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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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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9 주일말씀 설교전문] 약2:1-13
2025-03-11 10:28:36
송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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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읽고 이해하신 그대로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마라>하는 내용입니다. 두 주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초대교회당시는 사회적인 양극화현상이 매우 심했던 때이고, 가난한 이들 중에는 빚을 갚지 못하여 땅도 집도 잃어버리고 하루하루 연명하는 이들이 꽤 많았답니다. 이들 중 교회를 찾은 이들이 있는 거죠. 그래도 교회는 사람을 차별치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간혹 그렇지 않은 교회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어느날 주일예배시간이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한 사람은 금가락지에 화려한 옷을 입고 왔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남루한 옷차림으로 누가봐도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대하는 안내위원의 태도가 달랐습니다. 부자에게는 온 신경을 다 기울이며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한 것입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에게는 뭐라 했나요? 
3절을 볼까요?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당시 교회가 어떻게 생겼을까? 고고학 발굴에 의하면, 벽 옆으로 앉는 의자가 죽 있었답니다. 그러니까.. 그 의자에도 앉지 못하게하는거죠. <거기 서있는지.. 아니면 땅바닥에 앉든지..> 그런겁니다. 그게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는 뜻입니다. 
물론 생각해보면, 뭐 좋은 의도가 있었겠죠. 높으신 분이 왔을 때, 당시는 핍박도 있고, 법정으로 끌려가기도하고 하니.. 나중을 생각해서.. 이런 분에게 잘 보여야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특별대접을 하는 겁니다. 
오늘날도 그럴 수 있죠. 어느 날 주일에 우리교회에 대기업회장님이 왔다. 뭐 여기 창원공단에 누구라도 알만한 큰 회사 회장님이 <요즘 종교에 관심이 생겨서 교회를 좀 알아보고 있다> 해서, 가포교회에 한번 방문하신다 하면, 어떻겠어요?.. 아이고 어떻게든, 특별대접을 해드리겠죠. 그런데.. 거기 운전기사나 수행원이 온다치면, 그분들에게는 뭐 그리 크게 신경쓰지 않겠죠... 그런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그 교회가 이상하거나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교회라고 그러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야고보는 이런 모습을 아주 단호하게, 호되게 나무랍니다. 여기 4절을 보십시요. 
그렇게 부자와 가난한 자를 다르게 대우하면 어떻게 하는 것이냐? 
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또 6절을 보십시요. 
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그런 차별이 결국,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는 것 아니냐? 하는거죠.  
그래서 야고보가 하는 말씀은..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지 말라, 사람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럼 왜 사람을 외모로, 외적은 어떤 것으로 판단하지 말라 할까요? 그 이유가 있을거잖아요. 
그래서 왜 우리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아야하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고, 그리고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우리의 형제자매를 대해야 하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왜 우리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가? 
1.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지만, 특별히 애잔한 마음으로 유난한 사랑으로 마음을 쏟는 대상이 있습니다. 그들이 누굴까요? 
신명기 24:17절을 보겠습니다. 
[신 24:17]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며 과부의 옷을 전당 잡지 말라
여기 세부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객-나그네, 이민자들입니다. 이들은 법적으로 기댈곳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고아-아버지가 없는 아이들인데... 그 옛날 부모가 없다 하는 것은 주인에게 버림받은 길잃은 들짐승처럼 되는 것입니다. 남편을 잃은 과부도 보호받을 곳을 잃어버린 처지였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기댈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어떻게 표현했느냐? 기댈곳 있는 이들에게.. <이들을 억울하게 하지 말라>말합니다. 그리고 <밭에 추수하다가도 한모퉁이베는걸 잊어버렸거든.. 다시가서 싹 베어오지 말고, 그냥 남겨놓아라>는 거예요. 
감람열매도 남겨놓고, 포도원에서도 수확하고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그들을 위해서 남겨놓으라 하셨습니다. 
이사야 25장 4절 말씀에 의하면.. 힘있는 포악자들이 이들을 몰아칠때, 친히 하나님께서 그들의 보호자가 되어주시겠다 말씀하십니다. 
[사 25:4] 주는 포학자의 기세가 성벽을 치는 폭풍과 같을 때에 빈궁한 자의 요새이시며 환난 당한 가난한 자의 요새이시며 폭풍 중의 피난처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 되셨사오니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5장부터 이어지는 산상수훈을 보면,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고, 누가복음은 가난한 자가 복이 있고,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 하셨습니다. 특별히 몸이 아픈 병자들과 마음이 아픈 죄인들을 더 가까이 찾아가셔서, 죄짐을 풀어주시고, 그 아픈 것을 고쳐주셨습니다. 
@여러분! 이게 낮은 곳을 향해 흐르는 하나님 사랑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마음이기 때문에... 우리가 사람을 차별해서 대하면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마음이 아픈 겁니다
여러분!누군가 내 약한 자녀가 어디가서 괄시받고 왔다 해보십시요. 마음이 안 좋죠. 화가 나겠죠. 우리는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남들도 사랑해주길 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특별히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을 괄시하고 무시하는 일은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일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고 차별할 때, 하나님 마음이 그런 거예요. 
@반대도 똑같습니다. 자녀들을 군대에 보내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보내놓고 마음 많이 조리셨죠. 어머니들 남몰래 눈물짓기도 하시고... 처음 훈련소 들어가서, 몇일있다 옷 싸서 보낸거 받고 또 우시고... <굶진 않을까? 기압이나 받고 어디 다치진 않았을까?> 걱정합니다. 그런데... 편지에 보니, <엄마, 우리 조교가 고등학교 선배라 어젯밤에는 배가 고파 죽겠는데, 건빵을 하나 사줬어요>.. 그런 거 읽으면 얼마나 고마워요. 다음에 면회갈 때, 아들 거만 싸가겠어요? 누구 것도 챙길까요? <조교 것도 챙기겠죠. 내 아들, 잘 챙겨줬던 조교 것도 마음쓰게 되있는겁니다.> 고마우니까.. 그게 부모의 마음이고, 하나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약한 자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5절을 보십시요.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약한 자, 가난한 자들을 택하셔서 존귀하게 하시고, 하나님나라를 상속받게하신다.. 이것이 <낮은 곳을 향해 흘러가는 하나님 사랑>입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는 사람을 차별치 않고, 오히려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위해줄 줄 아는, 하나님 마음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우리가 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서 안되는가? 
2.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뭐 이런 말씀들은 너무나도 많이 나옵니다. 
[신 16:19] 너는 재판을 굽게 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삼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롬 2: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하나님의 성품이 그러신거예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해야할까요? 우리가 그분의 자녀들이면... 베드로가 이런 말을 합니다. 
[벧전 1: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자녀이기 때문에, 그 아버지의 성품을 닮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듯이, 자녀인 우리들도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하는 겁니다. 
세상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합니다. 지극히 자연스럽게.. 
인격적으로 형편없어도, 돈이 있고 힘이 있으면, 그것이 미화됩니다. 과정이 어찌됐든 성공하면 실력이 되는 것이고, 남을 배신하든, 속이든, 높은 자리에 오르면,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이고, 
또 얼마나 외모지상주의예요. <예쁘고 용서된다>그러죠. 모델 연예인들이 사치하면, 그건 사치가 아니고, 멋스럽게 보이고, 변덕을 부려도 발랄하게 보이고... 그런데, 못생긴 사람이 그러면, 뭐라 합니까? <아이고.. 꼴값 떤다> 그러죠. 그게 세상이예요. 
그런데요. 하나님이 참 좋으신 것이,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중심을 보신다는 거예요. 갈라디아서 5:22-23절, 
[갈 5:22-23]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이런 내면의 열매를 보시는 거예요. 이렇게 사는 삶이 처음에는 경쟁에서 뒤쳐지고, 바보같은 삶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은, 이런 열매가 그 사람의 가치를 고귀하게 높여주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결정해야 합니다. 
앞으로 내 삶은 사람들 눈에 좋은 사람이 될지, 하나님 눈에 좋은 사람이 될지, 사람들 눈에 아름다운 사람이 될지, 하나님 눈에 아름다운 사람이 될지를 말입니다.  
우리 가포의 성도님들은 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형제자매를 대하며 살아가야 할까요? 
3.긍휼의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우리 1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결국, 서로에게 긍휼을 행하라>는 말입니다. 
차별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가 <긍휼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서로를 긍휼의 눈으로 보는 겁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교회에서... 서로를 볼 때, 좀 못마땅하고 부족한 것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볼 것은 그가 가진 장점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힘겨운 삶 속에서도 기도하며 노력하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제가 마음에 참 힘든 일이 무엇이냐면... 누군가 제게 와서 다른 이에 대해서 흉을 보든지, 않 좋은 이야기를 할 때,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제가 누군가의 약점을 모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 약점들이 있습니다. 그건 하나님도 아십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주십니다. 그런 면에서 제게는 어느 누구 한 분 예외없이 아주 귀한 분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능한 한, 서로를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장점을 더 잘 살아나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나보다 더 약한 지체를 위해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럴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피상적인 관계에서 더 깊은 차원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피상적인 관계 속에서는 판단하기는 쉽지만, 긍휼의 마음을 갖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서로를 알아가면서, 더 깊은 관계 속에서, 긍휼한 마음을 갖게됩니다.  그의 아픔과 사정, 어려움을 알면 알수록, 더 긍휼의 마음이 들어와요. 그래서 가정교회가 좋은 것입니다. 거기서 누가 누구를 정죄합니까? 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인데... 서로를 긍휼하게 보게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서로가 서로의 눈을 한 30초만 들여다보면, 긍휼한 마음이 들어온답니다. 그래서 싸울때, 감정이 좋지 않을 때는 눈을 안 쳐다봅니다. 여러분! 집에 가셔서 가족들끼리, 이번주 목장에서 <서로의 눈을 좀 쳐다보세요>... 그렇게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날겁니다. 얼마나 애쓰고 살고 있는지...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마음,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길 원합니다. 그래서 아프고 외롭게사는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사랑하고 섬기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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