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편지
태국 남부 핫야이 사람들
2007-01-27 09:29:33
김기준
조회수 1427
1. 핫야이의 위치 및 환경
남부 최대의 휴양도시인 송클라에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아이들이 모래성을 만들며 뛰어 노는 송클라 해안에 인어상이 있는데 고기를 잡으러간 남편을 기다리다가 인어가 되었다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와 보물(9십만 바트 상당)이 바위 밑에 숨겨져 있어 누구든지 손으로 바위를 밀어 바다에 빠뜨리면 그 보물을 차지할 수 있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송클라 주에 ‘핫야이’라는 한 도시가 있다.
핫야이는 도청소재지인 송클라보다 더 발전하였는데 이는 말레이시아인들의 영향 때문이다. 말레이시아로 가는 관문인 핫야이에는 대규모의 암거래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 들어온 물건들을 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핫야이를 찾고 있다. 그러나 핫야이 중심가를 조금만 벗어나면 길게 뻗은 고무나무와 농부들의 전형적인 삶을 볼 수 있다. 핫야이는 남부 최대의 교통 요충지이며 면적은 21평방km이다. 98년말 관청 통계에 따르면 인구는 약 155,558명(남 75,788 여 79,770)정도이다. 핫야이에는 공항이 1개, 기차역이 1개, 여러 개의 버스 터미널이 있고 백화점이 11개, 호텔이 95개, 은행이 37개, 극장이 7개 등이 있다.
2. 사회 성층 분석
핫야이 풍경
방콕에서 기차로 약20시간쯤 남쪽으로 내려오면 핫야이라는 도시를 만나게 된다. 하루에 한 두 차례씩 어김없이 쏟아 붓는 소나기가 핫야이의 맑은 하늘과 신선한 공기를 제공한다. 핫야이에 처음 발을 내딛는 순간 호흡부터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방콕은 항상 관광객들로 붐비고 눈을 따갑게 만드는 시커먼 매연, 그리고 상인들의 바가지가 너무 심한 반면 핫야이는 맑고 깨끗한 하늘로 사람들을 끄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핫야이는 태국에서 말레이시아로 가는 길목에 있기 때문에 기차역에 들어서면 말레이시아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기차역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사람은 ‘툭툭’운전기사이다. 기차역을 빠져 나오기가 무섭게 ‘툭툭’기사들이 모여들어 목적지를 물어보지만 핫야이 시내는 그리 넓지 않기 때문에 걸어서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기차역을 빠져 나오면 은행과 호텔과 쇼핑센터가 한눈에 들어온다. 기차역을 중심으로 이런 건물들이 우뚝우뚝 서있는 것은 외국인들이 주로 기차를 통해 핫야이로 들어오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시내 곳곳에 쇼핑센터들이 들어서 있고 그 주위에는 길에 물건을 내놓고 파는 가판대가 줄지어 있다. 도심에 대형 쇼핑센터와 함께 재래식 시장이 공존하고 있으며, 거리 가판대에 물건을 놓고 파는 사람들은 주로 무슬림 여성들이다. 중국인이 경영하는 상점은 입구에서 바로 볼 수 있는 곳에 조그만 불상세트가 놓여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으며, 상점 내부뿐만 아니라 심지어 셔터까지도 빨간색으로 장식되어 있다.
핫야이를 주로 찾는 외국인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말레이시아인들과 싱가폴인들이다. 이들의 모습은 태국인들과 비슷하기 때문에 거의 외국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을 찾는 서양인들은 많지 않기 때문에 쉽게 눈에 띈다. 핫야이 시내를 걷다보면 코끼리가 사람을 등에 태우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나가는 외국인에게 접근하여 코끼리에게 먹이를 줘보라고 손짓한다. 가끔씩 히잡(무슬림 여성들이 머리에 두르는 천)을 두른 무슬림 여성들의 모습과 짙은 오렌지색 천을 두르고 지나가는 스님들의 모습, 시내를 지날 때마다 눈에 띄는 맛사지 그림들이 아이러니지만 이곳도 역시 태국의 향락문화는 비켜갈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호텔마다 맛사지 그림이 걸려있고 어떤 곳에는 여자들의 사진까지 밖에 걸어놓은 곳도 있다. 그리고 현재 핫야이에도 휴대폰 바람이 불고 있다. 휴대폰을 가지고 거리에 자리를 잡고 휴대폰 대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핫야이 사람들에게 있어서 오토바이는 매우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시내버스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소유하고 있다. 남자이건 여자이건 오토바이는 서민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과 같다. 핫야이 여성들은 거의 바지를 입지 않고 치마를 입는다. 그런데 아무리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들도 오토바이를 잘 타고 다닌다. 오토바이 다음으로 중요한 교통수단으로서는 ‘툭툭’이다. ‘툭툭’은 택시와 미니버스의 기능을 합쳐놓은 것인데 손을 흔들어 ‘툭툭’을 부른 후 목적지를 말하면 툭툭기사가 목적지까지 데려다 준다. 핫야이 툭툭기사들은 조금 무뚝뚝한 느낌을 주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승객이 원하는 목적지까지 길을 모르면 멈추어 서서 주변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목적지에 내려주는 친절한 사람들이 더 많다. 앞자리에 가족을 앞자리에 태우고 영업을 하는 운전사들도 있다.
종족별 분포
핫야이 도시 내에는 크게 3종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타이인, 중국인, 말레이시아인 그밖에 소수종족으로는 인도, 파키스탄인등이 있다. 종족분포를 살펴보면 타이인 50%, 중국인 40%, 말레이시아인 10%를 구성하고 있다(1998년 말 현재 관청통계자료). 핫야이에는 중국인들이 상권을 잡고 있으며, 타이인들은 상대적으로 빈곤한 생활을 하고 있다.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타이인들이다.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까지 시장이 형성되는데 이때 많은 말레이 무슬림들이 물건을 사기 위해 모여든다고 한다. 이들이 구입해 가는 물건들은 주로 옷이나 쌀, 설탕 등의 식료품들인데 말레이시아보다 태국이 물가가 훨씬 싸기 때문이다. 핫야이를 주로 찾는 외국인들은 주로 말레이시인들과 싱가포르인들인데 이들의 관광목적은 주로 골프에 있다.
직업별 종족 분포도를 살펴보면 상인, 의사, 교사, 간호사 등은 40%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은 주로 중국인이다. 농부, 정원사등 35%로 타이인이며 공장 근로자는 15%를 차지하고 있는데 주로 타이인이나 말레이시아인들이다. 병원카드를 작성할 때는 환자 양부모의 인종을 적어 넣는 곳이 있는데 카드에 구분하고 있는 인종은 중국인, 타이인, 말레이, 기타로 되어있다. 전통적으로 중국계 태국인들은 태국경제를 지배하고 있었으며 태국인들은 정치를 지배하고 있었다. 핫야이 사람들이 선호하는 직업으로는 공무원, 의사, 간호사, 교사, 엔지니어등이다.
종교별 분포
태국은 불교의 나라이지만 태국의 남부로 내려갈수록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들이 많이 살고 있다. 태국 전체적인 종교별 분포를 살펴보면 불교가 90%이고 이슬람이 6%그리고 기독교2% 기타2%로 알려져 있다. 이와 비교하여 1998년 관청이 제공한 핫야이 지역의 종교 통계를 보면, 불교 72%, 이슬람 20%, 기독교 5%, 기타 3%로 무슬림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겉으로 보면 불교인의 수가 무슬림보다 절대적으로 많지만 어느 한 지역에서 이슬람 20%는 불교와 대결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며 남부지역의 이슬람 세력은 강하다. 핫야이 지역에는 불교사원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이슬람 사원이 2개, 성당이 1개, 교회가5-6개 정도 있다. 그러나 핫야이 지역에서는 이교도들간의 분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이며 핫야이 사람들도 서로의 종교에 대해서 존중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불교>
핫야이시내 어디를 가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건 역시 불교 사원이다. 태국에서 불교는 종교의 차원을 넘어선 생활 그 자체이다. 불교는 태국인들에게 만민이 평등하다는 철학을 심어주고 전통적인 사회형태를 유지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화려하게 장식된 사원으로 들어가면 나무에 색색의 줄을 걸어 놓은 모습이 눈에 띄는데 이것은 민속신앙과 불교가 혼합되어 나타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시시때때로 사람들은 개인이나 가족단위로 꽃과 초와 향을 가지고 불교사원을 찾아가서 금종이를 붙이며 절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불교인들이 경영하는 상점이나 집 안으로 들어서면 바로 눈에 띄는 곳에 소형불상세트가 놓여져 있는데 이것의 가격은 대략 500-900 바트이다. 그러나 무슬림이나 기독교인들의 가게에는 소형 불상세트가 절대로 놓여져 있지 않다. 그리고 인사하는 모습으로도 이들의 종교를 알 수 있는데 불교인들은 두 손을 모으고 합장하는 자세로 인사를 하지만 무슬림들은 절대로 합장하며 인사하지 않는다.
불교사원은 중국계 절과 태국계 절이 구별되어 있다. 핫야이에서 대표적인 중국계 절(TONG SIA TEMPLE)과 타이계 절(KOR HONG TEMPLE)을 비교해보면 전통적으로 중국계 절에는 코끼리 신상이 있고 포티사(POTISA)라고 하는 여자신상이 있는데 4개의 얼굴과 8개의 손을 가졌다. 전통적으로 어린이들은 절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절 옆에 학교건물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타이계 절(KOR HONG TEMPLE)옆에도 17년 전에 세워진 학교가 있다. 불상은 3가지 형태가 있는데 월요일 불상은 입상(walking), 화요일의 불상은 와신상(sleeping), 금요일에는 가부좌상(sitting)이다. ‘KOR HONG TEMPLE’에는 국왕(라마5세)의 신상이 모셔져있는데 이들에게 국왕도 신앙의 대상임을 알 수 있다.
타이 사원에는 화장터가 있었는데 화장터를 상징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그림을 살펴보면 땅 위에 살아있는 사람들의 생활이 그려져 있고 그 밑에는 뼈들이 많이 놓여있는 그림이다. 그 옆에는 두꺼비같이 생긴 불상이 있고 그 앞에는 인어 공주 같은 자세를 하고있는 상이 하나 있다.
<이슬람>
핫야이 시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스크가 두 곳이 있는데 마쓰지드 맛자모 핫야이(MASJID MAJJAMO HATYAI)와 마쓰지드 파키스탄(MASJID SAHE PAKISTAN)이다. 맛자모 모스크로 들어가는 입구 오른쪽에는 우두(기도하기 전에 손발을 씻는 정결 의식)를 할 수 있도록 수도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모스크 1층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이슬람학교가 있어서 어린이들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이곳에서 이슬람교육을 받는다. 그러나 라마단 기간 중에는 저녁식사를 마친 후 수업이 시작된다. 계단을 통해 모스크 2층으로 올라가면 깨끗하고 넓은 기도하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남자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곳이며, 한쪽 모퉁이에 커텐을 쳐서 여자들도 그곳에서 기도 할 수 있도록 장소를 마련했다.
핫야이 모스크의 특징은 이슬람을 상징하는 초승달을 둥근 돔위에 세우고 그 초승달 위에 별을 두었다는 점이다. 이 모스크에는 타이무슬림과 말레이무슬림이 많고 특히 말레이무슬림들은 라마단을 지키기 위해 태국 남부 말레이근방에서 와서 한달 동안 이 모스크에서 합숙하고 있다. 맛자모 모스크는 송클라주를 대표하는 모스크이며 송클라 무슬림 협회 회관이다.
맛자모 모스크에서 500미터정도 떨어진 곳에 파키스탄 모스크가 있다. 이 모스크는 1937년에 건립되어 1991년에 재건되었다. ‘이맘’이 파키스탄인으로 비교적 깨끗하지만 정통 모스크의 이미지에서는 많이 벗어났다. 두 개의 미나렛 위에 초승달과 별이 함께 달려있는데 둥근 돔의 모습은 없다. 모스크의 미나렛이 탑을 세워놓은 것 같은 모습이며 녹색과 짙은 코발트 블루를 사용했다. 파키스탄인들이 주로 이 모스크를 찾고 있다. 다른 나라에 있는 모스크와는 달리 파키스탄계 태국의 모스크에는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과 함께 별이 놓여져 있다. 파키스탄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니 파키스탄 국기에서 유래되었다고 대답한다.
이 지역 내에 여러 개의 무슬림 식당이 있는데, 무슬림들은 돼지고기와 피를 먹지 않으며 가축을 도살할 때도 그들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하기 때문에 무슬림 식당 입구에는 항상 무슬림 식당이라는 간판이 걸려져 있다. 그리고 모스크 근처에는 무슬림들을 위한 용품들과 옷감들을 파는 가게도 있다. 남부지역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은 라마단을 엄숙히 지키고 있다.
<카톨릭>
핫야이에는 성당이 하나 있다.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아침에 두번, 저녁에 한번 예배가 있다. 성당 바로 옆에는 카톨릭에서 운영하는 학교인 '생콩위티아스쿨'은 (핫야이 교육 참조), 복음을 전하는 일보다는 교육사업에 치중하고 있다. 학교 내에 여러명의 신부님이 계시는데, 작은 예배당에 모여서 매일 아침과 저녁에 30분씩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약10명 정도가 참석하고 있다.
2. 문화적 특성
신화와 상징
태국의 국왕은 모든 국민의 정신적 지주이다. 정치적으로 문제가 되는 타이 무슬림이나 그 외 소수 민족들까지도 왕과 왕실은 존경과 사랑의 대상이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국왕이 부처의 자손이라고까지 믿고 있다. 이러한 믿음의 기초는 그들 세계관에 깔린 왕에 대한 신화에 근거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왕에 대한 신화를 보면, 아주 먼 옛날에 하늘에는 좋은 신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 중에 람(RAM)이라고 하는 신이 있었다. ‘람’이라는 신은 해와 달의 신인데 반대편에는 나쁜 신인 거인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적이었고 비록 그들이 신이지만 사람과 같이 생명이 한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다니다가 큰 뱀이 산을 감아 물을 휘저어서 거룩한 물을 만드는데 그 물을 마시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 그 물을 마시려고 갔는데 신은 뱀의 꼬리 부분에 있었고 거인은 머리 부분에 있어서 뱀으로부터 나오는 불로 인해 거인은 죽고 신은 성수를 마시고 영원히 살게 되었다. 신은 기이한 독수리를 부리고 있었는데 그 독수리는 신을 보호했고 신이 가고자하는 대로 신을 태우고 다녔다. 왕은 그 신의 피를 이어받았으며 그 기이한 독수리는 왕을 잘 보호해주었다. 왕을 라마(RAMA)라고 부르고 그 독수리는 ‘라마야나(RAMAYANA)’라고 부르는 것은 신의 이름인 람(RAM)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라마야나(RAMAYANA)’에 대한 다른 설명도 있는데, 라마야나에 대한 서적을 보면 힌두교의 신중의 하나로 악한 뱀과 싸우고 잡아먹은 좋은 신이라고 나와있다.(태국사람들은 뱀이 몸을 감는 꿈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신화와 믿음의 결과로, 태국사람들은 5대왕 (PIYAMAHALA)를 매주 화요일에 숭배하는데 왕이 화요일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때 사람들은 향과 꽃과 과일 등을 바치는데 그렇게 하면 행운이 오며 사업이 잘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왕이 선왕으로 꼽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정에서나 사업장에서 일반적으로 숭배하고 있다.
왕에 대한 신화 외에도 천둥, 번개치는 비오는 날에는 아이들이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드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메카라(MEKARA)라는 여자가 손에 크리스탈을 가지고 노는데 그것은 번개와 비를 오게 하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혼자 높은 곳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했는데 그녀는 혼자 나가서 놀곤 했다. 그런데 그곳에는 시커먼 망토를 입은 나마손(Namason)이라는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그녀가 가지고 노는 크리스탈을 빼앗으려고 하였다.
모든 중국인들과 일부 타이인들은 매일 아침 상점을 열 때 ‘디조엣’이라고 부르는 향을 피우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들은 불교인이다. 전통의식은 도시보다는 시골에서 잘 지켜지며 아직까지 어린 학생들은 학교울타리 한쪽 벽면에 놓여있는 코끼리 신상 앞을 지날 때마다 무릎을 꿇고 합장하여 세 번 절을 하는데 이 코끼리 신상이 자신들이 공부하는 것을 도와준다고 생각하고 있다.
학교에 전해지는 코끼리 신상에 대한 설화가 있는데 하늘에 신의 아들이 있었는데 세상에 대한 관심이 너무 많아 아버지로부터 하늘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처음으로 땅에 내려와 만난 것이 코끼리였는데, 코끼리가 땅의 인간의 모습인줄 알고 코끼리의 목을 베어 그것을 뒤집어썼다. 그래서 결국 얼굴은 코끼리가 되었고 몸은 사람의 형체를 지니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코끼리 신은 “Father of Art, successful god"으로 여기게 되었다. 주로 예술학교의 상징이 되었다. 예술인들은 이 신으로부터 영감과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상징으로는 봉황새처럼 보이는 새의 이름이며 정부를 상징하는 쿵타이가 있다. ‘쿵타이’라는 도시가 따로 있고 정부의 권위를 상징한다. 정부은행(KUNG THAI)로고로 사용하고 있다. 쿠릇은 새가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과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날개 위에 팔이 있다. 그리고 새의 발 모양을 하고 있다. 쿠릇은 새의 이름이고 하늘에서부터 내려왔다고 한다. 부처를 운반하는 차로 사람들은 이 쿠릇이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고 믿고 있다.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항상 등장했던 짬비는 타이항공도 이 짬비를 사용한다. 짬비는 ‘난’을 나타내는 것이다. 랑파(NANGFA)는 앉아서 빌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여자의 모습으로 이 그림을 붙여 놓으면 손님이 많이 온다고 믿고 있으며 그림주위에는 숫자 같은 것이 적혀있다. 일종의 부적이다.
예술 문화
‘낭딸룽’(인형극)은 원래 인도에서 유래된 것으로 태국 남부지방에서 볼 수 있다. 태국 남부지역에 아직까지도 성행하고 있는 그림자극은 주로 초저녁에 시작한다. 때로는 야외식당에서 식사를 즐기며 낭딸룽을 관람하는데 주말저녁부터 밤늦게까지 행해지고 있다. 탈춤과 드라마는 원래 왕궁 안에서만 행해졌던 것이며 라콘은 왕궁 밖에서 행해졌다.
마누(전통춤)- 남부의 전통적인 춤으로 손가락에 뾰족한 것을 끼우고 원색의 구슬을 몸에 두르고 춤을 추는 것인데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데 사용하였다.
음식 문화
핫야이 사람들은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많이 먹으며 볶음밥을 주로 먹는다. 기름에 튀긴 국수에 어묵이나 돼지고기를 넣은 국수도 있다. 그러나 볶음밥이나 국수는 모두 기름기가 많아서 느끼하다. 이러한 느끼한 음식이 싫다면 찰쌀밥을 먹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대나무시루에 쪄서 익힌 꼬들꼬들한 찹쌀밥을 조그만 대나무로 엮은 통에 담아주는데 다른 반찬과 함께 먹으면 별미이다. 반찬으로는 ‘냄’(돼지고기 발효음식)에 쌈장을 찍어 먹거나 해물과 야채를 섞은 샐러드와 함께 먹는다.
그러나 무슬림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또 가축을 잡을 때도 그들의 특별한 방법이 있기 때문에 무슬림을 위한 식당이 시내 곳곳에 있으며 PSU 대학 내에도 3-4곳 있다. 무슬림 식당이라는 간판을 걸고 장사를 하고 있으며 식당 내부에는 알라의 99개의 이름이 쓰여져 있는 벽걸이 장식이나 메카의 카으바 신전의 모습을 중심으로 한 성지순례사진을 식당을 들어서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걸어놓고 있다.
결혼 및 가족제도
결혼 적령기는 대학을 마친 25세 전후로서 결혼식은 대개 집이나 호텔에서 한다. 결혼과 동시에 부모를 떠나 핵가족을 이루고 있으며, 한국에서처럼 장남이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니라 형제 중에서 아무나 모시게 된다. 대개의 경우 마지막으로 결혼하는 딸이나 아들이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결혼 후 여성들도 일하는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며, 자녀는 2-4명을 두며 양육은 노인부모의 몫이다. 그래서 핫야이 시내에서는 노인들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그리고 대부분 노인들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타이계와 중국계는 서로 통혼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말레이계와의 결혼은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이유는 언어적인 문제와 일부다처제 등 종교적인 문제 때문이다. 우리가 인터뷰한 사람들 중 다수가 말레이와 결혼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무슬림들은 불교사회에서도 그들의 신앙을 굳건히 지키고 타종교인들과 타협하지 않고 타인에게 개종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태국인들의 눈에 비친 무슬림들의 게으른 생활과 무슬림 여성들이 행상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는 모습이 좋아 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결혼식은 주로 집이나 호텔에서 한다. 특별히 불교인들은 승려가 주례를 하는데 이때에 성수(holy water)가 필요하다. 결혼식은 결혼하기 1년 전에 신랑이 신부의 아버지에게 결혼을 허락 받아야 하며 결혼식 3-4일 전에 신랑은 신부대 10만 바트(귀금속을 포함한 보통의 경우)를 가지고 신부집으로 간다. 결혼식 날 아침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신랑집으로 오는데 이때 신부는 설탕으로 만든 케익과 쌀 등의 곡식을 가지고 가는데 설탕케익을 가져가는 것은 달콤한 부부생활을 상징하는 것이고 곡식은 다산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결혼식에는 타이 전통의상을 입으며 타이 전통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축제이다. 신혼여행은 3일정도 주위의 섬으로 간다.
장례식
장례식은 보통 3-5일장을 지낸다. 사원에서 화장을 하는데 수요일과 일요일에는 장례를 치르지 않는다. 특별히 수요일은 unlucky day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있어서 이날에 장례식 하는 것을 피한다고 한다. 국왕의 경우는 1년장을 하고, 국왕과 고위 관료의 경우는 관을 눕히지 않고 세워놓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불교인들은 사원에 갈 때 꼭 가지고 가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초와 꽃과 향이다. 불교에서 촛불은 인생무상을 뜻하며, 꽃은 아름다움의 무상, 향은 순결한 삶의 향기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불교인들은 또한 절에서 추도회를 한다. 죽은지 2년째 된 할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가족과 이웃들이 모여있는데 검은 옷을 입고 있으며, 한 스님이 영정근처에서 설법을 하고 화환과 색전구로 화려하게 장식한다. 태국의 불교사원은 한국과 비교할 때 다른 면이 많다. 태국에서는 누워있는 불상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와트 핫야이 나이’ 사원에 가보면 누운 불상의 길이가 약40미터 정도나 된다. 그리고 사원 안에는 코끼리 상들도 있고 코끼리에도 금종이를 붙여놓았다.
3. 사회생활
변모하고 있는 사회
태국의 약 70%는 지방에 거주하고 있는 농민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근대화의 물결에 따라 자급자족 농업에서 탈피하고 있으며 과거 수십 년간 농촌의 변화는 태국인 다수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도로 확장과 전기공급뿐만 아니라 라디오, 오토바이, 텔레비전 등이 농촌에도 필수품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TV나 전화 보급률은 90%정도이지만 PC보급률은 아직 보편화되어 있지 않으나 몇몇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인터넷을 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벼농사가 전 농업생산의 90%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50%이하로 감소되었다. 핫야이 외곽지역에는 공장들이 세워져있는데 주로 고무공장이나 통조림공장으로 주로 말레이시아인이 이곳에 많다. 태국인들은 말레이인들에 대해 우호적이지도 적대적이지도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국인들에 대해서는 특별한 구분이 없고 우호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쇼핑센터에 들어서면 진열대위에는 비싸고 고급스런 물건들과 외제물건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중에는 물론 한국제품도 있지만 상당수는 일본제품들이다. 휴대폰 사용자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데 비싼 값을 지불하고 휴대폰을 구입한 사람이 장거리전화를 쓰려고 하는 사람에게 몇 분에 얼마씩 돈을 받고 장사를 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휴대폰은 시외에 전화를 할 경우도 시내요금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교통수단으로 ‘툭툭’이 있는데 보통 툭툭은 시내내부를 도는 순환형과 외곽지역으로 가는 툭툭이 있는데 이것을 잘 구분해서 타야한다. 시외로 가는 툭툭은 차체가 크고 높아서 사람들이 서서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시내순환용 툭툭은 지붕이 낮고 양쪽으로 의자가 놓여 있어서 8-10명 정도가 탈 수 있다. 툭툭을 타는 방법은 택시를 타는 것처럼 손짓을 하여 부르면 된다.
핫야이 사람들은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극히 소수이다. 그러나 PSU에 다니는 학생들과는 어느 정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음식점 및 상점은 중국계가 가지고 있으며 공장 등은 말레이인들이 가지고 있다. 타이사람들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매우 가난한 삶을 살고 있다. 시장과 거리 곳곳에는 복권을 파는 아주머니들이 많다. 백화점 주변에는 상점들이 즐비한데 시계, 라디오 등 전자제품은 주로 대만제이다. 그리고 건물들이 주로 1층은 상점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2-3층은 주거용인 상가주택이 주를 이룬다. 사람들은 전문직종을 선호한다. 공무원 초임은 4,000 바트인데, 경력5년은 8,000 바트, 경력10년이 되면 10,000 바트를 받는다.
핫야이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를 하다보면 그들의 순박함과 부드럽고 정적인 느낌을 갖게된다. 그리고 그들은 친절하다. 그러나 그들만이 갖고있는 어떠한 자부심과 여유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골에서 핫야이로 이주하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지만 인근도시에서 핫야이로 쇼핑하러 오는 사람들은 매우 많다. 말레이시아인들은 주말을 이용하여 이틀정도 핫야이에 머물면서 쇼핑도 하고 골프를 즐긴다고 한다.
태국여성
태국에서 여성의 위치를 보면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국 여성들은 태국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특히 전문직에서 여성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의사, 변호사, 회계사, 대학교수들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미국수준보다 높다고 한다. 그러나 태국에서의 사회화 양상은 공공부문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견해를 여전히 반영하고 있다.
교육
교육제도는 6-6-4제로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대학교 4년 과정이다. 핫야이 지역에는 초등학교62개 (국공립57, 사립5개), 중/고등학교7개, 종합대학1개, 기타5개가 있다. 유치원은 2년 정도 다닌다.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입학시험을 치뤄야 하는데 국어, 수학, 영어, 화학, 생물, 물리시험이며 대학진학률은 20%로 정도이다. 핫야이 학생들은 교복을 입는다.
<생콩위티아 스쿨>
핫야이 사람들이 선호하는 학교는 생콩위티아 학교로서 학교 정문에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써있는데 이탈리아 선교사가 세운 카톨릭 미션스쿨이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과정까지의 남학생들을 위한 학교이다.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여학교가 있는데 이곳은 수녀가 운영한다. 2000년에는 개교 50주년을 기념행사가 있을 예정이며 이 학교의 교육이념은 개종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인본주의다.
학생 수는 2.500명 가량이며 이중 카톨릭 학생 수는 100명 정도이다. 이 학교에는 110명의 교사가 있는데 카톨릭이 25명, 무슬림이 3명이며 나머지는 모두 불교인이다. 이 학교에는 5명의 신부가 있다. 안토니 레스텔리 신부님은 현재 이 학교 교장으로 태국에 25년째 선교사로 계신다. 생콩위티아 스쿨은 핫야이에 거주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에서도 유학을 오기도 하는데 이들을 위한 기숙사도 마련되어 있다.
학교는 최신 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초등, 중등, 고등학생을 위한 도서관이 각각 마련되어 있고 영화감상을 할 수 있는 시청각실과 컴퓨터로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방과후 학생활동으로 밴드부가 있고 어린이들은 축구를 한다. 학교 건물 안에 작은 예배당이 있어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30분씩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약10명 정도가 참석하고 있다고 한다. 생콩위티아 스쿨은 송클라 주에서 규모가 큰 학교에 속하는데 스카우트 캠프를 갖고 있다. 방학은 가장 무더운 3-5월까지 약3개월간이다. 이 학교의 한 학기 등록금은 8,000 바트 정도인데 사립학교로 학비도 좀 비싸고 카톨릭 학교이기도 하지만 현대적인 시설로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학교이다.
<송클라 왕자 대학교(PRINCE SONGKLA UNIVERSITY>
PSU는 1960년 태국왕자가 세운 대학으로서 태국전역의 학생들이 모인 대규모의 대학이다. 각 단과대학 별로 5개 지역에 캠퍼스가 나눠져 있고, 캠퍼스 안에 우체국, 은행, 라디오 방송국 등이 있으며 약12,000명 정도의 학생이 있다.(그러나 총학생 회장은 학생 수가 7,000명이라고 한다) 대학 1년생은 기숙사에 거주하며 나머지학년은 추첨을 통해 기숙사에 들어올 수 있다. 기숙사의 한 학기 사용료는 2,200 바트 정도이며 약3,500여명이 현재 기숙사 생활을 하고있다고 한다. 어른들과 달리 학생들은 불교인과 무슬림들도 서로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태국인은 20세가 되면 신분증을 발급 받으며, 남학생은 21세가 되면 추첨을 통해 군대에 갈 사람을 뽑는다. 대학교의 여름방학도 마찬가지로 가장 더운 3월부터 5월까지이며 특별히 겨울방학은 없다. 여름방학이 끝나면 곧바로 새 학년이 되는데 1학기는 6월부터 9월까지이고 2학기는 11월부터 2월까지이다.
대학교에서도 교복을 입어야하는데 여학생들은 블라우스와 스커트이다. 블라우스는 흰색을 입으며, 스커트는 검정색이나 회색 또는 짙은 청색 중에서 아무거나 입어도 되며 치마길이나 트임은 자유롭다. 그러나 남학생들은 교복을 입지 않는다. PSU안에는 기독학생모임이 있다고 한다.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모든 아이들이 별명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들끼리 별명을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별명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고 의미가 없어도 발음이 예쁜 것을 별명으로 갖는다. 대학생들은 호출기를 가지고 다닌다.
핫야이 지역에는 노래방이 많이 들어서 있다. 대학생들도 노래방 출입을 한다. 거리의 젊은이들은 옷차림은 개방적이고 다양하다. 머리염색, 무스와 스프레이로 잔뜩 멋을 부리고 머리를 길러서 뒤로 묶은 남자, 찢어진 청바지 또 여자들의 노출도 눈에 띈다. 크고 작은 상점마다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다. PSU는 송클라주를 대표하는 규모가 큰 학교로서 이곳에서는 갖가지 행사들이 펼쳐진다.
4. 핫야이의 복음화 현황
태국 교회사
<기독교의 전래>
기독교가 최초로 태국에 들어온 것은 525년에 경교신자(네스토리안 기독교인)인 코스모스가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기독교와 접촉한 것은 1511년 포르투칼의 사절단과 동행했던 카톨릭 신부에 의해서였고 실제로 태국에서 기독교가 포교활동을 한 것은 1555년 도미니칸 신부들에 의해서였지만 이들은 곧 순교를 당했다. 개신교 선교는 1828년 중국에서 선교하던 칼 구츨라프와 영국LMS선교회 소속인 제이콘 톰린 선교사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들은 방콕에 살던 중국인들 사이에서 일하도록 허락을 받아 태국어를 배워 태국어로 중국성경을 번역하고 문서선교와 전도활동을 열심히 하였다. 그러나 태국인들의 서구에 대한 반감으로 결실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1835년 브래들리 선교사가 들어와 새로운 서양의술과 인쇄술을 태국에 소개하면서 헌신적인 사역을 펼쳐 국왕으로부터 호의를 얻게되어 자유롭게 선교사역을 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개신교가 실제로 생명력을 갖기 시작하고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게 되었다.
<교회 정착기(1850 - 1914)>
이 시기의 선교사들은 재산을 얻고 선교부를 세우고 그 나라의 문화, 관습, 언어를 습득하였고, 병원, 학교, 고아원 등을 운영하여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제 1기(1850 - 1883): 라마 4세 몽끗왕이 즉위하면서 선교사역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는데, 그는 자유롭고 아량이 있는 진보주의자로, 선교사와 매우 친밀하여 많은 도움을 주었다. 1868년 즉위한 쫄라롱껀왕은 1878년에 종교의 자유를 선포하였다. 이로 인하여 기독교의 선교는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의 사역 방법은 첫째로 의료 사역이었고, 1928년 외과 의사인 구츨라프에 의해 시작된 이래로 선교사들은 빈곤과 질병으로 고생하는 태국인들에게 의료혜택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둘째 선교방법은 학교를 통해서였다. 선교사들은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젊은이들의 교육이 복음 전도의 수단으로 생각하였다. 셋째 인쇄업을 통한 문서선교였다.
제 2기(1883-1914): 이 시기는 교회 성장이 가장 빠른 시기로, 이와 같은 성장의 요인은 밀길버리 선교사의 활동으로 가능했다. 그는 교회를 설립하려는 목적으로 부지런히 순회선교를 하였고 교육과 의술을 통해 주민들과 가까이 할 수 있었다. 개종자가 어려움을 겪을 때 그들을 강력하게 돌보아 주었으며 교육을 통해 태국어를 가르치고, 가족 단위의 개종에 관심을 가져 많은 결실을 맺었다. 또 다른 성장 이유는 지역적으로 편중되어 있는 강력한 민족주의와 불교의 영향을 들 수 있다. 대체로 사찰과 승려들은 중부와 남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고, 기독교를 서양종교라 배척하였다. 반면에 북부의 주민들은 자신들을 라오인이라 지칭하며 소위 콘우왕 즉 북부인이라 부르며 중앙 타이를 중심한 민족주의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교회 시련기(1914-1945)>
1914년 이후 교회 성장은 계속 하락세를 보였다. 이렇게 된 이유를 크게 네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2차 세계대전중 일본의 태국점령 후, 일본은 기독교를 박해하였다. 둘째, 기독교 선교사들과 선교에 도움을 주었던 쫄라롱껀왕의 사망으로 선교활동이 위축되었다. 셋째, 강력한 두 번의 불교를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 운동 때문이었다. 넷째, 선교 정책의 문제로 당시 선교의 중심에 있던 장로교가 전도와 교회개척보다는 병원이나 학교설립 등의 사회복지에 치중하였기 때문이다.
<교회 부흥기>
제 2차 세계대전 후 기독교가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1945년 8,000 명이던 신자가, 1960년에는 24,539 명, 1978년에는 58,953 명으로 성장했으며, 1988년에는 110,000 명으로 급성장 하였다. 1970년 이후의 교회 성장은 복음이 전파된지 오래되었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전파됨으로 태국인들 사이에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1973년과 1978년 사이 선교사가 23%, 기독교 기관 50% 나 증가하는 등 복음전파에 대한 투자의 증가도 한 요인이다. 1987, 1988년에는 태국 교회들이 제자훈련하교, 제자삼기 운동 등으로 선교사들과 협력하여 좋은 결실을 내었다. 세 번째로 선교단체의 초교파적인 연합활동이 부흥의 원인이 되었다.
현재 선교 상황
과거에는 사역의 중심이 의료와 교육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는데, 이를 통해 개종자들이 생겨나고 교회도 개척되었다. 현재는 도시와 농촌의 복음화와 교회 개척 그리고 성경공부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중국인 교회>
시청에서 기차역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중국인 교회가 나온다. 평일에는 정문과 후문이 잠겨있고 폐쇄적인 느낌을 받게 한다. 1943년경에 미국인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이 교회에 전에는 선교사가 있었으나 지금은 중국인 목사가 20여 년째 이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교인은 약 4-50명 정도이며 예배는 금요일 저녁과 주일에 드리고 있으며 교회 안으로 들어서면 30년 된 좋은 소리의 피아노가 놓여있고 타이성경과 중국인 성경이 비치되어 있다. 찬송가는 한 면에는 타이어로 다른 면에는 한자로 되어있다.
<중국인 침례교회>
남침례교 잭(Jack .E. Mahaffey)부부가 1969년에 세운 교회로 유아들이 20여명, 청년들이 30명되고, 장년은 거의 없다고 한다. 잭부부는 핫야이 남서쪽에 교회를 하나 더 세웠으며 96년에 미국으로 돌아갔다. 금요일저녁마다 찬양예배를 드리고 있다. 침례탕이 정원 안쪽에 마련되어있고, 예배당에는 드럼, 키보드, 피아노가 놓여져 있고 유아들을 위한 예배실이 있다. 교회에는 사택과 사무실 그리고 식당이 있다. 교회 사무실 안에는 컴퓨터가 있고 성경공부교제와 전도책자들이 있다.
<안식교>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몇몇의 핫야이 사람들에게서 안식교가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복음에 대한 수용성
핫야이 사람들은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타종교를 무시한다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만약 기독교인이 전도지를 주면 받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전도지가 만화로 되어 있다면 더욱 재미있게 볼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핫야이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무슬림보다는 기독교인에게 호의를 갖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생콩위티아 스쿨에는 몇 가지의 신앙서적이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기는 하지만 어린이들이 볼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는 책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복음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5. 창의적 선교 전략
입국 전략
핫야이 지역에서 선교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학생 신분으로 PSU에서 공부하면서 선교할 수 있다. 대학 내에는 외국인 학생들이 그리 많지 않지만 외국인에 대해 호의적이기 때문에 대학생들과의 접근이 가능하다. 또한 핫야이 지역에는 사설학원들이 들어서 있는데 주로 영어와 컴퓨터를 가르치고 있다. 현재 핫야이 사람들은 영어와 컴퓨터에 대한 관심이 많기 때문에 학원 사역도 중요한 선교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태국인들은 또한 음악과 체육을 좋아하는데 학생들이 방과후 활동으로 축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태권도 사범이나 축구 등 스포츠를 통한 사역도 가능하다.
핫야이는 무역을 할 수 있는 좋은 지역이다. 도시에 비해 쇼핑센터와 호텔이 많이 세워져있는데 이것을 이용하여 한국제품들을 수출하는 것도 좋은 사업일 것이다. 그리고 휴대전화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데 이러한 기회를 이용하여 컴퓨터, 출판회사, 휴대전화 사업 등으로의 위장이 필요하다.
사역의 기회와 전략
핫야이에서 선교하기 위해서는 먼저 핫야이 현지 교회의 상태를 충분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핫야이에 있는 교회에 관하여는 위에서 소개한 대로 5-6곳에 교회건물이 세워져 있지만 이들 스스로가 핫야이에서 전도할 수 있는 역량은 부족하다. 각 교회마다 교인수도 얼마되지 않고 침체되어 있는 분위기여서 이 지역 복음화를 위해서는 먼저 기독교인들에 대한 제자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시급하다. 신학 교육을 지원하고, 지도자 양성에 필요한 자원을 공급해주는 일과 제자 양육을 통하여 성경공부리더를 길러내고 활기있는 교회가 되도록 침체된 교회들을 다시 일으키는 사역이 필요하다.
대학캠퍼스 사역으로 태국의 국립대학인 PSU에는 만사천명의 학생들이 있는데, 대학 내에 외국인 학생은 거의 없다. 학생으로 입학하여 기독학생모임이 활발히 이루어지도록 지원하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복음전도와 제자양육 사역을 할 수 있다. 이 대학의 학생들은 불교인과 무슬림 학생들이 주를 이룬다.
PSU대학 근처에는 타지에서 온 학생들이 자취를 하고 있다. 유학생들 중에는 식당에서 파트 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는 학생들도 있다. 이들에게 접근하여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기독교 문서와 기독교 서점을 통해 성경과 신앙서적들이 판매되고, 문서나 대중매체를 위한 사역이 활발히 진행되어 라디오 방송을 통해 기독교 프로그램이 태국 전역에 방송되도록 노력해야한다. 특히 더운 나라에서는 밤 문화가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저녁시간을 이용하여 영화상영을 하는 것도 좋은 사역이 될 수 있다. 기독교 주제를 담고있는 드라마나 영화들을 상영하여 매체를 통한 복음전도와 제자훈련을 발전시켜야 한다.
적절한 전도지와 교재를 계발하여 기독교 관련 서적들을 태국어로 번역하여 도서관에 비치한다면 기독교에 대한 관심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몇 가지 전도지가 있기는 하지만 신앙 성숙을 위한 서적과 성경공부교재등이 필요하다.
간호사나 공무원 등 직장인들을 위한 선교가 필요하다. 기독교인들이 직장에서 본을 보이고 믿지 않는 이들을 잘 섬길 수 있도록 훈련하며 직장선교를 할 수 있도록 이들을 지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영어나 컴퓨터, 태권도를 가르치는 교사가 많이 필요하며, 특히 윤락녀들을 대상하는 사역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핫야이 지역은 무슬림들이 많이 살고 있기 때문에 무슬림을 위한 사역자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태국의 불교는 오랜 기간동안 정령숭배와 혼합되어 왔는데 핫야이 사람들의 영혼을 억압하고 있는 우상숭배에서 자유 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이들이 믿고 있는 종교에 회의를 갖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는 날이 하루속히 오도록 기도하자. 그리하여 이들의 손으로 만든 우상들을 이들이 스스로 깨뜨리는 그날을 빨리 볼 수 있도록 기도하자.
남부 최대의 휴양도시인 송클라에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아이들이 모래성을 만들며 뛰어 노는 송클라 해안에 인어상이 있는데 고기를 잡으러간 남편을 기다리다가 인어가 되었다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와 보물(9십만 바트 상당)이 바위 밑에 숨겨져 있어 누구든지 손으로 바위를 밀어 바다에 빠뜨리면 그 보물을 차지할 수 있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송클라 주에 ‘핫야이’라는 한 도시가 있다.
핫야이는 도청소재지인 송클라보다 더 발전하였는데 이는 말레이시아인들의 영향 때문이다. 말레이시아로 가는 관문인 핫야이에는 대규모의 암거래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 들어온 물건들을 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핫야이를 찾고 있다. 그러나 핫야이 중심가를 조금만 벗어나면 길게 뻗은 고무나무와 농부들의 전형적인 삶을 볼 수 있다. 핫야이는 남부 최대의 교통 요충지이며 면적은 21평방km이다. 98년말 관청 통계에 따르면 인구는 약 155,558명(남 75,788 여 79,770)정도이다. 핫야이에는 공항이 1개, 기차역이 1개, 여러 개의 버스 터미널이 있고 백화점이 11개, 호텔이 95개, 은행이 37개, 극장이 7개 등이 있다.
2. 사회 성층 분석
핫야이 풍경
방콕에서 기차로 약20시간쯤 남쪽으로 내려오면 핫야이라는 도시를 만나게 된다. 하루에 한 두 차례씩 어김없이 쏟아 붓는 소나기가 핫야이의 맑은 하늘과 신선한 공기를 제공한다. 핫야이에 처음 발을 내딛는 순간 호흡부터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방콕은 항상 관광객들로 붐비고 눈을 따갑게 만드는 시커먼 매연, 그리고 상인들의 바가지가 너무 심한 반면 핫야이는 맑고 깨끗한 하늘로 사람들을 끄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핫야이는 태국에서 말레이시아로 가는 길목에 있기 때문에 기차역에 들어서면 말레이시아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기차역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사람은 ‘툭툭’운전기사이다. 기차역을 빠져 나오기가 무섭게 ‘툭툭’기사들이 모여들어 목적지를 물어보지만 핫야이 시내는 그리 넓지 않기 때문에 걸어서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기차역을 빠져 나오면 은행과 호텔과 쇼핑센터가 한눈에 들어온다. 기차역을 중심으로 이런 건물들이 우뚝우뚝 서있는 것은 외국인들이 주로 기차를 통해 핫야이로 들어오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시내 곳곳에 쇼핑센터들이 들어서 있고 그 주위에는 길에 물건을 내놓고 파는 가판대가 줄지어 있다. 도심에 대형 쇼핑센터와 함께 재래식 시장이 공존하고 있으며, 거리 가판대에 물건을 놓고 파는 사람들은 주로 무슬림 여성들이다. 중국인이 경영하는 상점은 입구에서 바로 볼 수 있는 곳에 조그만 불상세트가 놓여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으며, 상점 내부뿐만 아니라 심지어 셔터까지도 빨간색으로 장식되어 있다.
핫야이를 주로 찾는 외국인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말레이시아인들과 싱가폴인들이다. 이들의 모습은 태국인들과 비슷하기 때문에 거의 외국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을 찾는 서양인들은 많지 않기 때문에 쉽게 눈에 띈다. 핫야이 시내를 걷다보면 코끼리가 사람을 등에 태우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나가는 외국인에게 접근하여 코끼리에게 먹이를 줘보라고 손짓한다. 가끔씩 히잡(무슬림 여성들이 머리에 두르는 천)을 두른 무슬림 여성들의 모습과 짙은 오렌지색 천을 두르고 지나가는 스님들의 모습, 시내를 지날 때마다 눈에 띄는 맛사지 그림들이 아이러니지만 이곳도 역시 태국의 향락문화는 비켜갈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호텔마다 맛사지 그림이 걸려있고 어떤 곳에는 여자들의 사진까지 밖에 걸어놓은 곳도 있다. 그리고 현재 핫야이에도 휴대폰 바람이 불고 있다. 휴대폰을 가지고 거리에 자리를 잡고 휴대폰 대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핫야이 사람들에게 있어서 오토바이는 매우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시내버스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소유하고 있다. 남자이건 여자이건 오토바이는 서민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과 같다. 핫야이 여성들은 거의 바지를 입지 않고 치마를 입는다. 그런데 아무리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들도 오토바이를 잘 타고 다닌다. 오토바이 다음으로 중요한 교통수단으로서는 ‘툭툭’이다. ‘툭툭’은 택시와 미니버스의 기능을 합쳐놓은 것인데 손을 흔들어 ‘툭툭’을 부른 후 목적지를 말하면 툭툭기사가 목적지까지 데려다 준다. 핫야이 툭툭기사들은 조금 무뚝뚝한 느낌을 주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승객이 원하는 목적지까지 길을 모르면 멈추어 서서 주변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목적지에 내려주는 친절한 사람들이 더 많다. 앞자리에 가족을 앞자리에 태우고 영업을 하는 운전사들도 있다.
종족별 분포
핫야이 도시 내에는 크게 3종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타이인, 중국인, 말레이시아인 그밖에 소수종족으로는 인도, 파키스탄인등이 있다. 종족분포를 살펴보면 타이인 50%, 중국인 40%, 말레이시아인 10%를 구성하고 있다(1998년 말 현재 관청통계자료). 핫야이에는 중국인들이 상권을 잡고 있으며, 타이인들은 상대적으로 빈곤한 생활을 하고 있다.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타이인들이다.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까지 시장이 형성되는데 이때 많은 말레이 무슬림들이 물건을 사기 위해 모여든다고 한다. 이들이 구입해 가는 물건들은 주로 옷이나 쌀, 설탕 등의 식료품들인데 말레이시아보다 태국이 물가가 훨씬 싸기 때문이다. 핫야이를 주로 찾는 외국인들은 주로 말레이시인들과 싱가포르인들인데 이들의 관광목적은 주로 골프에 있다.
직업별 종족 분포도를 살펴보면 상인, 의사, 교사, 간호사 등은 40%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은 주로 중국인이다. 농부, 정원사등 35%로 타이인이며 공장 근로자는 15%를 차지하고 있는데 주로 타이인이나 말레이시아인들이다. 병원카드를 작성할 때는 환자 양부모의 인종을 적어 넣는 곳이 있는데 카드에 구분하고 있는 인종은 중국인, 타이인, 말레이, 기타로 되어있다. 전통적으로 중국계 태국인들은 태국경제를 지배하고 있었으며 태국인들은 정치를 지배하고 있었다. 핫야이 사람들이 선호하는 직업으로는 공무원, 의사, 간호사, 교사, 엔지니어등이다.
종교별 분포
태국은 불교의 나라이지만 태국의 남부로 내려갈수록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들이 많이 살고 있다. 태국 전체적인 종교별 분포를 살펴보면 불교가 90%이고 이슬람이 6%그리고 기독교2% 기타2%로 알려져 있다. 이와 비교하여 1998년 관청이 제공한 핫야이 지역의 종교 통계를 보면, 불교 72%, 이슬람 20%, 기독교 5%, 기타 3%로 무슬림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겉으로 보면 불교인의 수가 무슬림보다 절대적으로 많지만 어느 한 지역에서 이슬람 20%는 불교와 대결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며 남부지역의 이슬람 세력은 강하다. 핫야이 지역에는 불교사원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이슬람 사원이 2개, 성당이 1개, 교회가5-6개 정도 있다. 그러나 핫야이 지역에서는 이교도들간의 분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이며 핫야이 사람들도 서로의 종교에 대해서 존중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불교>
핫야이시내 어디를 가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건 역시 불교 사원이다. 태국에서 불교는 종교의 차원을 넘어선 생활 그 자체이다. 불교는 태국인들에게 만민이 평등하다는 철학을 심어주고 전통적인 사회형태를 유지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화려하게 장식된 사원으로 들어가면 나무에 색색의 줄을 걸어 놓은 모습이 눈에 띄는데 이것은 민속신앙과 불교가 혼합되어 나타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시시때때로 사람들은 개인이나 가족단위로 꽃과 초와 향을 가지고 불교사원을 찾아가서 금종이를 붙이며 절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불교인들이 경영하는 상점이나 집 안으로 들어서면 바로 눈에 띄는 곳에 소형불상세트가 놓여져 있는데 이것의 가격은 대략 500-900 바트이다. 그러나 무슬림이나 기독교인들의 가게에는 소형 불상세트가 절대로 놓여져 있지 않다. 그리고 인사하는 모습으로도 이들의 종교를 알 수 있는데 불교인들은 두 손을 모으고 합장하는 자세로 인사를 하지만 무슬림들은 절대로 합장하며 인사하지 않는다.
불교사원은 중국계 절과 태국계 절이 구별되어 있다. 핫야이에서 대표적인 중국계 절(TONG SIA TEMPLE)과 타이계 절(KOR HONG TEMPLE)을 비교해보면 전통적으로 중국계 절에는 코끼리 신상이 있고 포티사(POTISA)라고 하는 여자신상이 있는데 4개의 얼굴과 8개의 손을 가졌다. 전통적으로 어린이들은 절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절 옆에 학교건물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타이계 절(KOR HONG TEMPLE)옆에도 17년 전에 세워진 학교가 있다. 불상은 3가지 형태가 있는데 월요일 불상은 입상(walking), 화요일의 불상은 와신상(sleeping), 금요일에는 가부좌상(sitting)이다. ‘KOR HONG TEMPLE’에는 국왕(라마5세)의 신상이 모셔져있는데 이들에게 국왕도 신앙의 대상임을 알 수 있다.
타이 사원에는 화장터가 있었는데 화장터를 상징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그림을 살펴보면 땅 위에 살아있는 사람들의 생활이 그려져 있고 그 밑에는 뼈들이 많이 놓여있는 그림이다. 그 옆에는 두꺼비같이 생긴 불상이 있고 그 앞에는 인어 공주 같은 자세를 하고있는 상이 하나 있다.
<이슬람>
핫야이 시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스크가 두 곳이 있는데 마쓰지드 맛자모 핫야이(MASJID MAJJAMO HATYAI)와 마쓰지드 파키스탄(MASJID SAHE PAKISTAN)이다. 맛자모 모스크로 들어가는 입구 오른쪽에는 우두(기도하기 전에 손발을 씻는 정결 의식)를 할 수 있도록 수도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모스크 1층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이슬람학교가 있어서 어린이들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이곳에서 이슬람교육을 받는다. 그러나 라마단 기간 중에는 저녁식사를 마친 후 수업이 시작된다. 계단을 통해 모스크 2층으로 올라가면 깨끗하고 넓은 기도하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남자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곳이며, 한쪽 모퉁이에 커텐을 쳐서 여자들도 그곳에서 기도 할 수 있도록 장소를 마련했다.
핫야이 모스크의 특징은 이슬람을 상징하는 초승달을 둥근 돔위에 세우고 그 초승달 위에 별을 두었다는 점이다. 이 모스크에는 타이무슬림과 말레이무슬림이 많고 특히 말레이무슬림들은 라마단을 지키기 위해 태국 남부 말레이근방에서 와서 한달 동안 이 모스크에서 합숙하고 있다. 맛자모 모스크는 송클라주를 대표하는 모스크이며 송클라 무슬림 협회 회관이다.
맛자모 모스크에서 500미터정도 떨어진 곳에 파키스탄 모스크가 있다. 이 모스크는 1937년에 건립되어 1991년에 재건되었다. ‘이맘’이 파키스탄인으로 비교적 깨끗하지만 정통 모스크의 이미지에서는 많이 벗어났다. 두 개의 미나렛 위에 초승달과 별이 함께 달려있는데 둥근 돔의 모습은 없다. 모스크의 미나렛이 탑을 세워놓은 것 같은 모습이며 녹색과 짙은 코발트 블루를 사용했다. 파키스탄인들이 주로 이 모스크를 찾고 있다. 다른 나라에 있는 모스크와는 달리 파키스탄계 태국의 모스크에는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과 함께 별이 놓여져 있다. 파키스탄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니 파키스탄 국기에서 유래되었다고 대답한다.
이 지역 내에 여러 개의 무슬림 식당이 있는데, 무슬림들은 돼지고기와 피를 먹지 않으며 가축을 도살할 때도 그들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하기 때문에 무슬림 식당 입구에는 항상 무슬림 식당이라는 간판이 걸려져 있다. 그리고 모스크 근처에는 무슬림들을 위한 용품들과 옷감들을 파는 가게도 있다. 남부지역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은 라마단을 엄숙히 지키고 있다.
<카톨릭>
핫야이에는 성당이 하나 있다.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아침에 두번, 저녁에 한번 예배가 있다. 성당 바로 옆에는 카톨릭에서 운영하는 학교인 '생콩위티아스쿨'은 (핫야이 교육 참조), 복음을 전하는 일보다는 교육사업에 치중하고 있다. 학교 내에 여러명의 신부님이 계시는데, 작은 예배당에 모여서 매일 아침과 저녁에 30분씩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약10명 정도가 참석하고 있다.
2. 문화적 특성
신화와 상징
태국의 국왕은 모든 국민의 정신적 지주이다. 정치적으로 문제가 되는 타이 무슬림이나 그 외 소수 민족들까지도 왕과 왕실은 존경과 사랑의 대상이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국왕이 부처의 자손이라고까지 믿고 있다. 이러한 믿음의 기초는 그들 세계관에 깔린 왕에 대한 신화에 근거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왕에 대한 신화를 보면, 아주 먼 옛날에 하늘에는 좋은 신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 중에 람(RAM)이라고 하는 신이 있었다. ‘람’이라는 신은 해와 달의 신인데 반대편에는 나쁜 신인 거인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적이었고 비록 그들이 신이지만 사람과 같이 생명이 한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다니다가 큰 뱀이 산을 감아 물을 휘저어서 거룩한 물을 만드는데 그 물을 마시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 그 물을 마시려고 갔는데 신은 뱀의 꼬리 부분에 있었고 거인은 머리 부분에 있어서 뱀으로부터 나오는 불로 인해 거인은 죽고 신은 성수를 마시고 영원히 살게 되었다. 신은 기이한 독수리를 부리고 있었는데 그 독수리는 신을 보호했고 신이 가고자하는 대로 신을 태우고 다녔다. 왕은 그 신의 피를 이어받았으며 그 기이한 독수리는 왕을 잘 보호해주었다. 왕을 라마(RAMA)라고 부르고 그 독수리는 ‘라마야나(RAMAYANA)’라고 부르는 것은 신의 이름인 람(RAM)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라마야나(RAMAYANA)’에 대한 다른 설명도 있는데, 라마야나에 대한 서적을 보면 힌두교의 신중의 하나로 악한 뱀과 싸우고 잡아먹은 좋은 신이라고 나와있다.(태국사람들은 뱀이 몸을 감는 꿈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신화와 믿음의 결과로, 태국사람들은 5대왕 (PIYAMAHALA)를 매주 화요일에 숭배하는데 왕이 화요일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때 사람들은 향과 꽃과 과일 등을 바치는데 그렇게 하면 행운이 오며 사업이 잘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왕이 선왕으로 꼽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정에서나 사업장에서 일반적으로 숭배하고 있다.
왕에 대한 신화 외에도 천둥, 번개치는 비오는 날에는 아이들이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드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메카라(MEKARA)라는 여자가 손에 크리스탈을 가지고 노는데 그것은 번개와 비를 오게 하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혼자 높은 곳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했는데 그녀는 혼자 나가서 놀곤 했다. 그런데 그곳에는 시커먼 망토를 입은 나마손(Namason)이라는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그녀가 가지고 노는 크리스탈을 빼앗으려고 하였다.
모든 중국인들과 일부 타이인들은 매일 아침 상점을 열 때 ‘디조엣’이라고 부르는 향을 피우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들은 불교인이다. 전통의식은 도시보다는 시골에서 잘 지켜지며 아직까지 어린 학생들은 학교울타리 한쪽 벽면에 놓여있는 코끼리 신상 앞을 지날 때마다 무릎을 꿇고 합장하여 세 번 절을 하는데 이 코끼리 신상이 자신들이 공부하는 것을 도와준다고 생각하고 있다.
학교에 전해지는 코끼리 신상에 대한 설화가 있는데 하늘에 신의 아들이 있었는데 세상에 대한 관심이 너무 많아 아버지로부터 하늘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처음으로 땅에 내려와 만난 것이 코끼리였는데, 코끼리가 땅의 인간의 모습인줄 알고 코끼리의 목을 베어 그것을 뒤집어썼다. 그래서 결국 얼굴은 코끼리가 되었고 몸은 사람의 형체를 지니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코끼리 신은 “Father of Art, successful god"으로 여기게 되었다. 주로 예술학교의 상징이 되었다. 예술인들은 이 신으로부터 영감과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상징으로는 봉황새처럼 보이는 새의 이름이며 정부를 상징하는 쿵타이가 있다. ‘쿵타이’라는 도시가 따로 있고 정부의 권위를 상징한다. 정부은행(KUNG THAI)로고로 사용하고 있다. 쿠릇은 새가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과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날개 위에 팔이 있다. 그리고 새의 발 모양을 하고 있다. 쿠릇은 새의 이름이고 하늘에서부터 내려왔다고 한다. 부처를 운반하는 차로 사람들은 이 쿠릇이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고 믿고 있다.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항상 등장했던 짬비는 타이항공도 이 짬비를 사용한다. 짬비는 ‘난’을 나타내는 것이다. 랑파(NANGFA)는 앉아서 빌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여자의 모습으로 이 그림을 붙여 놓으면 손님이 많이 온다고 믿고 있으며 그림주위에는 숫자 같은 것이 적혀있다. 일종의 부적이다.
예술 문화
‘낭딸룽’(인형극)은 원래 인도에서 유래된 것으로 태국 남부지방에서 볼 수 있다. 태국 남부지역에 아직까지도 성행하고 있는 그림자극은 주로 초저녁에 시작한다. 때로는 야외식당에서 식사를 즐기며 낭딸룽을 관람하는데 주말저녁부터 밤늦게까지 행해지고 있다. 탈춤과 드라마는 원래 왕궁 안에서만 행해졌던 것이며 라콘은 왕궁 밖에서 행해졌다.
마누(전통춤)- 남부의 전통적인 춤으로 손가락에 뾰족한 것을 끼우고 원색의 구슬을 몸에 두르고 춤을 추는 것인데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데 사용하였다.
음식 문화
핫야이 사람들은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많이 먹으며 볶음밥을 주로 먹는다. 기름에 튀긴 국수에 어묵이나 돼지고기를 넣은 국수도 있다. 그러나 볶음밥이나 국수는 모두 기름기가 많아서 느끼하다. 이러한 느끼한 음식이 싫다면 찰쌀밥을 먹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대나무시루에 쪄서 익힌 꼬들꼬들한 찹쌀밥을 조그만 대나무로 엮은 통에 담아주는데 다른 반찬과 함께 먹으면 별미이다. 반찬으로는 ‘냄’(돼지고기 발효음식)에 쌈장을 찍어 먹거나 해물과 야채를 섞은 샐러드와 함께 먹는다.
그러나 무슬림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또 가축을 잡을 때도 그들의 특별한 방법이 있기 때문에 무슬림을 위한 식당이 시내 곳곳에 있으며 PSU 대학 내에도 3-4곳 있다. 무슬림 식당이라는 간판을 걸고 장사를 하고 있으며 식당 내부에는 알라의 99개의 이름이 쓰여져 있는 벽걸이 장식이나 메카의 카으바 신전의 모습을 중심으로 한 성지순례사진을 식당을 들어서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걸어놓고 있다.
결혼 및 가족제도
결혼 적령기는 대학을 마친 25세 전후로서 결혼식은 대개 집이나 호텔에서 한다. 결혼과 동시에 부모를 떠나 핵가족을 이루고 있으며, 한국에서처럼 장남이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니라 형제 중에서 아무나 모시게 된다. 대개의 경우 마지막으로 결혼하는 딸이나 아들이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결혼 후 여성들도 일하는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며, 자녀는 2-4명을 두며 양육은 노인부모의 몫이다. 그래서 핫야이 시내에서는 노인들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그리고 대부분 노인들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타이계와 중국계는 서로 통혼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말레이계와의 결혼은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이유는 언어적인 문제와 일부다처제 등 종교적인 문제 때문이다. 우리가 인터뷰한 사람들 중 다수가 말레이와 결혼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무슬림들은 불교사회에서도 그들의 신앙을 굳건히 지키고 타종교인들과 타협하지 않고 타인에게 개종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태국인들의 눈에 비친 무슬림들의 게으른 생활과 무슬림 여성들이 행상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는 모습이 좋아 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결혼식은 주로 집이나 호텔에서 한다. 특별히 불교인들은 승려가 주례를 하는데 이때에 성수(holy water)가 필요하다. 결혼식은 결혼하기 1년 전에 신랑이 신부의 아버지에게 결혼을 허락 받아야 하며 결혼식 3-4일 전에 신랑은 신부대 10만 바트(귀금속을 포함한 보통의 경우)를 가지고 신부집으로 간다. 결혼식 날 아침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신랑집으로 오는데 이때 신부는 설탕으로 만든 케익과 쌀 등의 곡식을 가지고 가는데 설탕케익을 가져가는 것은 달콤한 부부생활을 상징하는 것이고 곡식은 다산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결혼식에는 타이 전통의상을 입으며 타이 전통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축제이다. 신혼여행은 3일정도 주위의 섬으로 간다.
장례식
장례식은 보통 3-5일장을 지낸다. 사원에서 화장을 하는데 수요일과 일요일에는 장례를 치르지 않는다. 특별히 수요일은 unlucky day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있어서 이날에 장례식 하는 것을 피한다고 한다. 국왕의 경우는 1년장을 하고, 국왕과 고위 관료의 경우는 관을 눕히지 않고 세워놓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불교인들은 사원에 갈 때 꼭 가지고 가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초와 꽃과 향이다. 불교에서 촛불은 인생무상을 뜻하며, 꽃은 아름다움의 무상, 향은 순결한 삶의 향기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불교인들은 또한 절에서 추도회를 한다. 죽은지 2년째 된 할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가족과 이웃들이 모여있는데 검은 옷을 입고 있으며, 한 스님이 영정근처에서 설법을 하고 화환과 색전구로 화려하게 장식한다. 태국의 불교사원은 한국과 비교할 때 다른 면이 많다. 태국에서는 누워있는 불상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와트 핫야이 나이’ 사원에 가보면 누운 불상의 길이가 약40미터 정도나 된다. 그리고 사원 안에는 코끼리 상들도 있고 코끼리에도 금종이를 붙여놓았다.
3. 사회생활
변모하고 있는 사회
태국의 약 70%는 지방에 거주하고 있는 농민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근대화의 물결에 따라 자급자족 농업에서 탈피하고 있으며 과거 수십 년간 농촌의 변화는 태국인 다수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도로 확장과 전기공급뿐만 아니라 라디오, 오토바이, 텔레비전 등이 농촌에도 필수품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TV나 전화 보급률은 90%정도이지만 PC보급률은 아직 보편화되어 있지 않으나 몇몇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인터넷을 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벼농사가 전 농업생산의 90%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50%이하로 감소되었다. 핫야이 외곽지역에는 공장들이 세워져있는데 주로 고무공장이나 통조림공장으로 주로 말레이시아인이 이곳에 많다. 태국인들은 말레이인들에 대해 우호적이지도 적대적이지도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국인들에 대해서는 특별한 구분이 없고 우호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쇼핑센터에 들어서면 진열대위에는 비싸고 고급스런 물건들과 외제물건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중에는 물론 한국제품도 있지만 상당수는 일본제품들이다. 휴대폰 사용자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데 비싼 값을 지불하고 휴대폰을 구입한 사람이 장거리전화를 쓰려고 하는 사람에게 몇 분에 얼마씩 돈을 받고 장사를 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휴대폰은 시외에 전화를 할 경우도 시내요금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교통수단으로 ‘툭툭’이 있는데 보통 툭툭은 시내내부를 도는 순환형과 외곽지역으로 가는 툭툭이 있는데 이것을 잘 구분해서 타야한다. 시외로 가는 툭툭은 차체가 크고 높아서 사람들이 서서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시내순환용 툭툭은 지붕이 낮고 양쪽으로 의자가 놓여 있어서 8-10명 정도가 탈 수 있다. 툭툭을 타는 방법은 택시를 타는 것처럼 손짓을 하여 부르면 된다.
핫야이 사람들은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극히 소수이다. 그러나 PSU에 다니는 학생들과는 어느 정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음식점 및 상점은 중국계가 가지고 있으며 공장 등은 말레이인들이 가지고 있다. 타이사람들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매우 가난한 삶을 살고 있다. 시장과 거리 곳곳에는 복권을 파는 아주머니들이 많다. 백화점 주변에는 상점들이 즐비한데 시계, 라디오 등 전자제품은 주로 대만제이다. 그리고 건물들이 주로 1층은 상점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2-3층은 주거용인 상가주택이 주를 이룬다. 사람들은 전문직종을 선호한다. 공무원 초임은 4,000 바트인데, 경력5년은 8,000 바트, 경력10년이 되면 10,000 바트를 받는다.
핫야이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를 하다보면 그들의 순박함과 부드럽고 정적인 느낌을 갖게된다. 그리고 그들은 친절하다. 그러나 그들만이 갖고있는 어떠한 자부심과 여유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골에서 핫야이로 이주하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지만 인근도시에서 핫야이로 쇼핑하러 오는 사람들은 매우 많다. 말레이시아인들은 주말을 이용하여 이틀정도 핫야이에 머물면서 쇼핑도 하고 골프를 즐긴다고 한다.
태국여성
태국에서 여성의 위치를 보면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국 여성들은 태국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특히 전문직에서 여성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의사, 변호사, 회계사, 대학교수들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미국수준보다 높다고 한다. 그러나 태국에서의 사회화 양상은 공공부문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견해를 여전히 반영하고 있다.
교육
교육제도는 6-6-4제로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대학교 4년 과정이다. 핫야이 지역에는 초등학교62개 (국공립57, 사립5개), 중/고등학교7개, 종합대학1개, 기타5개가 있다. 유치원은 2년 정도 다닌다.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입학시험을 치뤄야 하는데 국어, 수학, 영어, 화학, 생물, 물리시험이며 대학진학률은 20%로 정도이다. 핫야이 학생들은 교복을 입는다.
<생콩위티아 스쿨>
핫야이 사람들이 선호하는 학교는 생콩위티아 학교로서 학교 정문에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써있는데 이탈리아 선교사가 세운 카톨릭 미션스쿨이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과정까지의 남학생들을 위한 학교이다.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여학교가 있는데 이곳은 수녀가 운영한다. 2000년에는 개교 50주년을 기념행사가 있을 예정이며 이 학교의 교육이념은 개종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인본주의다.
학생 수는 2.500명 가량이며 이중 카톨릭 학생 수는 100명 정도이다. 이 학교에는 110명의 교사가 있는데 카톨릭이 25명, 무슬림이 3명이며 나머지는 모두 불교인이다. 이 학교에는 5명의 신부가 있다. 안토니 레스텔리 신부님은 현재 이 학교 교장으로 태국에 25년째 선교사로 계신다. 생콩위티아 스쿨은 핫야이에 거주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에서도 유학을 오기도 하는데 이들을 위한 기숙사도 마련되어 있다.
학교는 최신 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초등, 중등, 고등학생을 위한 도서관이 각각 마련되어 있고 영화감상을 할 수 있는 시청각실과 컴퓨터로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방과후 학생활동으로 밴드부가 있고 어린이들은 축구를 한다. 학교 건물 안에 작은 예배당이 있어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30분씩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약10명 정도가 참석하고 있다고 한다. 생콩위티아 스쿨은 송클라 주에서 규모가 큰 학교에 속하는데 스카우트 캠프를 갖고 있다. 방학은 가장 무더운 3-5월까지 약3개월간이다. 이 학교의 한 학기 등록금은 8,000 바트 정도인데 사립학교로 학비도 좀 비싸고 카톨릭 학교이기도 하지만 현대적인 시설로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학교이다.
<송클라 왕자 대학교(PRINCE SONGKLA UNIVERSITY>
PSU는 1960년 태국왕자가 세운 대학으로서 태국전역의 학생들이 모인 대규모의 대학이다. 각 단과대학 별로 5개 지역에 캠퍼스가 나눠져 있고, 캠퍼스 안에 우체국, 은행, 라디오 방송국 등이 있으며 약12,000명 정도의 학생이 있다.(그러나 총학생 회장은 학생 수가 7,000명이라고 한다) 대학 1년생은 기숙사에 거주하며 나머지학년은 추첨을 통해 기숙사에 들어올 수 있다. 기숙사의 한 학기 사용료는 2,200 바트 정도이며 약3,500여명이 현재 기숙사 생활을 하고있다고 한다. 어른들과 달리 학생들은 불교인과 무슬림들도 서로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태국인은 20세가 되면 신분증을 발급 받으며, 남학생은 21세가 되면 추첨을 통해 군대에 갈 사람을 뽑는다. 대학교의 여름방학도 마찬가지로 가장 더운 3월부터 5월까지이며 특별히 겨울방학은 없다. 여름방학이 끝나면 곧바로 새 학년이 되는데 1학기는 6월부터 9월까지이고 2학기는 11월부터 2월까지이다.
대학교에서도 교복을 입어야하는데 여학생들은 블라우스와 스커트이다. 블라우스는 흰색을 입으며, 스커트는 검정색이나 회색 또는 짙은 청색 중에서 아무거나 입어도 되며 치마길이나 트임은 자유롭다. 그러나 남학생들은 교복을 입지 않는다. PSU안에는 기독학생모임이 있다고 한다.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모든 아이들이 별명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들끼리 별명을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별명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고 의미가 없어도 발음이 예쁜 것을 별명으로 갖는다. 대학생들은 호출기를 가지고 다닌다.
핫야이 지역에는 노래방이 많이 들어서 있다. 대학생들도 노래방 출입을 한다. 거리의 젊은이들은 옷차림은 개방적이고 다양하다. 머리염색, 무스와 스프레이로 잔뜩 멋을 부리고 머리를 길러서 뒤로 묶은 남자, 찢어진 청바지 또 여자들의 노출도 눈에 띈다. 크고 작은 상점마다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다. PSU는 송클라주를 대표하는 규모가 큰 학교로서 이곳에서는 갖가지 행사들이 펼쳐진다.
4. 핫야이의 복음화 현황
태국 교회사
<기독교의 전래>
기독교가 최초로 태국에 들어온 것은 525년에 경교신자(네스토리안 기독교인)인 코스모스가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기독교와 접촉한 것은 1511년 포르투칼의 사절단과 동행했던 카톨릭 신부에 의해서였고 실제로 태국에서 기독교가 포교활동을 한 것은 1555년 도미니칸 신부들에 의해서였지만 이들은 곧 순교를 당했다. 개신교 선교는 1828년 중국에서 선교하던 칼 구츨라프와 영국LMS선교회 소속인 제이콘 톰린 선교사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들은 방콕에 살던 중국인들 사이에서 일하도록 허락을 받아 태국어를 배워 태국어로 중국성경을 번역하고 문서선교와 전도활동을 열심히 하였다. 그러나 태국인들의 서구에 대한 반감으로 결실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1835년 브래들리 선교사가 들어와 새로운 서양의술과 인쇄술을 태국에 소개하면서 헌신적인 사역을 펼쳐 국왕으로부터 호의를 얻게되어 자유롭게 선교사역을 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개신교가 실제로 생명력을 갖기 시작하고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게 되었다.
<교회 정착기(1850 - 1914)>
이 시기의 선교사들은 재산을 얻고 선교부를 세우고 그 나라의 문화, 관습, 언어를 습득하였고, 병원, 학교, 고아원 등을 운영하여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제 1기(1850 - 1883): 라마 4세 몽끗왕이 즉위하면서 선교사역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는데, 그는 자유롭고 아량이 있는 진보주의자로, 선교사와 매우 친밀하여 많은 도움을 주었다. 1868년 즉위한 쫄라롱껀왕은 1878년에 종교의 자유를 선포하였다. 이로 인하여 기독교의 선교는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의 사역 방법은 첫째로 의료 사역이었고, 1928년 외과 의사인 구츨라프에 의해 시작된 이래로 선교사들은 빈곤과 질병으로 고생하는 태국인들에게 의료혜택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둘째 선교방법은 학교를 통해서였다. 선교사들은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젊은이들의 교육이 복음 전도의 수단으로 생각하였다. 셋째 인쇄업을 통한 문서선교였다.
제 2기(1883-1914): 이 시기는 교회 성장이 가장 빠른 시기로, 이와 같은 성장의 요인은 밀길버리 선교사의 활동으로 가능했다. 그는 교회를 설립하려는 목적으로 부지런히 순회선교를 하였고 교육과 의술을 통해 주민들과 가까이 할 수 있었다. 개종자가 어려움을 겪을 때 그들을 강력하게 돌보아 주었으며 교육을 통해 태국어를 가르치고, 가족 단위의 개종에 관심을 가져 많은 결실을 맺었다. 또 다른 성장 이유는 지역적으로 편중되어 있는 강력한 민족주의와 불교의 영향을 들 수 있다. 대체로 사찰과 승려들은 중부와 남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고, 기독교를 서양종교라 배척하였다. 반면에 북부의 주민들은 자신들을 라오인이라 지칭하며 소위 콘우왕 즉 북부인이라 부르며 중앙 타이를 중심한 민족주의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교회 시련기(1914-1945)>
1914년 이후 교회 성장은 계속 하락세를 보였다. 이렇게 된 이유를 크게 네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2차 세계대전중 일본의 태국점령 후, 일본은 기독교를 박해하였다. 둘째, 기독교 선교사들과 선교에 도움을 주었던 쫄라롱껀왕의 사망으로 선교활동이 위축되었다. 셋째, 강력한 두 번의 불교를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 운동 때문이었다. 넷째, 선교 정책의 문제로 당시 선교의 중심에 있던 장로교가 전도와 교회개척보다는 병원이나 학교설립 등의 사회복지에 치중하였기 때문이다.
<교회 부흥기>
제 2차 세계대전 후 기독교가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1945년 8,000 명이던 신자가, 1960년에는 24,539 명, 1978년에는 58,953 명으로 성장했으며, 1988년에는 110,000 명으로 급성장 하였다. 1970년 이후의 교회 성장은 복음이 전파된지 오래되었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전파됨으로 태국인들 사이에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1973년과 1978년 사이 선교사가 23%, 기독교 기관 50% 나 증가하는 등 복음전파에 대한 투자의 증가도 한 요인이다. 1987, 1988년에는 태국 교회들이 제자훈련하교, 제자삼기 운동 등으로 선교사들과 협력하여 좋은 결실을 내었다. 세 번째로 선교단체의 초교파적인 연합활동이 부흥의 원인이 되었다.
현재 선교 상황
과거에는 사역의 중심이 의료와 교육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는데, 이를 통해 개종자들이 생겨나고 교회도 개척되었다. 현재는 도시와 농촌의 복음화와 교회 개척 그리고 성경공부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중국인 교회>
시청에서 기차역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중국인 교회가 나온다. 평일에는 정문과 후문이 잠겨있고 폐쇄적인 느낌을 받게 한다. 1943년경에 미국인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이 교회에 전에는 선교사가 있었으나 지금은 중국인 목사가 20여 년째 이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교인은 약 4-50명 정도이며 예배는 금요일 저녁과 주일에 드리고 있으며 교회 안으로 들어서면 30년 된 좋은 소리의 피아노가 놓여있고 타이성경과 중국인 성경이 비치되어 있다. 찬송가는 한 면에는 타이어로 다른 면에는 한자로 되어있다.
<중국인 침례교회>
남침례교 잭(Jack .E. Mahaffey)부부가 1969년에 세운 교회로 유아들이 20여명, 청년들이 30명되고, 장년은 거의 없다고 한다. 잭부부는 핫야이 남서쪽에 교회를 하나 더 세웠으며 96년에 미국으로 돌아갔다. 금요일저녁마다 찬양예배를 드리고 있다. 침례탕이 정원 안쪽에 마련되어있고, 예배당에는 드럼, 키보드, 피아노가 놓여져 있고 유아들을 위한 예배실이 있다. 교회에는 사택과 사무실 그리고 식당이 있다. 교회 사무실 안에는 컴퓨터가 있고 성경공부교제와 전도책자들이 있다.
<안식교>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몇몇의 핫야이 사람들에게서 안식교가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복음에 대한 수용성
핫야이 사람들은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타종교를 무시한다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만약 기독교인이 전도지를 주면 받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전도지가 만화로 되어 있다면 더욱 재미있게 볼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핫야이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무슬림보다는 기독교인에게 호의를 갖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생콩위티아 스쿨에는 몇 가지의 신앙서적이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기는 하지만 어린이들이 볼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는 책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복음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5. 창의적 선교 전략
입국 전략
핫야이 지역에서 선교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학생 신분으로 PSU에서 공부하면서 선교할 수 있다. 대학 내에는 외국인 학생들이 그리 많지 않지만 외국인에 대해 호의적이기 때문에 대학생들과의 접근이 가능하다. 또한 핫야이 지역에는 사설학원들이 들어서 있는데 주로 영어와 컴퓨터를 가르치고 있다. 현재 핫야이 사람들은 영어와 컴퓨터에 대한 관심이 많기 때문에 학원 사역도 중요한 선교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태국인들은 또한 음악과 체육을 좋아하는데 학생들이 방과후 활동으로 축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태권도 사범이나 축구 등 스포츠를 통한 사역도 가능하다.
핫야이는 무역을 할 수 있는 좋은 지역이다. 도시에 비해 쇼핑센터와 호텔이 많이 세워져있는데 이것을 이용하여 한국제품들을 수출하는 것도 좋은 사업일 것이다. 그리고 휴대전화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데 이러한 기회를 이용하여 컴퓨터, 출판회사, 휴대전화 사업 등으로의 위장이 필요하다.
사역의 기회와 전략
핫야이에서 선교하기 위해서는 먼저 핫야이 현지 교회의 상태를 충분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핫야이에 있는 교회에 관하여는 위에서 소개한 대로 5-6곳에 교회건물이 세워져 있지만 이들 스스로가 핫야이에서 전도할 수 있는 역량은 부족하다. 각 교회마다 교인수도 얼마되지 않고 침체되어 있는 분위기여서 이 지역 복음화를 위해서는 먼저 기독교인들에 대한 제자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시급하다. 신학 교육을 지원하고, 지도자 양성에 필요한 자원을 공급해주는 일과 제자 양육을 통하여 성경공부리더를 길러내고 활기있는 교회가 되도록 침체된 교회들을 다시 일으키는 사역이 필요하다.
대학캠퍼스 사역으로 태국의 국립대학인 PSU에는 만사천명의 학생들이 있는데, 대학 내에 외국인 학생은 거의 없다. 학생으로 입학하여 기독학생모임이 활발히 이루어지도록 지원하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복음전도와 제자양육 사역을 할 수 있다. 이 대학의 학생들은 불교인과 무슬림 학생들이 주를 이룬다.
PSU대학 근처에는 타지에서 온 학생들이 자취를 하고 있다. 유학생들 중에는 식당에서 파트 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는 학생들도 있다. 이들에게 접근하여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기독교 문서와 기독교 서점을 통해 성경과 신앙서적들이 판매되고, 문서나 대중매체를 위한 사역이 활발히 진행되어 라디오 방송을 통해 기독교 프로그램이 태국 전역에 방송되도록 노력해야한다. 특히 더운 나라에서는 밤 문화가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저녁시간을 이용하여 영화상영을 하는 것도 좋은 사역이 될 수 있다. 기독교 주제를 담고있는 드라마나 영화들을 상영하여 매체를 통한 복음전도와 제자훈련을 발전시켜야 한다.
적절한 전도지와 교재를 계발하여 기독교 관련 서적들을 태국어로 번역하여 도서관에 비치한다면 기독교에 대한 관심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몇 가지 전도지가 있기는 하지만 신앙 성숙을 위한 서적과 성경공부교재등이 필요하다.
간호사나 공무원 등 직장인들을 위한 선교가 필요하다. 기독교인들이 직장에서 본을 보이고 믿지 않는 이들을 잘 섬길 수 있도록 훈련하며 직장선교를 할 수 있도록 이들을 지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영어나 컴퓨터, 태권도를 가르치는 교사가 많이 필요하며, 특히 윤락녀들을 대상하는 사역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핫야이 지역은 무슬림들이 많이 살고 있기 때문에 무슬림을 위한 사역자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태국의 불교는 오랜 기간동안 정령숭배와 혼합되어 왔는데 핫야이 사람들의 영혼을 억압하고 있는 우상숭배에서 자유 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이들이 믿고 있는 종교에 회의를 갖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는 날이 하루속히 오도록 기도하자. 그리하여 이들의 손으로 만든 우상들을 이들이 스스로 깨뜨리는 그날을 빨리 볼 수 있도록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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