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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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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24 주일말씀 설교전문]
2026-05-24 13:00:00
가포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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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통계로 보는 1인 가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1인 가구가 782만 9천 가구이고, 이 비중은 전체 가구의 35.5%입니다. 매우 높죠. 세 가구에 한가구는 1인 가구입니다. 그런데 그중에 62.1%가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했습니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딱 맞는 것같습니다. 이 시대가 얼마나 촘촘히 연결된 시대인가요? 손안의 미디어, 스마트폰 하나로 전화 한 통, 문자 한 줄, 영상 통화까지 순식간에 지구 반대편 사람들과도 연결이 됩니다. 각종 온라인 SNS를 통해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일촌을 맺기도 하고 교류가 일어나는, 이전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초연결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마음은 외로움과 고독, 공허함을 떨쳐내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현대인들의 영혼은 그 어느 때보다도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습니다. 
마음속에 스크래치난 상처,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실패, 내일에 대한 두려움 등.. 남 모를 눈물을 삼키며 사는 분들이 참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우리 크리스천들에게는 전혀 관계없는 일일까요?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어떠신지요? 어쩌면 이따금,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신앙적인 공허함, 고독을 경험하기도 할 것입니다. 왜 우리는 예수님이 약속하신 완전한 자유와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것일까요? 무엇이 문제일까요? 무엇이 부족해서일까요? 예배가 부족해서일까요? 성경지식이 부족해서일까요? 아니면 성도의 교제가 부족해서일까요? 그런 것들이 우리 신앙생활에 큰 유익이 됩니다. 꼭 놓치지 말아야할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생활에 공허함이 찾아오는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지 않을까요? 왜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믿고 사는데도, 신앙적인 깊은 만족감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것일까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데, 왜 우리는 영적인 고아처럼 살아갈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맺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위대한 관계, 성령님과의 깊은 교제를 놓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령강림주일과 다음주일까지, 두 주간 성령님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 성령님과 함께하는 삶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성령님과 함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성령님은 인격적인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성령님에 대해 오해하는 것 중에 하나는 성령님에 대한 이해에 관한 것입니다. 성령님에 대한 이해가 잘 되지 않으니, 성령님을 오해합니다. 흔히 성령님을 <어떤 강력한 힘이나 에너지>로 여깁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오순절 다락방에 임한 성령님이 강력한 불처럼, 바람처럼 임했습니다. 옛본성을 태워버리고, 강력한 자아를 쓰러쓰린 것입니다. 그렇게 성령이 임하니, 기도하는 그들의 입에서 방언이 나오고 예언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성령님에 대한 인식이, 너무 그 한면에 고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을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신비로운 기운, 각양 은사를 주시는 능력 정도로만 취급합니다. 그분이 정말로 나와 인격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친밀한 친구라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여러분! 성령님은 어떤 초월적인 힘과 에너지로 우리에게 역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가장 중요한 개념은 그분은 우리와 함께 동행해주시고, 교제하시는 거룩한 영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16절을 보십시요.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예수님은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실 것인데, 그분을 <또 다른 보혜사>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보혜사는 파라클레토스>라는 단어입니다. 파라클레토스는 <파라-곁에, 클레토스-부름받은 자> 그래서 <내 곁에 부름받은 자>라는 말입니다. 참 따뜻한 말이죠. 이 단어는 고대 그리스 법정에서 피고인을 위해 대신 변호해주고 위로해주고, 곁에서 끝까지 싸워주는 최고의 변호사요 상담가를 부르던 말입니다.  
예수님은 그 성령님이 우리 곁에 계신 정도가 아니라, 17-18절을 말씀을 보면,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아예 “우리 속에 거하시겠다. 우리를 성전 집으로 삼고 우리안에 살아가시겠다”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고아와 같이 홀로 있게 아니하고, 영원토록 함께 하시겠다 말씀합니다. 
그래서요. 성령님은 우리와 교제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단순한 능력이 아닙니다. 힘과 에너지, 신비한 기운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에너지와 사랑에 빠질 수 없습니다. 에너지와 대화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님과 교제가 가능한 것은, 그분이 하나님의 영, 인격적인 하나님이시기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바로 우리 인간이 마음으로 느끼는 기쁨, 슬픔을 다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과 교제가 가능합니다. 그분은 우리와 똑같이, 기뻐하기도 하시고, 슬퍼하시도 하시고, 질투하기도 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로하기도 하시고, 말씀하기도 하시고, 듣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능력은 사용하는 도구, 수단에 불과하지만, 인격은 사귐, 관계가 가능합니다. 우리가 불과 바람과는 친구가 될 수 없지만, 성령님과는 관계를 맺고 교제와 사귐을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우리를 계속해서 우리와 관계를 맺으시면서, 우리를 북돋아주시는 분이십니다. 
저도 돌아보면, 앞이 캄캄할 때, 문제가 산더미처럼 거대하여 마음이 답답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저 자신에게 실망하여 후회스럽고, 일어날 기운조차 없을 때, 그때마다 저를 일으켜 세워주신 분이 성령님이셨습니다. 뭐 거창한 신학적 지식이나, 굳은 결심이 아니었습니다. 
잔잔히 제게 힘을 주시고, 굳은 마음을 녹여주시고, 회복시켜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과 대화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오래전에 베스트셀러였던 <안녕하세요 성령님>이란 책이 있었죠.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성령님께 인사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루의 삶을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성령님, 오늘도 종일의 삶을 저와 함께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루의 삶에 제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제게 지혜를 주시고, 입술에 힘을 주시고, 걸음걸음을 인도해주시옵소서. 성령님을 환영하고 모셔드립니다. 제 모든것을 다스려주옵소서> 그렇게 그분을 모셔들이고, 맡겨드리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깊은 평안이 밀려들어옵니다. 
그분은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자꾸 말씀드리는 거예요.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모든 것을 맡기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쉼없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령님은 우리와 인격적인 교제를 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2.성령님께 내면의 주파수를 맞추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령님의 존재를 느끼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분이 정말로 나에게 말씀하시는가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성령님의 음성이 들려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기도해도 늘 침묵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령님이 늘 그렇게 침묵하시는 걸까요? 아니면 우리 마음이 너무 복잡해서 그분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일까요? 

라디오를 생각해 보십시요. 방송국에서 만들어진 방송 소리는 큰 대형 송신기를 통해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라디오 수신기에 전달이 됩니다. 문제는 수신가가 송신기가 보내는 전파를 캐치하려면, 수신기의 다이얼을 돌려서, 주파수를 정확히 잡아야합니다. 그럴 때, 깨끗한 음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듣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전파를 보내는 송신기가 문제일까요? 아니요. 하나님 나라의 송신기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영적인 수신기가 문제입니다. 
방송국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24시간 송출한다해도, 주파수를 맞추지 않으면, 단 한소절도 들을 수 없습니다. 
영적세계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끊임없이, 생명의 소리, 진리의 소리, 위로와 소망의 소리를 송출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 영혼은 주파수를 그 하늘의 송신기에 맞추지 않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집어 듭니다. 어제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뉴스를 먼저 찾아보고, 오늘의 주식동향과 SNS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나라는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합니다. 그뿐입니까? 그렇게 시작한 하루의 삶이 그대로 이어져 하루 종일 세상의 소음에 다이얼이 고정되어, 걱정과 근심이라는 안테나를 세우고 살아갑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 잃어버린 채 하루를 보냅니다. 그리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잠들기 전에서야, “예수님, 나에게도 말씀해주옵소서” 한마디 기도하고 잠이 듭니다. 그러니, 세상의 소음에 너무 많은 시간이 노출되어 성령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가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성령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세상의 소음을 차단시키고, 내 마음의 혼탁한 욕망의 소음을 내려놓고, 시간을 구별하여 그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열왕기상 19장에 보면,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숭배자 이세벨의 협박으로, 극심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래서 호렙산까지 도망쳤습니다. 모든 의욕을 상실했습니다. 극심한 침체에 빠진 것입니다. 그런 엘리야에게 하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음성이 어떻게 들렸나요? 
엘리야 앞에 크고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크고 강한 바람이 바위를 부셨습니다. 그런데 그 태풍 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이어서 땅이 흔들리는 지진이 왔습니다 .그러나 그 지진 속에서 계시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뜨거운 불이 타올랐습니다. 그러나 그 불속에서도 하나님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엘리야는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거창하고 요란한 것 같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이 거기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란한 모든 것이 지나간 후에, 고요한 중에, 깊은 침묵 속에 세미한 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엘리아야!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엘리아야!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그 세미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 소리가 결국, 엘리야의 침체된 영혼을 어루만지고, 제2의 사명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우리가 성령님과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길은 명확합니다. 주파수 채널을 맞추기위해, 먼저는 세상의 소음을 끄는 것입니다. 
하루 단 15분이라도 좋습니다. 여러분만의 골방을 만들어 보십시요. TV를 끄고,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방문을 닫고 두 눈을 감고 성령님을 초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의 파라클레토스, 나의 인도자, 후원자, 나를 돕는 성령 하나님! 제 마음의 주파수를 맞춥니다. 세상의 소음으로 가득찬 제 귀를 씻어주시고,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려주시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제 마음을 감동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하면, 성령님은 깊은 감동으로,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해주실 것입니다. 
거기서 결박의 사슬이 끊어지고, 마음에 뭉쳐있는 응어리가 풀어질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일,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라는 열매를 맺어놓을 것입니다. 왜 성령의 열매입니까? 내가 한게 아니기때문에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님과 함께하는 삶을 위해 <성령님이 우리와 교제할 수 있는 내 곁에, 내 안에 나와 함께하시는 파라클레토스>이시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수단으로 여기지 말고, 파라클레토스, 나를 돕고 나와 교제하시는 분으로 대우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세상의 소음을 끄고 주파수 채널을 맞추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미하게 나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며, 내면에서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좀 더 깊은 교제를 위해 해야 할 마지막 일은 무엇일까요?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과의 교제는 순종으로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3.성령님과의 교제는 순종으로 완성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님과의 교제를 친구와 만나서 차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는 정도로 마무리합니다. 처음 성령님을 인격적인 하나님으로 인식하는 것은 그냥 인정하고, 인식을 열기만 하면 됩니다. 성령님에게 주파수를 맞추고, 골방의 시간을 갖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경건한 하루 생활패턴으로 만들어간다면,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거기서 멈춰버립니다. 
그래서 성령님과의 교제가 주는 더 좋은 유익을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성령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자녀된 자들에게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하시는데, 그것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순종>입니다.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면, 그 말씀에 따라 움직이는 것! 그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진정한 교제, 진정한 동역은 단순히 차 마시는 정도로 그치지않습니다. 서로 손을 잡고, 같은 방향을 향해 걸어갑니다. 동행합니다. 거기에서 교제의 풍성함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님께서 우리 영혼 깊은 곳에 감동을 주셨을 때, 그 음성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발걸음을 내딛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교제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종교적인 명상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령님이 주시는 감동과 지시하심이 우리의 옛 본성과 많은 부분 정면 충돌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이성이 그렇습니다. 우리 이성은 지극히 계산적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때로, 희생과 헌신을 말씀하십니다. 
우리 감정이 그렇습니다. 우리 자연인의 본성 안에 있는 감정은 좋고 싫음이 명확합니다. 그래서 불편하면 거리를 두고, 사랑하기를 멈춰버립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고, 네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라> 말씀하십니다. 성령님은 이미 기록된 말씀을 그대로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도록 우리 마음을 지속적으로 북돋아주시는 분이십니다. 
본문 20-21절을 보십시요. 예수님은 성령님과의 교제가 그분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는 것으로 나타나야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성령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그분과의 관계가 사랑의 관계로 나아간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이 말씀을 지키는 자로 드러난다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5:25절 말씀도 보십시요. 
[갈 5: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우리가 성령님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성령님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 성경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라고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먼저 사과해라! 용서해라! 복수하기를 멈추어라! 정죄하고 판단하기를 멈추어라! 네가 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아라! 너 먼저 헌신하여라! 섬기기를 먼저해라! 먼저 베풀어 주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강하고 담대하라! 복음을 증거하라!>등등..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씀해 주십니다. 
그럴 때, 내 내면의 소리 <내가 왜? 저 사람이 더 잘못했는데? 지금은 형편이 안되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는 아니지.>라는 소리를 잠재우고, 성령님이 주시는 음성을 따라가는 것! 그것이 순종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순종하면, 그 성령님이 이루시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계산기를 통과하지 않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든 일도,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난 일도,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출애굽시킨 일도, 오병이어로 수천명이 먹은 일도, 밤새 그물던지 베드로에게 깊은데 그물 던지라 말씀하신 일도, 다 인간적인 계산기로 된 일들이 아닙니다. 그들이 믿음으로 순종했을 때, 일어나 기적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성령님은 우리 인생의 운전대를 잡아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와 이 땅에 거할 동안도 동행해 주시다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 하나님나라에 까지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의 인생의 운전대를 잡아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그 핸들을 성령님께 기꺼이 내어 맡길 마음이 있으십니까? 
정말 그렇다면, 이렇게 기도해보면 어떻까요? 우리 같이 한번 기도하겠습니다. 

“성령님, 그 동안 성령님을 막연한 능력으로만 생각했던 것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부터 나의 가장 친밀한 보혜사로 모시겠습니다. 시간을 구별하여, 세상의 소음을 끄고 주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살겠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실 때, 미루지 않고 순종하겠습니다. 제 삶의 운전대를 성령님께 맡겨드립니다. 제 삶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말씀을 마칩니다. 
성령님은 우리와 교제하길 원하시고,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마음을 지속적으로 노크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주파수를 잘 맞추어서, 그분의 음성듣기를 구하고, 그 음성에 기꺼이 순종함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잘 받아 살아가는 삶이 되길 바랍니다. 좋으신 성령님과 함께하는 복된 한 주간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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