니저 2025-10-14 34
292 [25.10.12 주일말씀요약-주보용]    가포매니저 2025-10-11 34
291 [25.10.5 주일말씀 설교전문] 가포매니저 2025-10-05 40
290 [25.10.5 주일말씀요약-주보용]    가포매니저 2025-10-04 42
289 [25.9.28 주일말씀 설교전문] 가포매니저 2025-09-28 49
288 [25.9.28 주일말씀요약-주보용]    가포매니저 2025-09-27 44
287 [25.9.14 주일말씀 설교전문] 가포매니저 2025-09-14 56
286 [25.9.14 주일말씀요약-주보용]    가포매니저 2025-09-13 60
285 [25.9.7 주일말씀 설교전문] 가포매니저 2025-09-07 57
284 [25.9.7 주일말씀요약-주보용]    가포매니저 2025-09-06 52
283 [25.8.31 주일말씀 설교전문] 가포매니저 2025-08-31 60
282 [25.8.31 주일말씀요약-주보용]    가포매니저 2025-08-30 53
281 [25.8.24 주일말씀 설교전문] 가포매니저 2025-08-24 66
1 2 3 4 5 6 7 8 9 10 ...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