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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요약

말씀요약

[26.7.12 주일말씀 설교전문]
2026-07-12 16:26:43
가포매니저
조회수   11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인생이 참 힘들고 짐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사업에 어려움을 겪는다든지, 건강에 문제가 있다든지 하는 그런 외부적인 원인이 있을수도 있지만, 더 많은 경우에는 우리 마음이 흔들리고 위축되어서 어려움을 느낍니다. 예를들면 우리가 인생에 대한 회의에 빠질 때가 그렇습니다. “내가 왜 살아야하는지, 또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지..” 그런 회의를 느낄 때, 인생이 무거워집니다. 또 소망이 보이지 않
을 때도 그렇죠. 내가 처해있는 어려운 환경이 개선될 가망이 보이지 않고, 내가 안고 있는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절망합니다. 또 무력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마땅히 내가 해야할 일이 있고, 해야만하는데, 해낼만한 자신도 능력도 없을 때 좌절하게 됩니다. 
이런 문제는 누구나 열외없이 경험하는 인생의 문제들입니다. 2000년전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힘없이 붙잡히셔서, 십자가에 달려 허무하게 죽으시고, 그들은 극심한 충격에 빠졌을 것입니다. 아마도 제자들이 느꼈을 <회의, 절망감, 무력감>은 지금 우리가 겪는 것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인생을 걸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가진 직업도 다 그만두고, 가족을 떠나 생이별하며 예수님을 쫓았습니다. 얼마나 큰 기대가 있었겠어요. 그래서 예루살렘 입성할때만 봐도, 주어질 보상에, 한 자리씩 돌아올 걸로 생각하고, 들떠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생각했었는데, 어이없이 처형당하는 것을 보니, “우리가 착각을 했나” 생각되었을 겁니다. 극심한 절망과 무력감에 휩싸였을 것입니다. 그런다고 뭘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들을 위협하고 있는 사람들은 힘있고 똑똑한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 사두개인, 로마군사들이 다 그렇죠. 그런데 제자들은 갈릴리 촌사람들입니다. 할수있는게 없어요. 
오늘 본문은 이런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그들의 마음과 처지를 아시고 모든 것을 바꿔주시는 장면입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의 시작입니다. 
오늘부터 사도행전을 틈틈이 살펴보려 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대해서 간략한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사도행전은 <의사 누가>가 기록했습니다. 모든 신약성경을 유대인들이 썼는데, 유일하게 헬라인인 누가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남겼습니다. 이 두 권이 신약성경 절반 분량을 넘어섭니다. 
그럼 이 사도행전을 언제 썼는가?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근거는 이 사도행전이 바울이 로마에 감금되고 2년 동안 사역을 했습니다. 그때가 61년에서 63년입니다. 그때 쓰여졌을 것이다. 그렇게 추정할 수 있는 근거는, 예루살렘이 AD 70년에 로마장군 티투스에 의해 완전히 멸망당합니다. 그들은 너무나 무참히 유대민족을 짓밟았습니다. 예루살렘이 다시는 재건되지 못하도록 이방인들을 그곳에 정착시키고, 성전을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도록 파괴시켰습니다. 이때부터 유대인들은 2,000년간 떠돌이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민족적인 대사건을 언급해야 상식적입니다. “이것 봐라, 너희들이 예수를 십자가 못 박더니, 이렇게 된 거 아니냐?” 이런 말이 들어갈 법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사도행전은 서기 70년 전에 쓰여진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걸로 보면, 지금 이 사도행전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약 30여년 정도 지난, 그리 오래되지 않은 때에 쓰여진 것입니다. 
누가는 바울이 로마 구금 상태에 있을 때, 같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서 데오빌로라는 사람에게, 이 사람이 누군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소개하고, 제자들의 활동과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요.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누가는 먼저 쓴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의 활동과 성령께서 오실 것을 명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신 것까지를 기록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무력감에 빠져있는 제자들을 어떻게 회복시키고 계신지를 11절까지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자들을 회복시켜주신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의 삶도 동일하게 회복시켜주실 줄 믿고,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지를 몇 가지로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부활하신 예수님께 삶의 근거를 둘 때, 확신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회의에 빠진 제자들을 확신있는 사람들로 바꾸어주셨는가? 그 근거가 무엇인가? 바로 부활입니다. 
3절을 보십시요.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예수님은 고난받고 죽으신 후에, 다시 살아나셔서, <당신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많은 증거로 나타내셨다>는 겁니다. 많은 증거로.. 
보통법정에서는 한사람의 똑뿌러지는 증언만 있어도, 받아들여주죠.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은 본 사람들은 한두명이 아닙니다. 열명 스무명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15:3을 보면, 이렇게 증거합니다. 
[고전 15:3-8]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여러사람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심지어 <야고보>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친동생입니다. 믿지 않았어요. 그런데 오순절 성령강림이 있었던 그 다락방에 함께 있었습니다. 믿는 자가 된거예요. 열두제자뿐만 아니라, 무려 500가량 모인 무리에게 한번에 나타나주셨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들중에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가 살아있다는 거예요. 고린도전서가 쓰여질 무렵 그렇다는 겁니다. 
그렇게 보이시기만 한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떡을 떼주시기도 하고, 드시기도 하고, 성경을 풀어 설명해주시고도 했습니다. 또 도마에게는 직접 살아나셨다는 것을 보이시기위해 <손에 못자국>을 만져보라고 까지 하셨습니다. 그렇게하니 기간이 40일이고, 그 40일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많이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로부터 제자들은 <확신있는 사람들>로 바뀔 수 있었습니다. 어떤 마음이 들었겠어요. <아! 과연, 이분은 우리가 믿었던대로 그리스도이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구나!> 안그렇겠어요. 내 눈앞에 버젖이 살아계신데.. 그런 확신이 들었기때문에, 그 부활을 증거하다 목숨을 내놓고 순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삶이라는게 어떤가요? 우리는 저마다 <나의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 인생관이란게 어떻게 형성되었나요?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 별게 없어요. <나의 제한된 경험에 기초해서, 학교 선생님 이야기, 어른들이 이야기, 거기에, 책을 읽고 빌린 남의 이론이나 철학이 가미되고, 얄팍한 논리가 가미되서, 만들어진게 인생관>입니다.  
이런 인생관이라도, 세상일이 잘 굴러갈고, 일이 잘 풀리면 문제없이 살아갑니다. 그런데, 삶의 위기가 닥치고 그래서 회의, 좌절, 무력감에 빠질 때, 특별히 죽음이라는 문제 앞에 다가섰을 때, 우리 가진 인생관이라는 얼마나 얄팍한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그것은 어쩔수없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나의 경험이나 논리, 남의 철학이나 상식에 기초하고 사는 한 인생은 반드시 회의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의 근거를 부활하신 예수님께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그분은 죽음을 이시기고 부활하셔서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며,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것인가에 대한 답을 줄수있는 분이란것 증명한 분이십니다. 
지금까지 인류를 살다간 수십 수백억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중에는 존경받는 의인도, 영웅도, 성인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 죽어서 땅에 묻혔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무덤과 비석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세상을 주름잡았던 사람도, 엄청난 이론을 전재했던 사람도, 그 누구도 예외없이 죽음 앞에서는 무력했습니다. 현세적인 삶에 어떤 도움을 주었을지는 모르지만,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며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들도 답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죽음이 그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분은 하늘로부터 온 분이며,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며, 인생의 모든 문제의 열쇠를 쥐고 있는 분이라는 것을 그 부활로 증명해보이신 것입니다. 
여러분! 부활은 이론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제자들의 삶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문서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혹 여전히 인생에 회의를 느끼고 계신 분이 계십니까? 이제부터는 여러분의 삶의 근거를 나의 인생관에 두지 마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 두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흔들리지 않습니다. 공허하지 않습니다. 확신있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재림이 소망의 근거입니다. 
예수님은 절망가운데 있는 제자들을 어떻게 소망가득한 사람들로 바꾸어주셨나? 
예수님은 계셨던 곳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이땅에서 오신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됩니다. 하나님 보좌우편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왜 돌아가셨는가? 가셔야 <성령님>이 오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어떤 원리입니까?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몸을 입고 계시기 때문에, 저와 함께 계시면, 여러분과 함께 계실 수 없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계시면, 요한과 함께 있을수가 없어요. 그래서 남겨진 자들을 더 좋게 하시려고, 그들을 인도하고, 보호하고 가르쳐주시려고... 성령님을 보내주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항상 동행해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가시면서 약속을 주셨습니다. 
우리 9-11절까지를 읽어보겠습니다.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천사의 증언이 “너희들이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한 거에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소망의 근거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절망에 빠진 제자들에게 소망의 근거가 된 것입니다. 이 소망이 제자들에게만일까요? 예수님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고대합니까? 지금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분이 오시면, 이 억울함을 풀어줄 것이다. 지금 누명을 쓰고 있어도... 그분이 오시면, 내 오명을 벗겨주실 것이다. 신앙을 지키며 살기 위해 핍박을 받고, 이땅을 살면서 출발자체가 힘겹고, 몸의 연약함이 있고.. 이런 모든 것들을 값아주시고, 회복시켜주시고, 위로해주시고, 내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실 분이 나의 <의로우신 재판장되신 예수님>이시고, 그분이 다시오신다 하는 그것이 우리를 살게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소망의 근거입니다. 
요한계시록21:3-4을 보십시요. 
[계 21:3-4]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예수님은 다시오십니다. 억울한 사람의 억울함을 풀어주시기 위해 다시오십니다. 흘린눈물을 닦아주시기 위해 다시 오십니다. 받은 상처를 치료해주시기 위해 다시 오십니다. 우리를 영원히 자유롭게 하시기위해 다시 오십니다. 아멘입니까? 
그래서 예수님의 다시오심의 약속을 믿는 자마다 소망이 있기에, 환란을 만나도 기뻐할수가 있는거예요. 그 소망이 너무 강력하기때문에, 넉넉히 이겨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소망가득한 삶이되시길 축원합니다. 

3. 자신감의 근거로 성령님을 약속하셨습니다. 
지금 제자들은 극심한 무력감에 휩싸여 있습니다. 제자들을 위협하는 이들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잡아죽인 이들이 누구입니까? 힘있고 재력, 권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로마의 군사까지 움직일 힘이 있습니다. 갈릴리 촌사람들하고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제자들은 그들에 비해 너무도 초라합니다. 아무것도 자신들 힘으로 할수있는 것이 없습니다. 무력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런 그들에게 엄청난 약속을 하셨습니다.  
우리 8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께서 오실 것인데, 그 성령님이 오시며, 권능을 받게된다는 것입니다. 다이너마이트처럼 파괴시키는 능력, 무엇을요? 하나님을 대적하여 생긴 죄와 권력, 사망의 권세를 파괴시키는 힘을 주시겠다는 거예요. 
그 권능이 미치는 범위를 말씀해주시는데,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이 어떤 곳입니까? 예언자들이 올때마다 돌로 쳐주이고, 급기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까지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곳이 예루살렘입니다. 그런데 그 예루살렘을 변화시킬 수 있는 권능을 주시겠다는 겁니다. 다음은 유대입니다. 유대는 가룟 유다의 이름처럼 하나님을 끊임없이 배반했던 나라입니다. 사마리아는 어떤 곳입니까? 유대사람들과 원수지간입니다. 서로 돌을 던지는 사이입니다. 땅끝은 무엇입니까? 유대인들을 핍박하는 이방인들이 사는 곳입니다. 이런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예수님의 증인이 될거라는 거예요. 이건 “그렇게 될지도 몰라” 하는것이 아니고, “된다”는 선언입니다. 확실히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학식도 배경도, 능력도, 재력도 없는 갈릴리 촌사람들이 이일을 할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를 통해서요? 성령님을 통해서요. 

이러한 약속은 제자들에게만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주시는 약속입니다. 
우리 삶을 돌아보면 “내가 무슨 증인..” 이라 말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제자들같아요.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이예요. 모자란것 투성이예요. 지혜도 모자라고, 능력도 모자라고, 체력도 모자라고... 그러나 여러분! 우리 삶의 목표가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돌리겠다는 삶의 목표를 가지고 사는 한, 우리는 증인이 될수있습니다. 
성령님을 힘입어 살아갈 때,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자신감입니다. 
예수님은 <너의 힘으로는 할 수 없다. 너의 지혜로는 할수없다. 그래서 성령을 너희에게 보내준다. 성령을 받으라. 성령을 의지하여라! 그러면 너의 삶 곳곳에서 내 증인이 될 것이다> 말씀해주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령님을 힘입어 살아가면, 크고 작은 기적들을 일으켜주십니다. 없는 것도 있게하시고, 부족한 것을 채워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우리 입에 할 말을 부어주십니다. 증거할 말을 넣어주십니다. 
여러분의 확신과 소망, 자신감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부활의 확신과, 다시오심의 소망과 성령님으로 인한 자심감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시는 복된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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