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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요약

말씀요약

[25.11.30 주일말씀 설교전문]
2025-11-30 13:00:00
가포매니저
조회수   29

11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제 이 한해도 1달을 남겨 놓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오시는 동안 많이 수고하셨습니다. 
우리가 읽은 갈라디아서는 <자유의 대헌장>이란 사도바울의 서신서입니다. 이 편지를 받고 있는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은, 우리가 사도행전 13장부터 14장까지 읽어보면, 바울이 목숨을 걸고 세운 교회들입니다. 이고니온이란 곳에서 돌맞아서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 대단한 핍박을 감수하면 세워진 교회들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슬며시 뒤틀린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할례를 받아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논리는 그런 겁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야 구원받는 건 알겠는데, 그 전에 먼저 할례를 받고, 유대인 된 다음에 믿어야 효력이 있다”하는 겁니다> 이러한 논리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환영받을 말이었습니다. 
할례를 받게되면 즉시 누릴 수 있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정통유대인들의 핍박을 어느 정도 면할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우월감이 되었습니다.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나는 선민이 되었다”는 자랑거리가 된 것입니다.>  
본문을 11-13절을 보십시요.
11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12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13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그러면서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
오직 나는 십자가만 자랑하고 살것이라, 어떤 어려움이 와도, 십자가 전하다가 어떤 시련을 당해도, 나는 타협하지 않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전하겠다 선언하고 있는 겁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상처와 아픔, 고통, 저주와 심판.. 이런 것들이 배여있는 것입니다. <나는 할례받았다! 나는 유대인되었다!> 그거 자랑할것이 아니라, <상처와 아픔, 고통과 저주가 담겨있는 십자가 자랑하겠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15절, 
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 이제는 율법을 지키고 말고가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서 거듭난 새사람, 새피조물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내가 알기 때문이죠. .  
그러면서 갈라디아서를 끝내면서, 결론적으로 하는 말이... 17절입니다. 
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내 몸에 그리스도 예수님의 흔적, 스티그마가 있다는 겁니다. 
정말 그렇죠.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수많은 흔적들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40에 하나 감한 매질을 5번당하고, 세 번 태장으로 맞고, 여러번 돌로 맞고, 뺌을 맞고, 구타당하고... 온갖 스티그마를 다 가지고 있어요. 아마도 그의 등짝을 벗겨보면, 태장에 맞은 그 선명한 채찍 자국이 배추밭 고랑처럼, 줄줄이 그어져있을거예요.   
바울은 <내가 복음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그것 따라 살다가 많은 흔적을 가지고 있으니, 더이상 나를 괴롭게 하지 마라는 거에요. 
여러분! 지금 이 시대에 불어 닦치는 신앙적 풍조가 무엇입니까?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신앙의 길이 무엇일까요?
<편안하게 예수믿는 법>, <이 땅의 영광과 성공을 추구하며 예수믿는 법> 
<희생과 헌신없이 예수믿는 법>을 추구하는 것 아닌가요? 
지금 갈라디아교회에 파고들어온 거짓교사들의 말이 무엇입니까?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고리타분하고, 이 시대하고 안 맞다. 이 시대의 트랜드, 문화를 전혀 모른다>는 겁니다. <그렇게 예수믿다간, 다 뺏기고, 실컷 고난당하고, 아무것도 남는게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결론이 뭐냐? <할례를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핍박이 없어진다는 거예요.  
지금 이 소리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얼마나 혹하게 들리겠어요? 
얼마나 매력적이예요. 그러니..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의 마음이.. 봄바람에 흔들리는 수양버들 가지처럼, 흔들흔들거리는 겁니다. 
요즘.. 그런 풍조가 만연해있지 않나요? <뭘 그렇게 극성스럽게 믿어? 꼭 뭐 그렇게 힘들게 신앙생활 해. 그냥 편안하게 해!>    
그러나 바울은 <편한 복음>은 없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시대에 따라, 유행을 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죠. 진리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이렇게 바뀌었다, 저렇게 바뀌었다하면 진리가 아니죠. 진리는 시대와 상황을 초월하여 변치않는 것이 진리입니다. 
바울은 단 한순간도, 편한 복음을 쫒지 않았습니다. <복음 때문에, 내 몸에 흔적, 채찍자국, 돌맹이 자국이 더 남더라도, 그 선명한 복음의 길을 따라 살아가겠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먼저.. 저 자신부터 생각해봤습니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과연 어떤 흔적을 남겼는가?> 예수님 위해서 살아가겠다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청년시절과 모든 시간을 주님께 바친다고 살고 있는데, 과연 나에게는 예수님을 위해 남긴 어떤 흔적이 있는가?>  
제가 흔적을 더듬어 보니까.. 일단 몸의 상처를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어렸을 때, 개구지게 놀면서, 상처난 흔적은 온 몸에 있는데, 하나님 마음에 새겨질 만한, <내 삶에 복음을 위한 어떤 흔적>은 별로 안 보이는 거에요. 2가지는 떠오릅니다. 
한 가지는 제가 기도원 공동체생활할때에, 일을 많이 했는데, 그라인더로 이 손가락을 크게 다쳤습니다. 지금도 그 상처가 선명하죠. 어떻게 모양을 맞춰서 꿰맺는데, 제 살이 아닌것 같습니다. 뭐 그거 제가 부주의해서 난 상처니 내놓을게 못 됩니다. 
또 한가지는.. 부끄러운 상처입니다. <불순종의 상처>입니다. 
제 이마에는 한 5바늘 꿰맨 자국이 있는데, 그것도 청년시절 기도원에 있을때입니다. 그때, 제 마음에는 <리더>에 대한 원망, 불평이 가득 차 있을 때였습니다. 그래, 두세사람이 모이면, 험담하고, 불평을 늘어놓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잣나무에 올라갔다가.. 제가 나무를 잘 타거든요. - 제일꼭대기에 올라갔다가 — 붙잡은 가지가 뚝 부르져서... 아래로 뚝 떨어졌습니다. 한 10m는 족히 되는 높이였습니다. 한참 떨어지더라고요. 제가 떨어지면서, 그 찰라에, 그런 생각이 들어라고요.. 하나님께서 저를 한 대, <예끼 이놈아>하고 때려주신 것 같았습니다. 그 아래가 자갈이여서 다행이지... 쭉 찟어져서, 응급실에 가서 몇바늘을 꿰맺습니다.  
그럼 보이지 않는 흔적을 뭘 남겼는가? <나의 삶에 수고의 흔적, 희생의 흔적, 사랑의 흔적이 얼마나 있는가?>를 생각하니, 떠오르는게 별로 없어요.. 
그리고 앞으로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가? 그것도 참 부끄럽더라고요.. 
많은 사람들이 은퇴를 하고, 저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편안하게 살것을 꿈꾸고 사는데.. 나는 과연 무엇을 그리는가?  
제가 올초에 만난 어떤 목사님이 제게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나는 성도들, 편안하게, 좀 편안하게 신앙생활하게, 구찮게하지 않고 그냥 편안하게 해 줍니다> 제가 어떤 의도로 그런 말씀하시는지는 알겠습니다. 그런데요. 
우리 신앙생활의 목표가..  <그냥 편안하게> 하는 것이 목표일까요? 
아니요.. 그건 아닐 겁니다. <나 편안하게 믿고 말자>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표가 된다면, 뭐 아무것도 할수가 없습니다. 
우리교회도 그렇겠죠.. 제가 우리교회를 목회하면서, <그냥 편안하게 신앙생활하게 하자>하는게, 저의 목회의 목표라면...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예배만 드리면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마음이 그런게 아님을 알기때문에.. 그렇게 할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간단히 두가지만, 저 자신에게 다짐하는 마음으로, 또 여러분들에게도 권해드리는 마음으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1.사랑의 흔적이 남아야 합니다. 
제게 일주일에 한번정도 묵상글을 보내주시는 목사님이 계신데.. 이런 자기고백이 담긴글을 얼마전에 보내주셨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처를 받는다는 것이다. 사랑은 상처와 같이 간다.
신앙생활도 그렇다. 주의 일을 하는 것도 그렇다. 
주의 일을 하려면 상처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교회생활을 하면서 목회를 하면서 한 번도 상처받은 일이 없다면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목회, 상처받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목회를 하면서 상처를 받지 않는 길이 있다.
거리감을 두면 된다.
나는 날마다 상처를 받습니다. 상처를 받지 않는다면 나는 삯꾼일 것입니다. 

사랑하기로 결심한것은.. 상처받기로 결심한 것이라는 거예요.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이 그러했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자리를 내려놓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편안한 길을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랑때문에, 고난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사랑때문에, 죽음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분에게는, <깊고 선명한 사랑의 흔적>들이 있습니다. 우리 손이 지은 죄로, 우리 발이 지은죄로 그 손에 대못이 박혔습니다. 선명한 대못자국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범죄하고, 생각으로 지은 죄를 씻기위해 그 허리에 창자국이 있고, 그 머리에 가시 자국이 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지울 수 없는 사랑의 흔적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가지고 있는 스티그마도, 영혼사랑의 흔적들입니다. 그것이 그에게 면류관이요 자랑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가정에서도 사랑하면 흔적이 남습니다. 
어떤 남자가 선본 여자가 맘에 들었는지.. 결혼을 하고 싶어서.. 그랬답니다. <제가 목숨까지 바쳐서 지켜주겠습니다>.. 그러니까, 처자가 <저는요. 목숨까지는 괜찮고요. 설거지만 좀 해주시면 안되나요?> 그러니까.. 머리 극저기고, 대답을 못하더래요. 가정에서 사랑의 흔적을 많이 남기는게 뭘까요? 수고하고 섬기는 겁니다. 서로를 배려하고 위해주는 거예요. 저는 우리교회가 점점 그런 것이 문화가 되가고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이번에 당회워워크샵을 다녀왔는데.. 이제는 목장에서 많이들 하셔서 그런지.. 뭐 세팅하고, 음식나르고, 정리하고 치우는 일이 누구 눈치볼게 없습니다. 다 그냥 손에 익어 계십니다. 참 감사한일이죠. 
교회도 그렇습니다. 주일이면, 교회가 정리되어있고, 따뜻한 식사가 나오고, 커피가 준비되고, 아이들을 품고 사랑으로 섬기고.. 곳곳에서 사랑의 수고를 다하고 계신거에요. --사랑의 흔적을 많이 남기는 삶이 되길 바랍니다. 

2.수고와 헌신의 흔적을 남겨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알면, 반응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수고와 헌신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최고의 것을 주신 것을 알기때문에, 나도 사는 날동안 최고의 것으로 드리고 싶은 거>예요. 
헌신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최고의 것을 드리고 싶은거에요. 그것이 몸이 되었든, 재능이 되었든, 시간이 되었든, 물질이 되었든... 최고의 것으로 드리고자 하는 마음, 그것이 헌신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옥합을 깨드려 향유를 부어드린 여인>이 그런 것입니다. 
자신의 삶에서, 가장 귀한 것을 드렸습니다. 받은 은혜와 사랑이 크기에 기꺼이 그렇게 했습니다. 
제가 지난 10월에 베드로남선교회에서 진행된 <광주 양문길 순례지 탐방>에 함께했는데.. 참 감동적인 그분들의 흔적들을 보고 왔습니다. 거기 묻혀있는 수많은 묘들.. 그분들이 수고하고 헌신했던 많은 사역의 현장들.. 
많은 분들이 있는데, 그중 서서평선교사님은 <조선의 작은 예수>라는 별명을 받은 분입니다. 
32세때 간호사로 부름받아 22이년간을 모든 것을 쏟아부었습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고아들 14명을 입양하였고, 많은 홀로된 여성들, 나환자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먹이신 분입니다. 
배도선선교사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가포땅에 계시는 동안 수많은 수고와 헌신의 흔적들을 남기셨습니다. 그분의 이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말씀을 들어보십시요. 

"오직 한번뿐인 인생, 속히 지나가나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한 일만이 영원하리라" 

갈수록 편하게 예수믿는 법을 찾아가려 합니다. 이땅의 영광과 성공을 추구하며 예수믿는 법을 따라가려합니다. 희생과 헌신 없이 예수믿는 길을 걸어가려 합니다. 그러나 편한 복음은 없습니다. 
헌신은 최고의 것을 주신 주님께 최고의 것을 드리고자 하는 가장 고귀한 삶의 자세입니다.

천국은 영원히, 가장 편안히 쉴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 사는 날 동안 복음을 위해 수고하고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성도님은 어떤 흔적을 남기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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