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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11 담소] 어버이주일을 보내면서
2025-05-10 13:54:25
한재동
조회수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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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8일은 어버이날이었습니다.

또 교회는 전통적으로 5월 둘째주일을 어버이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은혜, 특별히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과 섬김을 기억하는 일은 한국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입니다.

미국과 세계 각국에서도 <어머니의 날>을 기념합니다.

 

저의 어머님은 몇 년 전에 이미 천국에 가셨습니다.

지금도 어머님에 대한 기억은 한없이 인자하셨던 모습입니다.

어린시절, 어렵던 시절, 딸 하나 없는 5형제를 낳으시고, 작은 체구에 모진 일을 다 감당하신 어머님이 떠오릅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외지생활을 했습니다.

그때 몸이 아프고 외로울때면, 어머님께서 어린 제게 추운 겨울 코트를 입혀주시고 단추를 잠궈주시던 따뜻한 손길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지금은 곁을 떠나셨지만, 아직도 그 은혜와 사랑을 다 헤아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시간, 어머님께 받은 사랑이 너무 크지만, 집이 멀다는 이유로, 목회가 바쁘다는 이유로, 부교역자 시절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유로,

더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해드리지 못한 것이 이내 아쉽고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그렇게 몇 개월에 한번씩 들릴 때면 언제나 하시는 말씀이 고맙다였습니다.

당신께서는 저의 어린시절과 평생을 상을 차려주셨는데, 저의 일 년에 몇 번 안되는 식사 대접을 받으시고, “고맙다하셨습니다.

런 저는 어머님의 평생 밥상에 그리 큰 고마움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늘 한가지를 덧붙이셨습니다. “미안하다. 더 해주지 못해서...”

 

아버님은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아버지는 작은 농사거리로는 자식 5형제와 홀어머니를 모실 수 없어, 젊은 시절부터 산 일(벌목작업)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집에는 늘 기계톱이 2개 가량 있었습니다.

하루종일 일을 마치고 돌아오시면 옷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크게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자상하지도 못하셨습니다.

그러나 가끔씩 어머니와 나누시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식들 걱정을 항상 갖고 계셨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사랑은 잔잔한듯 무게가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늦게나 알게 되었습니다.

 

해마다 어버이주일이 돌아옵니다.

살아생전, 곁에 계실 때, 조금 더, 부모님께 잘 해드려야겠습니다.

항상 기도로 복을 빌고, 하나님 나라 충만한 소망을 갖고 살아가시도록 최선을 다해 섬겨야겠습니다.

부모공경은 땅의 첫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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