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요약
함께 찬양- 일어나 걸으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걸으라!
성경 인물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을 뽑으라 하면, 다윗, 솔로몬, 베드로, 뭐 이 정도 뽑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단연 <가룟 유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다는 배반, 배신의 대명사입니다. 불신자들 입에서도 오르내릴 만큼 유명한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유다만큼 예수님을 배반했던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멀리 발치에서 지켜보다가 “당신도 예수의 제자 아니냐?” 그럴 때 예수님을 세 차례나 부인한 사람입니다. 그것도 마지막에는 예수님의 이름을 저주, 맹세하며 부인했습니다. 가룟 유다의 배반과는 차원이 다른 것 같지만, 베드로가 예수님의 신임을 얻었던 수제자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베드로의 배신도 결코 가볍다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배반 이후 두 명의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가룟 유다는 배신자로 낙인이 찍혀 버렸고, 그 인생 마지막이 비참하게 되었지만, 베드로는 오히려 교회의 기초가 되는 큰 인물이 되었습니다.
배반, 배신이라는 것은 신뢰를 어긋나게 했다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기대와 신뢰가 있을 터인데, 이따금 우리는 그 기대와 신뢰를 저버리고 살아갑니다. 이런 우리 삶에서,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다음, 제자들은 예수님의 약속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어느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그 다락방은 아마도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제자들과 만찬을 나누셨던 곳이라 여겨집니다. 누가 모였는지 13절부터 소개되어 있는데, 유다가 빠진 11제자, 거기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의 동생들이 합류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에 모인 숫자는 약 120명가량 되었습니다.
자,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인다는 것은 대단한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닌, 다수의 모임이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지금 예루살렘 안에는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소문이 일파만파 퍼진 상태입니다. 당국자들은 그 상황이 매우 불편했을 것이고,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예의 주시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어려움을 감수하고 예수님의 당부를 따라 한자리에 모이게 된 것은, 그들에게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지난 주일 생각한 <부활>입니다. 누구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말씀하신 것은 다 이루어지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죽으셨고,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신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흘간 기도에 전심을 다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다가, 어느 날 베드로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한 가지를 제안합니다.
그것이 16절부터 소개되어 있는데, 예수님을 배반하고 자기 길을 간 유다의 빈자리를 채우자는 것입니다. 자격 조건이 어떻게 되는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어야 하고, 예수님과 3년 동안의 사역에 동참하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는 때까지 쭉 함께 있었던 사람이어야 가능했습니다. 그게 21-22절에 나옵니다.
쉽지 않죠. 거의 사도급에 해당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찾아보니 120명 가운데 2명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요셉이고, 또 한 사람은 맛디아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다 사도로서 자격이 적합해서 누구를 뽑을지 잘 몰라서 제비를 뽑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제비는 아마도 작은 돌멩이 같은 것에 표기하고, 두 개를 한 통에 넣고 흔들어서 뽑는 형식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뽑힌 사람이 맛디아입니다. 맛디아가 가룟 유다의 자리를 채워서 12번째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성령이 내리시기까지 10일 동안의 사건을 살펴보면, 베드로가 참 많이 변했다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미 훌륭한 지도자가 되어 있는 것 같고, 좋은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렇죠. 가룟 유다의 빈자리를 채워야겠다는 생각부터, 왜 채워 넣어야 하는지 구약 성경 시편을 인용해서 모인 사람들을 설득시키고, 사도의 조건이 어떠해야 하는지도 다 정의해 주고 있는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예수님을 배반한 베드로였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한 40일 동안 그는 이미 확신 있고 소망 가득 찬 훌륭한 지도자로 변화되어 버렸습니다.
그럼 가룟 유다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가룟 유다의 마지막은 18-19절에 나옵니다.
18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19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여기 18절, 19절이 ( )로 돼 있는데, 이 말은 베드로가 120명 신자들에게 이야기할 때 한 말이 아니라, 누가가 누가복음, 사도행전을 기록하면서 이 책을 받아 읽는 데오빌로가 혹시 이해를 못 할까 봐 괄호로 적어 놓은 것입니다.
마태복음에는 유다가 가서 목을 맸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여기 18-19절은 "그 몸이 곤두박질을 쳐서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왔다", 그래서 “그 밭을 <아겔다마 – 피밭>이라 불렀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종합해 보면, 목매어 죽은 가룟 유다가 그 땅에 떨어져 거꾸러지고 배가 터져 창자가 쏟아졌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끔찍한 죽음이지요.
이렇게 두 사람이 배반했는데, 한 사람은 창자가 터져서 죽고, 한 사람은 교회사에 큰 기둥이 되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요? 무엇이 전혀 다른 결말을 만들었을까요?
우리는 여기서 이 두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를 살펴보며, 우리는 과연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두 가지 면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어야 합니다.
가룟 유다와 베드로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요?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안 믿었고, 베드로는 믿었다는 것입니다.
유다를 먼저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열두 사도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 사람을 통해서 능력도 나왔습니다. 열두 사도가 파송되었을 때, 귀신도 쫓고 복음도 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를 안 믿은 것을 어떻게 아느냐? 유다는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이 가진 특징을 다 갖추고 있었습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인가요?
1) 예수님을 구세주가 아니라 위대하신 선생 정도로 아는 것입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도 다 예수님이 훌륭하신 분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위인으로 인정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언자라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구세주로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가룟 유다가 그랬습니다. 성경을 보면 유다가 예수님을 부를 때 단 한 번도 "주님"이라고 부른 적이 없습니다. 그는 꼭 “랍비”요 “선생님”이라고만 불렀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유다에게 예수님은 그저 위대하고 훌륭하신 선생님 정도였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두 번째 특징은,
2) 교회 생활을 해도 자기 유익을 위해서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 교회에 보면 개중에 사업을 위해 등록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다 그렇다고 말할 수 없지만, 정치하는 분들 중에도 투표를 앞두고 표심을 위해 교회 등록을 하고 예배에 참석하는 일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등록 교회가 여러 군데입니다.
이런 경우는 예수님을 믿기에 교회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교회나 신앙생활에서 자기가 추구하는 것이 얻어지지 않을 때는 즉시라도 교회를 떠날 수 있고, 믿음을 저버릴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유다가 그랬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도 가운데서도 중요한 직책을 맡았습니다. 돈 관리를 맡은 것이죠. 돈 관리를 하면서 무엇을 했는지 아십니까? 그것을 빼돌려서 자기 이익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사도 요한이 그것을 증언합니다.
그러다가 이젠 이익이 생길 것 같지 않으니까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버린 것입니다. 아마도 유다가 목매어 죽은 그 <아겔다마, 피밭>이 된 그 땅이, 대제사장과 은밀하게 은 30개를 거래했던 장소가 아닐까 추측됩니다.
예수를 안 믿는 세 번째 특징은 무엇일까요?
3) 예수님을 위한 희생이 아까운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성경 공부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낭비라 생각합니다. 드리는 헌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도 아깝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런 마음은 교회를 나오고 있음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는 나오지만, 최대한도로 희생을 최소화시키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안 믿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가룟 유다도 그랬습니다.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이런 사건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마리아라는 여인이 와서 아주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 앞에 부어 드리고 그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 주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인류를 위해서, 모든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실 것이라는 것을 정확히 본 것입니다.
당시 사람이 죽으면 향유를 시신에 바르고 염을 했는데, 그녀의 이 행동이 예수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이것이 아까운 겁니다. 자기 돈도 아니면서, “그 비싼 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왜 이 큰돈을 낭비하는가?” 하며 예수님을 위한 그녀의 헌신을 낭비로 보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이 정말 어떤 분이신지 안다면, 우리에게 부어 주신 그 큰 사랑이, 그 큰 은혜가 무엇인지 안다면, 그분을 위한 그 어떤 것도 아깝지 않습니다. 그것은 낭비가 아니라, 주님을 향한 감사와 보답의 표현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나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회사의 사장님이나 회장님이 내가 일하는 일터로 방문한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분은 나를 승진시킬 수도 있고, 좋은 부서로 옮겨줄 수도 있는 분입니다. 내가 하는 일을 확장시켜 줄 수 있는 분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이 내 직장, 내 일터에 방문했을 때, 그분이 “내가 이곳에 오랜만에 왔으니 관광 좀 시켜 주세요.”라고 요청한다면, "아, 나는 시간이 아까워서 못 하겠습니다."라고 하실 분이 계실까요? 또 “내가 이 물건이 좀 필요합니다.”라고 말했을 때, 선물로 그것을 사드릴까 말까, 돈을 쓸까 말까 고민하는 분이 계실까요? 아니요. 기꺼이 쓸 것입니다. 뭐 <카드 한도 다 차도록> 할 것입니다. 왜요? 그분에게 힘이 있기 때문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아깝지 않은 거예요. 낭비라 여기지 않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 능력과 권세가 있고, 정말 그분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에게는 시간도, 물질도, 재능도 아까울 수가 없습니다. 예. 나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시려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내어주신 예수님께, 그분이 필요로 할 때 무언가를 내어드리는 일을 결코 아깝게 여기지 않습니다. 낭비라 여기지 않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 자리에, 이 드리는 한 시간의 예배 시간이 아까우신 분 계십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이 내게 주신 것에 비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아까운 거예요.
그래서 가룟 유다, 그는 부름받은 사도였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팔아버린 그의 배반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는 궁극적인 결과물이었습니다.
반면에 베드로는 어떠한가요? 베드로도 예수님을 배반했지만,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6절에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믿음의 고백이죠.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내가 오늘 잡혀 체포되고 십자가에 달려 죽을 것이고, 너희들이 다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다른 사람은 다 주를 버려도, 나는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그 고백대로 하지 못했지요. 예수님을 부인했지요.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좇기를 원했어요. 그게 그의 본심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해서, 두려움 때문에, 순간적으로 예수님을 부인하고 배반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하는 실수를 저질렀지만, 그는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입니다.
이것이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가룟 유다는 회복될 수 없었고, 예수님을 믿었던 베드로는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그 믿음이 필요합니다. 저를 한번 따라서 해 보시죠. "주님은 나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살아나신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내가 믿습니다. 내가 믿습니다." 아멘. 이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2. 넘어졌을 때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두 번째 차이입니다. 유다는 배반하고 예수님을 피했습니다.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유다를 생각해 보시죠. 그는 예수님을 팔고 난 다음, 크게 뉘우쳤습니다. 그래서 돈을 돌려주겠다고 대제사장을 찾아갑니다. 그때 대제사장이 “그건 네 문제다. 우리와 상관이 없다.”라고 말을 하니, 돈을 성전에 내팽개치고 나무에 가서 목을 매달았습니다.
후회를 했지만, 그 이후 예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번지수가 틀렸습니다.
나무를 잘못 찾아간 것입니다. 목을 맬 나무가 아니라, 다른 나무를 찾았어야 했습니다. 나의 죄를 위해 예수님이 달려 죽으신 그 나무를 찾아갔어야 했습니다. 십자가를 찾아갔어야 했습니다.
만약 유다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찾아가서, 정말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전 예수님이 용서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용서하셨을 뿐만 아니라, 베드로와 같이 큰 그릇으로 사용해 주셨을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그렇게 예수님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피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어땠을까요? 배반한 후에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부활절 새벽에 여인들이 무덤에 가서, 무덤이 비어 있는 것과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와서 보고했을 때, 제일 먼저 예수님의 무덤으로 뛰어갔던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실의에 잠겨 갈릴리 바닷가로 돌아가 물고기를 잡고 있을 때, 예수님이 해안에 딱 나타나셨습니다. 그때 “예수시다”라는 말을 듣고 물속에 풍덩 뛰어들어 헤엄쳐서 찾아간 사람이 베드로였습니다. 베드로는 배반한 후에도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분께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가룟 유다와 베드로의 결정적인 차이였습니다.
가룟 유다나 베드로의 배반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가운데는 옛날 옛적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예수님을 사랑한 적도 있었지만, 가룟 유다처럼 자기 이익 때문에, 자기 편안함 때문에 예수님과 멀리 떨어져 계신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또 첫 신앙, 첫 사랑으로 뜨겁게 신앙생활 했지만, 베드로와 같이 두려움 때문에, 사회에서 낙오되는 것이 두렵고 주위 사람들에게 따돌림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예수님을 멀리하고 떠나 있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와 신뢰를 저버리고, 배신과 배반의 삶을 여전히 살고 있는 우리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는데, 나의 편안함 때문에, 나의 유익 때문에 사역을 소홀히 하고 사역에서 손을 놓고 있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살펴야 합니다. 만일 그 문제가 나에게 믿음이 없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믿음은 있지만 약했기 때문인지 살펴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는 분들은 믿음을 가져야 하고, 믿음이 약한 분들은 예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셔야 합니다.
우리는 가룟 유다처럼 예수님을 외면하고 피해서는 안 됩니다. 베드로처럼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가까이로 나아간 베드로에게, 갈릴리 바닷가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물으셨습니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당장 “사랑한다.”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은 "주님!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그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말씀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을 향한 사랑하는 그 마음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야, 그렇다면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우리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때론 기대에 어긋나고 신뢰를 깨뜨리는 연약함 속에서 살아갈지라도, 그럴 때일수록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주시고, 베드로처럼 회복시켜 주시고, 귀한 일꾼으로 세워 주시고, 주님의 일에 동참하는 자로 사용해 주십니다.
한 주간도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 승리하는 삶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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