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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요약

말씀요약

[25.3.23 주일말씀 설교전문] 약2:14-26
2025-03-25 11:33:49
송외숙
조회수   13

“왜 남의 호박을 따가는가?” 어느 목사님의 칼럼 한 토막 이야기입니다. 
이분이 기도원에서 기도하고 내려오는 길에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기도원으로 연결되는 길 양쪽 밭에 호박과 고추, 깻잎 등을 재배하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보고 심하게 욕을 하는 겁니다. <이 도둑놈들! 예수를 믿지나 말던지!> 그 이유를 들어보니, 기도원에서 철야기도를 마친 성도들이, 새벽녘에 내려가면서, 길가에 있는 호박, 고추, 깻잎을 다 따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목이 <왜 남의 호박을 따 가는가?>입니다. 기도원에서 울며 회개하고, 은혜받았다 하는 사람들이 <왜 남의 호박을 따가는가?>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하시며,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셨는데, 기도하고 호박을 따가는 분들은 전혀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있죠. 
예수님 말씀처럼 소금이 맛을 잃어버리면 사람들 발에 밟힐 뿐이니라 하신대로, 그리스도인들이 빛을 잃고, 맛을 잃어버리면, 세상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도 가려지게 됩니다. 
행함이 없는거죠. 믿는다 하지만, 그 믿음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수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야고보의 간절한 외침이 들어있습니다. 
우리 17절 20절을 함께 볼까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고, 아무런 실체가 없는 헛것, 껍데기에 불과하다 선언합니다. 
그래서 참된 신앙은 반드시 행함과 열매가 드러납니다. 이 말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서 행함, 행위가 필요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믿음 하나면 족합니다. 에베소서 2:8-9절을 우리는 언제나 기억해야 합니다. 
[엡 2:8-9]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이 말씀처럼 구원이라는 것이 <믿음+행함>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고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 선언합니다. 그래서 선물입니다. 간혹 어떤 분들은, 이런 바울의 구원관과 야고보가 강조하는 <행위, 행함>이 <서로 상치된다> 오해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야고보는 우리가 구원받은 자들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영, 성령을 모시고 참 믿음으로 살아단다면> 그 믿음은 움직인다는 거예요. 믿는대로...  
그래서 <믿음은 동사다>. 움직이는 겁니다. 운동력이 있습니다. 행함이 동반됩니다. 왜냐? 진짜로 살아있는 믿음은 능력이 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야 만다는 거예요. 
그러니.. 예수님을 영접하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참으로 수상한 일입니다. 어찌하든, 우리 안에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이라면, 점진적이든, 급진적이든... 그 내면과 삶에,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또 사람을 향한 진실한 사랑은 어떻게 표현되는가? 하는 것을 본문안에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행함으로 온전해집니다. 
야고보는 <믿는다 하지만, 행함없는 이들>을 향해서, 반문합니다.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한 사람은 행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믿음 있다> 말합니다. 그러니 행함이 있는 이가 다그칩니다.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보일 수 있지만, 너는 무엇으로 보일 거냐?> 
그러면서, 점점 수위를 높여 말하는데, 19-20절을 보십시요. 
19 네가 하나님은 한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그러니까.. 진짜 믿음은, <단순한 지식적 동의>가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셨다 이런것까지 알지라도.. 그 앎이 지적동의에 머무른다면, 그건 진짜믿음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진짜 믿음은 머릿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선언합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을 언급하고 있는데, 아브라함과 라합입니다.  
아브라함을 생각해 보십시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겠다 약속하셨습니다. 그럼 부지런히 자녀들이 나오고, 그 자녀들이 자녀를 낳고 또 낳고 또 낳고해야  민족이 될텐데... 아내 사라가 폐경이 될 때까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뜸을 오래 들이시더니, 아브라함 나이 100세, 사라 나이 90세에 이삭을 주셨는데.. 그후에 10여년 지난후에.. 그 이삭을 <바치라>는 거예요. 제물로... 얼마나 황당해요.. 그러니 진짜 <Test>입니다. 그러니 이 Test를 통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정말로 믿고 신뢰하는지.. 그게 바로 드러나게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겁니다. 어떻게 했습니까? 진짜 드렸습니다. 제단에 묶고, 칼을 들어 죽이려 했습니다. <참으로 대단하죠>... 그러니 하나님이 놀래셨어요. <야! 아브라함아. 칼을 치우거라!>... <야! 너 진짜였구나.. 네 마음, 네 믿음 진짜구나!> 그걸 보시기 그를 의롭다 하신거예요.  
그러니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는 그 믿음이 <말씀에 순종하는 행함으로 그대로 드러나버린 겁니다> 그래서 그 믿음이 행함으로 온전하게 되었다. 말씀하는거예요. 
21-24절을 보십시요.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그러니, 믿음과 행함이 따로 떨어져있지 않죠. 
또 한 사람은 <기생 라합>입니다. 
이 여인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 요단강 건너 여리고성으로 진군해 올 때... 이스라엘 하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냥 믿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진짜였어요. 여호수아가 보낸 두 명의 정탐꾼을 지붕 삼대 사이에 숨겨준 겁니다. 여러분!이건 모험입니다. 이스라엘은 소문이 아무리 자자해도, 고작 그 역사가 40년이예요. 신흥국가예요. 그런데 여리고는 수백년을 견뎌온 뿌리깊은 나라입니다. 여리고성도 대단합니다. 그런데 라합은 하나님은 승리한다는 확실한 믿음으로, 자신과 가족의 운명을 확 걸어버린 겁니다. <살아있는 믿음이죠> 
여러분 그래서 믿음은, 이런 삶의 변화를 만들어주고, 움직이게하고, 도전하게 하고, 나아가게합니다. 그게 산 믿음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안에 이런 변화들, 그 변화가 비록 작은 변화라할지라도, 한 분 한 분이 믿음으로 서가며 성장해가는 보습을 볼 때, <아!하나님께서 우리교회에 함께하시는구나! 하나님께서 일하시는구나, 성령께서 역사하시는구나!>하는 것을 느끼게됩니다. 
그간 성경을 읽지 않던 분들이 목장에서 함께 성경을 통독하고,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해주고, 나눔 속에서 자신을 살피고, 새 마음을 다짐하고... 나도 섬김받은 대로, 누군가를 예수님처럼 섬기기를 결단하고... 아이들을 붙잡고 축복해주고... 이런 것들이 작은 변화일까요? 아니요. 절대 작지 않습니다. 
여러분 안에 믿음이 살아 꿈틀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 안에 이 믿음이 더욱 충만해지길 바랍니다. 

2.진정한 사랑은 행함있는 사랑입니다. 
믿음이 하나님을 향한 것이라면, 사랑은 사람을 향한 것입니다. 
사랑도 믿음과 똑같은 원리 속에 있습니다. 
미국 남부 어느 도시교회에 유명한 강사가 부흥회를 인도했습니다. 집회 중에 사람들을 청해 간증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어떤 부인이 앞으로 나와 <저는 예수님 안에서 평안합니다. 이제는 어떤 고통도 감사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그렇게 간증하였습니다. 그러고나서 웬일인지 강사목사님이 물었습니다. <부인, 참으로 훌륭한 간증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예수님을 모시고 감사생할을 하시는데, 가정생활은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남편에게 잘하고 계십니까? 남편에게 순종하십니까? 자녀들을 신앙으로 잘 길러가십니까?> 그렇게 묻자 갑자기 교회 담임목사님이 일어나 강사목사님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강사님, 저 부인을 혼 좀 내주세요. 저 사람은 우리 집사람입니다>... 
제 아내는 집에서도 잘 합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15-16절입니다.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지난주일에 우리교회에 가끔 오시는 분이 오셨습니다. <노숙자이신것 같기도하고 아닌것 같기도하고..> 일년에 한두번정도 옵니다. 이분이 이런저런 말로 둘러대며, 통영가서 일해야된다하시고, <목사님, 다음엔 정말 안 오겠습니다>그러고 또 오셨어요. 어쩐지 최근에 생각이 나더라고요.. 한번 오실때가 됐는데.. 이번에도.. 제가 식당에 모시고 가서, 여러번 권면하죠.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가시겠습니까? 한군데 자리를 잡고 할 수 있는 일도 하시고, 교회도 정해서 나오시고... 자립을 하셔야 됩니다.> 그래도, <이제는 정말 일자리구해서 잘 살아갈겁니다. 다시는 안올겁니다. 한번만 도와주십시요>... 제가 <또 오셔도 됩니다> 그러고... <구하는 자에게 빈손으로 돌려보내드릴수가 없잖아요...그래도.. 늘 오시면, 예배를 잘 드리십니다.. 그래서 올때마다.. 2만원도 드리고, 3만원도 드리고..  
지금 야고보가 하는 말이.. 그겁니다.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 형제자매가 있다면, 어찌 말로 <덥게하라, 배부르게하라> 하고 <내가 기도해주마>하고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죠. 
그 형편이 절박한 상황이라면, 당장 필요한 것을 공급해줘야한다는 겁니다. 이처럼 사랑도 행함으로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랑도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릅니다. <내가 사랑받고 있다>하는 것을 느끼는 포인트가 다르다는 겁니다. 
이것이 <게리 채프먼>의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로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1)어떤 이는 말로 사랑받고 있다는 감정을 많이 느끼는 겁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사랑해.. 고마워.. 넌 소중한 사람이야” 이런 말이 필요합니다.> 
2)그런데 어떤 이들은,... <사랑해 고마워>하면.. 말로만? <아이고.. 말은 잘해> 이런 분들도 계셔요... 그런 분들은 사랑의 감정포인트가 다른 겁니다. 
그런 분 중에는 <난 머니머니해도 머니지> 선물을 기대해요. 이런 분들이 계셔요. 이런 분들에게는 뭔가를 안겨줘야 돼요. 이런 분들에게는 기념일에 절대로 그냥 넘어가면 안됩니다. 뭐래도 하나 가지고 들어가야합니다. 
3)또 어떤 분은, 그냥 함께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건 제 아내 스타일인 것 같습니다>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대화를 나누고 산책을 하고.. 
4)또 어떤 사람은 <실제적인 행동을 기대합니다> 설거지를 해주고, 정리를 도와주고... 피곤하고 힘들 때, 해야할 일을 대신해주고... 이런 분들은 말로 절대로 안 됩니다. <말로 때우려다가 본전도 못 찾습니다> 
5)또 어떤 분들은, 스킨십을 좋아합니다. 손을 잡아주고, 안아주고, 어깨를 두드려주고... 그게 사랑받고 있다는 표시로 느끼는 겁니다. 
이건 비단 부부관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관계에서도 적용됩니다. 그래서 정말로 누군가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랑한다면, 관심을 기울일 수 밖에 없고, 그가 원하는 사랑포인트를 발견해서 그것을 채워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이런 사랑을 잘 나타내주셨습니다. 
제가 이분의 진솔하고 소박한 글을 참 좋아하는데... 이주연 목사님이란 분입니다. 이분은 저 강원도 평창 산자락에서 노숙인들과 함께 공동체생활을 하면서, 그분들의 재활과 독립을 돕고 계신데.. 그러면서, 시와 짧은 단편글을 많이 쓰십니다. 그 시중에 <삶으로 보여주신 예수님>이란 한 편을 읽어드리고 오늘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당신께서 지는 놀을 바라보며 쓸쓸히 갈릴리 바닷가를 거닐지 아니하셨다면 나는 당신을 모른다 하였을 것입니다. 비록 당신이 그토록 선하신 분이실지라도. 

당신께서 민족의 피를 빠는 반역자 삭개오를 반가이 맞으며 그 집으로 들어가지 아니하셨다면 나는 당신을 따라 나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비록 당신이 나를 찾아 그 먼 곳에서 오셨을지라도.
당신께서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돌로 치려는 자들로부터 구하지 않으셨다면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비록 당신이 거룩한 사랑이실지라도.  

당신께서 들에 핀 꽃 한 송이를 보고 솔로몬의 영화보다 더한 것을 노래하지 않았다면 나는 당신을 영혼의 스승으로 모시지 못했을 것입니다. 비록 당신이 만물을 지으신 분일지라도. 

당신께서 죽은 나사로를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셨다면 나는 당신을 생명의 주로 모시지 못했을 것입니다. 비록 당신이 죽은 자를 살리셨을지라도. 

당신께서 한 여인이 옥합을 깨고 머리털로 닦을 때에 그를 용납하지 않으셨다면 나는 당신을 나의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입니다. 비록 당신이 참 사랑이실지라도.

당신께서 겟세마네에서 피를 토하며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를 고하지 않으셨다면 나는 당신 가신 길을 따라 나서지 못했을 것입니다. 비록 당신이 무덤에서 나오셨을지라도. 

이 밤도 내 영혼은 산 중에서 겟세마네에서 서성이시다가 기도하시는 당신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조용히 새벽을 기다립니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진짜 사랑이셨습니다. 지금도 그 사랑은 변함없습니다. 하나님은 향한 참 믿음과 형제와 자매를 향한 참 사랑을 가지고 한주간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복된 삶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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