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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요약

말씀요약

[25.4.20 주일말씀 설교전문]
2025-04-23 10:03:42
가포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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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 시신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에 의해 빠르게 장사되었습니다. 예수님께로부터 더 이상 얻을 것도 바랄 것도 없는 그때, 아니 오히려 잃을 것이 많았던 부자 공회원, 그가 <빌라도에게 당돌하게 찾아 들어가 예수님의 시신을 내어 줄 것을 요청한 것은>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그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밤새 끌려다시니며 심문을 받으시다가, 금요일 오전 9시에 못 박히셨고, 오후 3시에 운명하셨습니다. 6시간 동안 십자가에 매달려 계셨던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2~3일 정도를 버티다 죽는 것이 일반적이고, 개중에는 일주일을 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예수님은 얼마나 채찍을 심하게 맞았는지, 채찍자국에서 나오는 피, 대못같은 가시 면류관이 머리를 찌름으로 나오는 피, 그렇게 출혈이 심하고, 신경이 쇠약해지고... 그래서 6시간 만에 숨을 거두신 것입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을 사랑하고 흠모했던 사람들의 움직임이 빨라졌습니다. 대표적으로 아리마대 요셉은 안식일이 시작되는 금요일 오후 6시가 되기전에 빨리 시신을 내려 장사지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에는 장례를 치를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신을 만지면 부정해지고, 장례는 또 하나의 일이 됩니다. 그래서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만일 예수님을 그 상태로 안식일 하루를 지내게 한다면, 들짐승에 의해 시신이 훼손당할 위험이 있고, 까마귀, 독수리들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래서 3시간 안에 그 모든 일을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잃을지라도, 당돌히 빌라도를 찾아간 것입니다. 
또 바빠진 사람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녀들은 예수님을 한순간도 떠나지 않고, 운명하시는 장면, 요셉의 무덤에 안치되는 장면 등 모든 것을 주시하였습니다. 
새벽에도 말씀드렸지만, 부활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어떤 이들이... <마리아와 여인들이 빈 무덤을 봤다>고 하는데, 분명히 다른 무덤, 그냥 비어있는 무덤을 찾아갔을 것이다 말합니다. 그러나 여인들은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예수님의 장사되는 무덤을 주시>했습니다. 그럴수가 없죠.  
그녀들은, 안식일을 지나고, 다음날 이른 새벽,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거기서 빈 무덤을 보았고, 결국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녀들에게 제자들에게 가서, 부활의 소식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부활의 첫 증인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모든 스토리를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 속에서 두 가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1.십자가를 통해 사랑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사모했던 그녀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에 바르고, 관에 넣어둘, 향품을 준비해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일찍 서둘러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1절부터 2절까지를 보겠습니다. 
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그런데 대책이 없었습니다. 대책없이 간겁니다. 
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그 돌문은 매우 크고, 원형 라운드 형식으로 제작되어서, 남자 장정 여러명이 힘쓰지 않으면 열수없는 문입니다. 그걸 이 이른새벽에 누가 도와줄것이며, 자신들은 할수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간겁니다. 
그 어떤 장애물도, 그녀들의 주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꺽을수가 없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할때는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가봐야 대책이 없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사랑이 그녀들의 발걸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그녀들과 아리마대 요셉, 니고데모 이런 사람들은 참으로 귀한 사람들입니다. 제자들이 해야 할 역할을 대신해서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기는 <예수님에게도 뭘 바랄게 없는 시간>입니다. 이미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이미 죽으신 예수님에게서 빵도, 떡도 나올게 없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예수님에게서 거리를 두어야 신상에 좋을 때>입니다. 공회 회원이었던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향한 존경과 사모함, 사랑하는 마음을 감추어 둘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사랑은 그런 것입니다. 사랑은 감출 수가 없습니다. 감추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상식을 뛰어넘고, 계산기 두드리지 않고, 가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움직이게 하였을까요?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적대자들에게 조롱받으셨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내려와서 너 자신을 구원하라! 여기 너를 못박는 사람들 혼쭐내고, 너를 구원해봐라> 그렇게 조롱받으셨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거기서 내려오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거기 있는 사람들은 그 앞에 무릎꿇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릎꿇음이 <굴종일까요? 사랑일까요?>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그건 두려움에 떨며 할 수 없이 무릎 꿇은 굴종에 불과합니다. 
구세군 창시자 윌리암 부스는 “만약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셨다면 나는 그런 예수님을 믿지 않겠다”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에서 내려오셨다면, 거기에 있던 몇몇 사람들에게는 대단한 권세자로 인정받으셨을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그다지 큰 감동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기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값을 다 값으시기 위해서, 다 치르기위해서 제물처럼 죽이시기 위해서, 그 어떤 기적도 일으키지 않으신 것이 기적 아닌가요? 그것이 기적입니다.  
그래서 이런 죽음의 모든 과정을 지켜본 백부장이 <그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고백이 터져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굴종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언제나 우리를 억압하지 않으십니다. 강압하지 않으십니다. 두려움으로 할수없이 무릎꿇는 굴종의 관계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만약 세상통치자들처럼, 그렇게 힘으로 능력으로 인간들을 정복하셨다면, 이미 인간들은 로보트처럼 움직일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자녀들이, 우리의 배우자가, 우리의 동역자가... 억지로가 아니라, 정말로 고마워서, 정말로 애뜻한 마음으로 우리를 사랑해줄때, 얼마나 좋아요. 하나님은 그 사랑을 원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집떠난 탕자를 오랫동안 기다려주셨습니다. 탐정들을 보내, 어디있는지 찾아내어 끌고와서 그 앞에 무릎꿇리지 않았습니다. 만약 아버지가 그랬다면, 아들은 억지로 집에 붙어있었을지는 몰라도, 아버지를 사랑하지는 못할 겁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끝까지 머물러계셨던 이유는, 우리와 사랑의 관계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에 감격하여, 우리도 사랑으로 응답하고, 감사하기에, 자발적으로 주님 앞에 나와 예배하고... 그 관계를 원하십니다. 
이처럼 십자가는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이 사랑이 우리의 삶에 있어야 합니다. 이 사랑은 우리를 살게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최근에 한사람의 인생을 가족사랑이라는 주제로 드라마에 담아 보여준, <폭싹 속았수다>가 있는데, 거기보면, 참 명대사가 많지만, 그중에 <살면 살아져>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이 삶을 살게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그것을 <사랑>으로 주셨습니다. 자식을향한 사랑, 배우자를 향한 사랑>... 그 사랑때문에 숱한 시련과 고난도 뒤로하고... 죽을만큼 힘들어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도 그러한데... 우리에게는 십자가에서 사랑의 원형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우리가 그 사랑을 힘입어 살면, 억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사는 것입니다. 영생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으로 충만한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2.변화된 삶을 통해 부활을 증거하길 원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여인들은 천사의 말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라 말합니다. 
6-7절을 보십시요. 
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부활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부활이란 신비를 과학이나 이성으로 다 담아내지 못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가장 큰 증거는 무엇일까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의 <변화된 삶>입니다. 
사도바울도 그렇게 변했습니다. 그는 <예수믿는 사람들을 수색해 체포하기위해> 다메섹으로 가는 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앞에 꼬꾸라졌습니다. 그리고 다메섹 아니니아라는 제자에게 안수를 받고, 그 눈에서 눈꺼풀이 벗겨지고,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것을 보게되었고, 새영을 받게되었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그 삶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이제 부활의 가장 큰 강력한 증거는 <변화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그것을 증거하는 일은, 부활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일보다 훨씬 강력했습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전에는, 그에게 예수님은 <단순한 인간형님>이었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비아냥거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 삶은 변화되었습니다. 초대 예루살렘을 교회를 목회하는 주님의 종으로 살게되었습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말씀 7절말씀을 보면, 베드로의 이름은 언급됩니다.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제자들하면 다 들어가는 것인데, 베드로를 제차 언급합니다. 왜 일까요? 거기에는 베드로를 향한 예수님의 깊은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리리바다로 가셔서 물고기 잡고 있는 베드로와 제자들을 만나셨습니다. 이른 아침입니다. 거기서 떡을준비해놓고 생선도 구워준비하셨습니다. <숯불을 피워 그렇게하셨습니다> 
이 숯불이 뭡니까? 베드로가 숯불을 보면, 트라우마 일어나지 않을까요? 구멍에 숨고 싶지 않을까요? 그 앞에서 예수님 모른다 세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예수님이 그거 아시고, 그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주길 원하시는 겁니다. 그거 덮어놓고 살지말라는 거예요. 그래서 더이상 트라우마가 아니라, 사랑과 용서의 기억이 되도록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부인했던 자리에서, 세번 사랑을 고백하도록 하셨습니다> 
왜 또 물고기 잡을 때 찾아오셨을까요? 3년전 베드로를 부르실때, 물고기 잡을 때 오셨습니다. 거기서 <네가 이후로는 사람낚는 어부가 되리라>하셨습니다. 그렇게 상처를 치유해주시고, 성령을 받은후에,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설교할때, 3천명, 5천명씩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이렇게 예수님은 변화된 삶을 통해서 부활의 기쁜 소식을 증거하게 하십니다. 

지극히 약한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나라를 확장하십니다. 
마리아와 여인들이 부활의 첫증인 된 것도 그러합니다. 그녀들은 기준으로 볼때, 증인으로서 유효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약한 그녀들을 부활의 첫증인으로 사용해주셨습니다. 그분의 나심도 마찬가지입니다. 들판의 목수들이 아기예수 탄생하심을 전하는 첫증인이 되게하셨는데, 그들또한 양치기일로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소외된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도록 그들을 너무 귀하게 사용해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약한 자들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귀히 여기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우리들은 사람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사람을 수단으로 여기지 말고, 목적으로 삼고, 한사람 한사람을 세우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하나님은 <부활>의 소망을 저와 여러분에게 선물해주셨습니다. 우리 삶이 <사랑으로 변화되어 세상중에 부활을 증거하며 살아가는 축복의 통로들이 다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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