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요약
대부분의 종교는 윤리적으로 볼 때, 긍정적입니다. 이를테면, 불교는 자비를, 유교는 인애, 기독교는 사랑을 말합니다. 인내, 자비, 사랑.. 다 비슷한 것들이죠. 그런데 아주 틀린 것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창시자에 관한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다 죽음의 흔적이 있죠. 그것이 묘입니다. 무덤.
공자님도 죽어서 묘가 있고. 마호메트도 묘가 있습니다. 석가모니는 화장해서 그 유골을 8군데로 나누어 뿌렸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창시자라고 할수있는 예수님은 무덤이 없습니다. 아니 무덤이 있다해도 그 무덤은 의미없는 <빈 무덤>입니다. 왜 일까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들은 살아생전 인간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줬고, 좋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나 하나같이 죽음 앞에서는 무력했습니다. 그에 비해 예수님은 그 죽음을 정복하시고 다시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요즘 간간히 임사체험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성경에도 나사로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나사로는 다시 죽을 겁니다. 그것은 부활이 아닙니다. 부활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럼, 이 부활이 우리 신자들에게 왜 중요한가? 부활은 뭐고, 부활을 믿고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1.부활은 우리 신앙의 핵심입니다. 우리 신앙에 이 부활을 빼버리면, 다른 모든 것들이 흐트러집니다. 부활을 빼버리면, 예수님을 믿어야만 꼭 구원받는다 하는 근거가 없어져버립니다. 그래서 부활은 우리 신앙의 핵심이자 기초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부활에 대해서 심상히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개중에는 신학교 교수분들 중에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어떤 목사님의 간증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이 목사님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게된 분 이야기인인데... 이분은 오래전 불교에 심취해서 아주 존경하는 스님 한 분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스님이 돌아가시게 되었는데 이분이 임종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묻었습니다. <스님, 이제는 도를 깨달으셨습니까?> <우리가 애만 쓰는 거지, 어떻게 내가 도를 깨달았다고 얘기하겠나?> 그러고 돌아가셨어요. 그 뒤로.. <아! 내가 보기에 이분은 정말 살아계신 부처 같으신 분인데, 그렇게 많은 시간을 들여서 애를 쓰고, 선을 행하고 공부하고 했는데도 답을 발견 못했다면, 나같은 사람은 어림도 없겠구나> 하고, 회의가 들어서, 평범한 삶을 살게된겁니다. 그러다가 그 아들이 예수를 믿고 확 변해가는 것을 보고.. 옛날생각이 난거예요. 그래 “나도 예수를 믿어볼까?” 그런 생각이 나서, 목사님을 찾아온거예요. “목사님, 저도 믿어볼랍니다. 어떻게하면됩니까?” “예, 기도로 영접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해드리고 영접기도를 했습니다. 그뒤로 성경도 좀 읽으시고, 그런데.. 믿음이 자라지 않는겁니다. 이 목사님이 <왜 그럴까?>... 부활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없는 겁니다. 그냥 부활이라는 것을, 엉거주춤, 얼버무려 넘어가버린거예요. 그러니, 하나님과의 옳바른 관계가 형성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 물론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은 일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도.. 그런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여기 12절도 보십시요.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당시 헬라철학은 사람이 육체를 벗는 일은 해방을 의미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기껏 벗은 육체를 다시 입는다는 것은, 내키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또 당시 영지주의 이단은 부활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었습니다.
한 영지주의자가 쓴 글입니다. “부활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죽은 몸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방법으로 살아날는지 말해 봐라. 죽은 자가 살아난다면 어떤 몸을 입을 것인지를 말해봐라.” 도전하는 거죠. 육체가 죽으면 썩어서 자연으로 돌아가 공중분해되는데, 부활한다면 뭘로 되느냐?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이냐? 하는 이야기이죠.
그런데.. 바울은 이 부활을 얼마나 강조하고 있는지.. 15장 전체가 그 이야기입니다.
여기 13절부터 보십시요.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죽은 자가 살아나는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께서도 다시 살지 못하셨을것이다. 이 말은 반대로 말하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면, 우리도 부활한다는 말입니다.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부활이 우리 신앙의 핵심이고 기초라면, 그 핵심과 기초가 거짓인데... 그 위에 뭘 쌓아올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것이죠. 우리 신앙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입니다.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바울은 “부활이 거짓말이라면, 나를 포함해서 모든 사도들, 사역자들은 다 거짓증인들이다.” 부활이 없다면 그렇다는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모든 목사들은 다 사기꾼들입니다.
바울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거잖아요. <14절, 예수님이 다시 살지 못하셨다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고,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여기 <헛 것>은, <케노스>라는 말인데, <텅 비었다는 말입니다. Empty, 허상>이예요.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아무것도 없는걸 <있다> 말하는만큼 사기꾼이 어디 있겠어요...
부활이 없다면, 저를 이 자리에 계속 두고 보시면 안되는 겁니다. 저를 끌어내리시든지.. 쫓아내든지... 다음주부터 교회 안 나오셔도 돼요.
뭐 그럴 분들은 한 분도 안 계신 것 같은데..
그래서 부활은 너무 중요하다는 거예요. 그럼 부활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2.부활은 죄사함과 구원을 확증해줍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후, 우리에게는 2가지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는, 내 죄가 용서받았다> 그렇죠. <두번째는, 나는 구원받았다> 그 두 가지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확증해주는 것이 뭐냐? 그게 부활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예수님 영접하고 난 후, “그래! 네 죄가 다 사해졌어. 너는 깨끗해졌어... 너는 의로운 자야” 라는 것과, “너에게는 이제 심판이 없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어. 넌 구원받았어” 라는 근거가 부활이라는 겁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닐 때, 그들에게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왕이 되실 때, 나도 한자리 한다> 그런 기대감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힘없이 붙잡혀 십자가에 죽어버리니까, 다 뺑소니쳤습니다.
그런데... 3일째 되는 날,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을 만나주신 다음부터, 제자들은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제자들과 40일간을 함께하셨습니다. 그 기간에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셨겠죠.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 이런 말씀이 깨달아 진거에요.
[신 21: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예수님께서 죽으신 건 분명히 저주받은 죽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살아나신 걸보니.. 예수님이 왜 죽으셨는지, 예수님이 누구셨는지 알게 된 겁니다.
[시 16: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그들이 알게되었습니다. “아!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실 걸보니, 그분은 <거룩한 분이셨지>.. 그래서 죽음이 예수님을 붙잡고 있을수가 없었구나... 그럼 그분이 죽은 것은 자기 죄로 죽으신 것이 아니라, 나와 너, 우리 죄 때문에 죽으신거구나.... 죽을 이유가 전혀 없으신 분이, 온갖 수치와 모욕을 받으며 끔찍이 죽으신 것은... 내가 받아야 할 저주, 그 죄 값을 그분이 짊어지고 죽으신거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깨달은 베드로가 그 편지에 이런 말씀을 하잖아요.
[벧전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그렇죠. 그분이 나무에 달린 것이 저주의 죽음인데, 그 몸이 왜 죽으셨어요? 우리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서.. 그렇게해서, <믿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는 죽고— 그렇죠. 이것이 죄사함이죠. -- 의에 대하여 살게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 죽음이 <우리 죄사함때문>이라는 사실을 확증해주고 있는 겁니다.
이어서 우리 구원을 확증해줍니다.
[롬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부활을 믿고, 그 예수님이 이제는 “저의 주인이십니다. 왕이십니다” 그분을 시인하면 구원을 받는다> 하는 겁니다. --- 그래서 부활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부활이 예수님께서 정말 부활했는지 어떻게 아느냐? 부활의 사실을 바울은 두 가지로 호소합니다. 첫째는 성경에 예언되어 있다는 것하고, 두번째는 많은 증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겁니다. 3-4절을 보십시오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두 번째는, 수많은 증인들입니다.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 이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야고보입니다. 그 동생들은 예수님이 부활할때까지 잘 믿지 못했던 이들입니다. 심지어 예수님께 <아니, 형님, 그렇게 큰 일할것 같으면 이런 시골에서 썩고 있지말고, 예루살렘 큰 물로 가십시오> 좀 비아냥거렸던 사람입니다. 그런 야고보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거듭나 <후에 예루살렘초대교회 담임목사>가 되었습니다.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예수믿는 자들을 색출하여 잡아들인 바울도 <나도 만났다> 말하고 있죠.
@이들은 하나같이 순교한자들입니다.
여러분! 간혹 ufo 봤다 하는 사람들, 내가 임사체험해서 우주인을 만났다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분들이 그거 전하기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놓는 이들>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증인들은.. 그 부활을 전하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자기 목숨을 내놓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왜요? 사실이기에... 정말이기에.. 그렇게 한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은 새옷을 입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고 있는 지금 이옷은 이 세상에서만 적합한 옷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장차 누릴 새 하늘 새 땅, 회복된 에덴의 세상은 새 옷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부활의 몸이요. 영화로운 몸입니다. 그것이 바로 영생입니다.
어디서 본 이야기하나 해드리고 마치려 합니다.
청년세명이 90되는 빌딩 옥탑방에 세들어 살았습니다. 토요일저녁 <같이 좀 놀자>해서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와 다동차몰고 저녁먹고, 볼림도 한게임치고, 기분좋게 놓고 피곤해서 <야! 집에가자>해서 왔는데, 이게 왠일, 엘리베이터가 고장난겁니다. 할수없이 걸어올라갔습니다. 4~5층정도 가니까, 다리가 아픈거예요. 그래서 한친구가 제안했습니다. <우리 힘들어죽겠는데, 얘기 좀 하면서 가자> <좋다!> 어린시절 얘기부터 하는데, 국민학교 때, 서리한얘기, 짝사랑얘기, ~~~ 군대간얘기... 60층, 90층 아 드디어 95층까지 다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아파트 앞에 와서 <야 너 문 열어> <아차 열쇠 차에 놓고 내렸다>
여러분들 이제 열심히 사시다가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시다가 죽음을 당하고 죽이고 나면 무로 돌아가시는 줄 생각했는데... 그때가서 후회해도 이미 늦었습니다.
부활신앙을 잘 준비 합시다.
우리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부활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도 부활할 것입니다.
한 주간의 삶 속에서도 이 부활의 능력을 힘입어 충만한 은혜가운데 살아가시는 승리의 한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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