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요약
미국을 미롯해 전세계 몇몇 나라에서는 아직도 총기를 자유롭게 소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각종총기 사고가 끊이질 않습니다. 미국같은 경우는 통계상으로 강도가 쏴서 죽는 사람보다 오발사고로 죽는 사람이 더 많다 합니다. 총이란게 참 위험하죠.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젊은 아버지가 강도의 침입에 대비해서 권총에 총알을 장전해서 서재 서랍장에 총을 놓아두었습니다. 퇴근하고 돌아오니... 보통은 4살짜리아들이, 아빠하고 달려와야하는데, 없는거예요. 얘가 어딜갔나하고 찾아보니, 서재에서 놀고있었습니다.
아빠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대디> 하고 돌아보는데, 그 손에 총이 들려있는거예요. 아이가 장남감인 줄 알고 놀고 있습니다. 그 순간 아버지가 얼어버렸습니다. 소리를 치면, 놀래서 방아쇠를 당길수도 있고, 그러면 자기가 죽든지, 아이가 죽든지... <또 방아쇠에 손대지 마라>하면, 거기에 집중할까봐 그것도 못하고.. 그런데 이 아버지가 아주 지혜스러웠어요. 얼굴표정 변하지 않고 계속 이야기하면서 <거기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천천히 걸어갔어요. 그러고 총을 그 앞에 가서 얼른 빼었습니다. 이분 이야기가 그 십미터가는 거리가 한 천미터가는 거리같더랍니다.
아이 손에 들려진 총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아이가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총이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총이 가진 파괴력때문입니다.
총이 잘못 오발되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파괴력이 있고, 그런 총이 다룰 수 없는 어린아이 손에 들려져 있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죠.
우리 몸의 지체가운데 바로 <혀>가 그렇습니다. 이 혀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 혀의 파괴력은 총보다 더 클 수 있습니다. 총이 오발되어 죽지 않고 상처를 입게 되면 수술하고 치료하면 됩니다. 회복될 수 있죠. 그러나 말의 파괴력이란 것은 어떤 경우는 한번 상처를 입으면 죽을 때까지 아물어들지 않는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총은 겉으로 보이는 부분에 상처를 입히지만, 말은 보이지 않은 내면에 상처를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혀의 파괴력은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뭐 저와 여러분도, 살아오면서, 말로 인한 상처를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런 일이 없다는 분은 정말 복있는 분들입니다. 어떤 분들은, 지금도 그 때 그 말만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눈물이 그렁거리는 그런 경험도 가지고 계십니다.
저도 들은 이야기인데, 이분은 지금은 사회적 지위도 가지고 계시고, 안정된 삶을 사는 분인데, 청소년 때 그 때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목소리가 떨리고 눈물이 글썽이는 어떤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분이 어릴 때, 아버지가 비지니스를 하다가 실패를 해서 아주 가난했습니다. 천막에서 살아야 할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중고등학교도 못가야 되는데, 머리가 너무 좋아서 국비장학생으로 다니고, 혼자 그렇게 공부해서 서울대에 합격을 했습니다. 그런데 입학금이 없는거예요. 이걸 어떻게하나 어떻게하나 고민하다가 먼 친척뻘되는 아주머니가 생각이 나서, 그분이 좀 여유가 있으신 분이라서 찾아갔습니다. 집 식모가 문을 열어주는데, 아주머니가 안계시고 저녁때 들어오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거실에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구냐면, 그 아주머니의 딸, 자기하고 비슷한 또래의 딸이 들어온거예요. 그러면서, 식모하고 이야기하면서 수근수근하더니, 이 딸이 이 분의 마음에 평생 남을 비수를 꽂아버린거예요.
<너는 그지 처럼 왜 우리 집에 자꾸 와>
이 말이 마음에 찔려서, 몸이 떨리기 시작하는데 걷잡을 수 없이 떨렸대요. 그래서 아주머니를 기다리지 않고 맥이 빠진 발에 간신히 힘을 주고 걸어 나왔답니다. <너는 거지처럼 왜 우리 집에 자꾸 와> 하는 말이 수십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그 이야기를 할때면 목소리가 떨리는 거예요.
이것이 말의 파괴력입니다. 우리는 이 말로 얼마나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고 사는지 모릅니다.
오늘 야고보는 이러한 혀의 파괴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말씀을 통해서 알려줍니다. 그래서 여기 2절을 보면,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그래서 야고보는 재갈이야기를 합니다. 워낙 컨트럴이 안되는 지체니까..
3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그러면서 이 혀는 우리 몸에 어떤 역할을 하느냐?
배의 키와 같다.
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그 큰 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라. 작은 키가 그렇게 하는 것 아니냐?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작은 불씨가 많은 나무, 심지어 산 전체를 태우듯이... 작은 불씨가 집전체를 태우듯이... 그렇게 이 말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6절,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한 교회 이야기입니다.
교회마다 목회자가 바뀔 때, 크고 작은 내홍이 있습니다. 제가 있었던 교회도 두명의 후보가 너무 팽팽해서.. 아 이러다가 교회 갈라지겠다 싶어서, 다 무효시키고, 처음부터 다시 합시다 해서 한 경우도 있습니다.
여하튼... 그 교회가 청빙을 하면서, 청빙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세대를 골고루했는데, 한 젊고 유능한 목회자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청빙위원중에 좀 젊은 집사님이 극구 반대를 하는거예요. 청빙위원 대부분이 찬성을 했는데, 반대한 몇 사람 중에 이분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는 청빙에 후유증을 없애기 위해서 만장일치를 만들자해서, 억지로 억지로 설득해서 만장일치를 만들어서 가결시켰는데, 문제는 그 뒤로, 이 반대했던 집사님이 온갖 곳에 소문을 내고 다니는 거예요. 나이든 청빙위원들이 나를 억지로 찬성하게 해서 통과된 거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냐? 그래가지고 교회가 시끄러워진 겁니다. 결국 청빙위원장이 사임을 하고 교회를 떠나고... 한주 두주 몇 년 째 그 일이 이어지면서, 교인들이 다 떠나고.. 교회가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결국 뭡니까? 그 입이 그런 일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 입을 조심했더라면, 그런 정도까지 가지 않았을텐데... 입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에 대해서 야고보는 어떤 권면을 우리에게 주고 있는가? 간단히 몇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1.말의 실수를 인정해야 합니다.
7-8절을 보면,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 혀는 길들일 수가 없다 말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중에 하나가, <내가 왜 죄인이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람을 죽였냐? 사기를 쳤냐? 남의 걸 도둑질했나?> 그런데... 이 혀로 사람을 그동안 얼마나 상처주고 살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은 남편들이 아내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얼마나 많은 아내들이 이 말로, 남편의 기를 꺾어놓았는지... 얼마나 많은 말로, 자식들 마음에 분을 쌓아놓았는지... 이 혀가 너무 작아서.. 그걸 알지 못해요. 이 혀의 파괴력을...
그래서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아!나는 말에 실수가 많은 사람이구나>하는 것을 말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의도해서 뭐 거짓말을 하고 그렇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저도 말을 하다보면, 제 중심적이 되기도하고, 때론 과장해서 부풀려서 말하기도하고, 아 뭐가 될 때는 <아. 그건됩니다. 할께요> 해놓고, <상황이 좀 안 좋아지면, <그거 어렵겠는데요... 언제 그랬느냐 꼬리를 내리고>
사람이 악의적으로, 일부러 거짓을 말하려고 하기보다는... 이 말이 그렇게 진실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주변에 제일 힘든 분들이 <나는 말에 실수하지 않습니다> 생각하는 분들입니다. 우리가 <이 혀를 다룰 수 있는 가장 첫 번째는 “이 혀는 길들일 수가 없구나”.. 말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2.혀를 다룰 수 있기 위해서는 내면이 바뀌어야 합니다.
말은 내 내면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오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말은 내면의 온도계입니다. 내 내면, 인격을 측정해주는 온도계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나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입에서 불평이 많이 나오다 하면, 이 마음에 감사할 줄 모르는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 남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말들을 많이한다 하면, 그 마음이 교만한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을 하냐 이것이 바로 여러분들의 인격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말을 하면 이런 실수를 하니, 말을 하지 말고 살아야겠다 할 수 있지만, 그런다고 말수가 적어져서 실수를 줄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마음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적은 말에도 그 마음이 묻어나오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마음없이 말만하는 경우를 많이 보죠.
물건을 사러 백화점이든, 쇼핑몰이든 가 보십시요.
점원들이 그냥 뭐 간이라도 빼줄 것 같이 하죠. 아무한테나 어머니, 어머니, 아버님하죠. 너무 잘 어울린다고, 너무 아름다우시다고... 그렇게하다가, 사지 돌아서면, 안색이 싹 변하죠. 아마 속으로 <아이, 오늘 재수없네> 할 겁니다.
그러니까.. 마음은 없는데, 말만 바꾼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 말을 안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가끔하는 말이 좋게 나가지 않습니다.
모든 근원이 이 마음이기 때문에 이 마음을 바꿔야합니다. 그럼 이 마음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이 말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시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통해서 이 마음을 바꾸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닮아가는 거예요. 감사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 연민을 느끼는 마음.. 이런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말이 아름답게 나옵니다.
마음을 바꿔야 됩니다. 예수님을 영접해서 예수님으로 하여금 나의 속 사람을 변하게 해 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이 마음이 변화될 때, 우리 말이 아름답게 지어져갑니다.
그래서 말을 조정하려고 하시지 마시고 마음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3.말을 긍정적으로 써야 합니다.
혀라는 것은 나의 인격이 지금 어디 와 있냐 하는 이 측정 도구도 되는 동시에 또 나의 인격을 변화시키는 변화의 매개체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어떤 말을 하느냐가 여러분들의 인격을 변화시킵니다.
아침에 새벽에 일어나서 <아이고 죽겠다.> 이러고서 하루를 시작하면 하루 종일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말을 긍정적으로 써야 합니다.
말이란 것이 힘이 있습니다. 말한대로 됩니다.
우리가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한다 하는 말도 하지만은 사랑한다는 말을 하면서 사랑이 생깁니다.
감사하기 때문에 감사하는 말도 하지만 감사한다는 말을 하다 보면, 감사의 마음이 생깁니다.
그럼 먼저 얘기한 그 마음에 없으면서 친절을 베푸는 그거하고는 차이가 뭐냐? 그거야 마음이 없으면서 이익을 얻기 위해서 하는 말이지만 내 말이라는 것이 내 인격을 표현할 뿐더러 내 말이라는 것이 인격을 변화시킨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말이 긍정적인 언어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감사합니다>하면, 감사의 마음이 더 솟는 것을 느낍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더 커지는 것을 느낍니다.
<하나님 제가 믿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면 믿음이 자라는 것을 느낍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무슨 말을 많이 하면서 사십니까?
부정적인 말을 긍정적인 말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미안해요 감사해요 내가 잘못했어요.> 우리는 부정적인 말을 긍정적으로 바꿀 때 우리 혀는 인격을 변화시킬 수가 있습니다.
혀는 엄청난 파워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도 예외되지 않습니다.
나는 아닌데, 자꾸 상대방이 말실수를 한다고 생각된다면, 그것은 착각입니다. 이 문제가 남 때문에 생겼다고 생각된다면 나 자신의 말부터 다시 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말에 실수가 많은 사람인지, 부정적인 언어를 얼마나 쓰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지금 내 마음의 상태는 감사와 은혜, 사랑으로 가득차 있는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성령님의 은혜가운데 말을 아름답게 사용함으로 천국을 누리시는 복된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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