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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요약

말씀요약

[25.3.2 주일말씀 설교전문]
2025-03-02 14:04:13
송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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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양합니다. 어떤 이는 많이 뜸을 들이고, 어떤 이들은 바로 결심하고 영접하기도 합니다. 좀 미루고 뜸 들이는 분들은 왜 그럴까? 아마도, 그 마음에, 삶의 여러가지 제약들이 떠올라서 그렇지 않을까 합니다. 앞으로 예수믿으면 내가 하고 싶은거...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고... <아, 일요일에 좀 쉬어야하는데, 매주 예배도 가야하고... 헌금도 내야하고... 아이고.. 내 자유가 다 달아나겠다> 하는 마음이 있을 겁니다. 
심지어는.. 우리 믿는 이들가운데도, 좀 더 믿음으로 들어오기를 요청하면, 머뭇거리기도 합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그렇게 하면 내 삶에 남아있는 자유까지 다 잃을 것은 거죠. 그래서 더 깊은 헌신과 희생을 원치 않습니다. 그건 뭐냐면, 그 마음에 이런게 좀 있는거예요. <하나님이 말씀대로 사는 것이 좀 부담스럽다> 
그런데 오늘 야고보는 우리에게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말씀대로 살면, 많은 유익이 뒤따라온다는 겁니다. 어떤 유익이 있는가?  
1.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합니다. 
우리 2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야고보는 하나님 말씀, 율법이 우리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자유롭게한다> 말씀합니다. 그래서 율법을 <자유롭게하는 온전한 율법>이라 말합니다. 그 율법을 실천하는 자가 그 행하는 일로 복을 받으리라. 복은 <유익한 것>입니다. 온갖 종류의 유익한 것을 복이라 말할 수 있는데, 누가 이 복을 누리는가? 말씀을 실천하는 자가 복을 누린다 하는 겁니다.  
여기서 먼저 자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자유를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다하는 걸> 자유라 생각합니다. 그런데요.. 내가 하고싶은대로 다하면 그게 자유일 것 같지만, 오히려 부자유스러워집니다.  
생명의 삶공부에 오시면 드리는 이야기인데, 일찍이 미국 이민을 오셔서 사는 50 중반쯤 되신 분인데.. 이분의 삶은 참 자유롭습니다. 할말 다하고, 하고싶은거 다하고 사는분인데... 그러니, 직장에서 오래 있지 못합니다. 들어가서 조금지나면, <이 직장은 이러니 저러니..>그러니 사장님 좋아할리가 없죠. 그래서 반듯한 잡이 없어요. 그러니 경제적으로 곤궁합니다. 그래서 위축되고, 동창회도 안나가고.. 또 사진찍는걸 좋아해서, 2박3일, 말도없이 산에 올라가서 있다옵니다. 하고싶은대로 다하죠. 그러니 같이 사는 분이 좋아할리가 없죠.  부부관계도 좋지 않아요. 그러니.. 내 하고 싶은대로 하는 것이 자유인 것 같지만, 그건 진정한 자유가 아닙니다. 주변만 어렵게 만들뿐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자신의 마음과 삶을 잘 컨트럴 할 줄 아는 사람이 자유한 사람입니다. 
제가 이전교회에 체육관이 있어서, 교역자들끼리 일주일에 한번씩 운동을 했는데, 목사님 중에 <만능 스포츠맨>이 있었습니다. 온갖 종류를 다 잘합니다. <참 목사만 하기 아깝다!> 싶을 만큼.. 그 목사님하고 배드민턴을 치면, 아주 약올라요. 뒤로 줬다가 앞으로 줬다가.. 오른쪽, 왼쪽 자유자재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자유는 그런게 자유입니다. 컨트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거예요. 
사람이 내 마음대로,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면, 자유로울 것 같지만, 반듯이 다른 것에 매이게 되어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해보십시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람을 고귀하게, 형상을 따라 빚으시고, 서로 사랑하는 관계 속에서 영원히 살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동산에 찾아온 마귀의 꾀임에 넘어가버린 것입니다. 그 마음에 어떤 마음이 들어온 겁니까?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하나님 꼬봉으로 살아야 돼? 이거 자존심 상해서 안되겠다. 나도 하나님처럼 돼보겠다. 내 맘대로 살아보겠다> 그래서 말씀을 어긴 것이, 자유를 잃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자유를 잃었습니까? <죄의 노예>가 되어버렸습니다. <죄의 속박가운데, 종이 된거예요.> 그 죄아래 있는 인간들은 수없는 결박속에 살아갑니다. <죄책감의 노예가 되고, 열등의식의 노예가되고, 상처의 노예가 되고, 나쁜습관의 노예가 되고, 분노의 노예가되고... 그렇게 죄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마귀의 전략은 그겁니다. <너 하나님께 돌아가면 부자유러워진다. 너 하고싶은 거 다 끝이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 말씀하셨죠.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 율법>을 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죄의 결박에서 벗어나 자유케하시려고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자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임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서로 용서하라> 그러셨죠. <용서>에 대해 생각해볼까요? <일흔번을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라>하셨는데, 남을 용서할 때 자유로울까요? 용서하지 않을 때 자유로울까요? 생각해보면, 우리가 남을 용서하지 못할 때, 자유롭지 못합니다. 남에게 받은 상처와 섭섭함, 분노.. 이런 것들을 마음에 품고 있을 때는 자유롭지 못해요. 그 사람 생각만 하면, 가슴이 덜컥하고, 자다가 생각나면 잠이 안 오고... 소화도 않되고.. 그런데 정작... 자기에게 그렇게 상처 준 사람은, 그런 줄도 모르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지낸단 말이죠. 꼭 상처주는 사람들은 모르잖아요. 내가 상처를 줬는지 마는지... 
그럴 때, 이 마음에 용서가 안될때, 기도할수밖에 없죠. <하나님! 제 힘으로 안돼요. 용서할 힘을 주세요.> 그렇게 매달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에 대한 긍휼한 마음을 주시고, 용서할 수 있는 힘도 주시고...> 자유는 거기서부터 임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억압하려고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계명을 주신 것은 당신의 필요를 위함이 아니라,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유익을 어떻게 할 때, 받아 누릴 수 있을까요? 
25절을 다시 보시면, 
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누가 복을 받습니까? 말씀을 실천하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듣고 잊어버리면, 전혀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내가 요즘 체중이 올라서, 살좀 빼야겠다>하고, 그 다이어트 체조동영상 계속 보고만 있으면, 빠질까요? 아니요. 그거 100번 봐도 소용없습니다. 한 번이라도 땀흘리며 해야죠. 그래야 효과가 있는거죠. <이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듣고 잊어버리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거예요. 그것은 오히려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이 될 수 있다고까지 말합니다. 
22절을 보십시요. 
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말씀을 듣기만하는 자는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될수있다는 겁니다. 속이는게 뭡니까? 없는데 있는 것처럼 하는게 속이는거죠. 예전에 그런 기사도 봤습니다. 유부남인데, 아이들도 있고.. 총각행세를 하고 이중결혼을 한거예요. 속이는거죠. 그런데 문제는 그런 속임을 자기 자신에게도 한다는 겁니다. 내가 나를 속이고 있다는 거예요.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여러분! 우리가 말씀을 듣고만 있으면, 그냥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와 같은 목사는 매우 위험하죠. <늘 설교하니까, 제일 잘 믿는 줄 알고, 그렇게 된 줄로 생각하는 거예요> 그게 스스로를 속이는 겁니다.  
그래서 정말로 말씀의 능력이 내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 말씀이 <내 삶에서 행동으로 나타날 때> 내 것이 되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목장과 교회는 너무 좋은 훈련의 장입니다. 이곳에서 말씀을 실천해보는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하고 용서를 실천하고, 섬김과 친절, 배려와 칭찬, 축복해주는 언어생활까지.. 실천해보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그런 실천거리 중에 하나를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은 <감정컨트럴에 대한 것>입니다.  
여기 19-20절을 읽어볼까요? 
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사도가 뭘 권하고 있어요? <듣는 것은 속히 하라> 경청이죠. 그런데, <말하는 것, 성내는 것은 더디 하라> 왜 그러냐?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러분! 가끔 우리 마음에도 <거룩한 분노>가 일어날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마져도, 덕스럽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예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만큼 되었다면, 분을 내든, 상을 뒤엎든.. 괜찮을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다 예수님만큼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덕스럽지 못한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마음에 분노가 있으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어도, 그 마음이 좀 가라앉을 때까지.. 입을 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분노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가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차단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순종하는 거예요. 성령님의 은혜를 힘입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말씀의 유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화평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습니다. 거기에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우리를 자유케하는 하나님 말씀을 잘 따라 순종하며 사는 자들이 되어 말씀의 유익과 능력을 다 누리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하나님과 이웃에게 유익한 사람이 됩니다. 
말씀을 순종한다는 것은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늘 비춰보는 것과 같습니다. 거울을 비춰보면, 자신을 고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변화와 성장입니다. 그러면 누가 행복해지는 줄 아십니까? 내 옆에 있는 사람이 행복해집니다. 우리가 왜 예수님을 계속해서, 인생의 푯대를 삼고, 그분을 닮아가야 할까요? <나의 모난 것이 갈리고, 온유, 겸손하신 예수님을 닮아가면, 나도 자유케되지만, 더 유익한 것은,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편안함을 느끼고, 가까이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니 정말로 유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야고보는 <참된경건>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27절 말씀을 보면, 
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우리가 경건을 생각할때는 성경읽고, 기도하고, 봉사하고, 세속적인 것을 멀리하고... 이런 것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그러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1차적인 경건생활은, <반드시 이웃과의 관계>로 꽃이 피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서 돌보는 사람이라> 말씀합니다. 

한마디로 참된 경건은 <이웃을 향한 관심>으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경건하다 말하면서, 이웃에 대한 관심, 타인에 대한 관심이 전혀없다하는 것은, <그 사람의 경건은 아직 멀었다> 볼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런 면에서, 참된 경건은 남에 대한 관심과 비례합니다. 
내가 지금 얼마나 기도하냐, 얼마나 성경읽냐, 얼마나 영적 체험을 많이 했냐? 이것으로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가족에 대한관심, 형제자매, 타인을 향한 관심>을 요청하십니다. 그 관심이란, 사랑과 섬김의 관심입니다. 누군가의 필요를 채워주는 관심입니다. <그렇죠. 야고보 당시 고아와 과부>의 삶은 너무나도 막막한 것입니다.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라 하는 겁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참된 경건이라는 겁니다. 
우리 목자목녀님들 중에는... 이렇게 누군가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몸이 안 좋은 분에게 죽을 쒀서 갖다주고, 입원한 분들을 돌아보고, 자녀들의 성장에 관심을 기울이고 기도해주고.. 돌봄과 섬김사역이죠. 그렇게 돌봄과 섬김을 받은 분들은 또 그대로 보고 배워서, 무엇인가 부족함이 보이는 지체에게 그대로 베풀어 줍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기쁨이 될까요? 
@그래서 제가 한가지 제안드리고 싶은 것은... 이렇게 하나님께나, 사람들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기위해서.. 이 말씀의 유익을 누리기 위해서.. 가정에서 실습해보시라 하는 겁니다. <운동도 부단히 연습하고 반복해야 실력이 올라가듯> 부단히 연습해야 하고 반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아내들에게는 <네 남편에게 복종하라>하셨죠. 계속해서 남편을 존중해드리는 겁니다. 그것이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한번 두번이 아니라, 힘들어도 마음먹고 하는거예요. 남편들에게는 <네 아내를 예수님께서 교회를 위해 자기 몸을 주신것같이 사랑하라>하셨죠. 그 말씀을 따라 희생적으로 부인을 사랑해보겠다 결심하고 말도하고, 실천도하고 하는거에요. --- 너무 갑작스럽게 그렇게한다고.. <아이고 오늘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하지 마시고... 부단히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럴때, 결국은 유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한주간도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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