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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사역(부서, 목장, 선교회 등)과 개인 활동, QT, 독서 등을 자유롭게 나누는 공간입니다.

인*도 여행기1
2024-10-13 19:03:13
이창우
조회수   157

인.도. 여행기

 

추석연휴기간에 휴가를 더하여 인*도를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뜻밖의 만남 혹은 예비된 만남으로 ㅅㄱ현장을 경험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보안과 보호를 위하여 지명 등에 부호를 넣고, 자음 등으로 표현하거나, 선생님 또는 사장님으로 표현 되어 읽는 것이 다소 불편해도 양해 바랍니다.

 

지난 추석 연휴기간에 휴가를 더하여 인.도.여행을 다녀왔다.

인* 도.는 간간히 TV 여행프로나, 다큐멘터리 프로에서 보곤하는데, 어떤 지역에서 보여지는 풍습이나, 문화, 종교는 이색적인 수준을 넘어 다소 엽기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곳도 있던 나라이기도 하였다.

언젠가는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이번에 가게 된 것은 오래된 계획은 아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베낭여행으로 여러 국가를 고민하다 선택하게 된 것이고, 홀로 떠나는 해외 베낭여행은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나의 인 *도여행 계획은 뉴델*리 주변을 관광을 하고, 아,그,라에 가서 타,지마,할을 보고, 가장 인.도.스럽다는 바.라.나.시와 갠.지.스강을 다녀오는 것이 개략적인 일정이었고, 그 여정에서 만날수 있는 선생님이 계시며, 뵙고 사.역.지도 둘러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해외여행을 가면 그곳에 계신 선생님을 뵙고, 사역ㅈ도 둘러보는 것이 나의 여행 루틴이 되었다. 인*도.는 후원선생님도 없고, 아는 선생님도 없었지만, 출발전에 어떻게든 연결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티켓팅을 하고, eVisa를 발급받고 준비를 하면서 인.도. 바,라,나,시에서 계시는 어느 선생님에게 메일을 보내었다. 인.도.에서 사역하시는 선생님의 연락가능한 정보가 많지 않아 이분이 연결되지 않으면 온전히 베낭여행으로 가도 괜챦겠다는 생각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출발을 몇일 앞두고 선생님으로 부터‘환영한다’답장이 왔다. 바.라.나.시는 델*리로부터 기차로 12시간 정도 걸리는 먼 곳이다. 델*리와 타지.마할은 혼자 여행을 하고, 바.라.나.시에서 만나면 적당한 여행 일정이라는 생각에 감사했다.

 

출발 몇일을 앞두고 나의 개략적인 일정을 확인한 선생님은 델.리까지 오시겠다는 내용이 왔다. 12시간이 걸리는 그 먼곳을 오신다는 것이 감사하기도 했지만, 너무 부담을 드리는 것 같아 죄송하였다. 그러나, 꼭 오시겠다 하시며 전체 일정을 함께 여행하는 일정으로 조정해 주셨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고, 특히, 인.도.라는 낯선 땅이라 베낭여행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인.도.에 대한 선입견이 주는 긴장과 두려움이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선생님 부부와 함께 다니는 여행이 되어 긴장과 두려움은 없어지고 기대만 남게 되어 감사했다.

나는 이동을 많이 해야 하는 여정이고, 베낭여행이라는 컨셉을 살려 짐은 베낭 하나와 작은 크로스 백으로 꾸렸다.

출발일, 합성동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새벽 3시 인천공항으로 가는 리무진을 타고 출발을 했다. 아내가 터미널까지 차로 배웅해주었다. 아내도, 아이들도 계속 안전을 당부한다. 인천공항에 일찍 도착하고, 비행기를 기다릴 무렵 박선생님도 바,라,나,시에서 출발하여 델.리에 도착해 있다는 카톡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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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에서

(인.도. 델.리 1일차)

비행기는 인천을 떠나 8시간 30분만에 델.리공항에 도착을 하였다.

입국심사대를 거쳐 출국장을 빠져나오자 박선생님과 아내 되시는 배선생님이 마중을 나와 계셨다. 처음 보는 사이지만, 서로 금방 알아보았다. 카톡 프로필을 통해 서로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후 공항 택시를 타기위해 주차장을 향했다.

공항을 나서자 다른 동남아시아와는 다른 풍경들이 펼쳐졌다. 택시와 자가용으로 뒤엉킨 공항 주차장에 경쟁하듯 울려대는 경적소리가 피곤하게 느껴지면서 여기가 '인.도.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다.

 

델.리에 도착한 시간이 저녁시간이라 공항을 빠져나와 호텔로 오는 길에 들러 식사를 하며, 서로 처음 보는 사이라 조금씩 알아가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 먼 곳에서부터 이곳까지 선생님이 오시는 것이 이래도 되나’싶을 정도로 미안하고 죄송스러웠는데, 내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려 그러시는지, 두분도 델리는 출입국때 잠시 들르는 정도이며, 도착하면 공항을 거쳐 바로 바라.나.시로 항상 가기 때문에 델리 여행은 경험이 많지 않고, 추석을 맞아 bsh(북.인.도 선.생.님 모임)모임이 델.리에서 있는데 나의 메일을 받고 bsh 참석과 함께 델.리 여행하는 계획을 세웠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그게 다는 아니고...이분들은 섬김이 몸에 배인분들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를 향했다.

호텔로 오면서 거리 풍경을 볼때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 지저분한 거리, 노숙인 등이 앞으로 내가 보게 될 인.도.의 일상적 풍경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호텔이 생각보다 좀 지저분한 동네에 있네.. 정도로 생각을 했다.

숙소를 예약할때 부터 가성비 좋은 곳을 선택하려 애를 썼다.

호텔에 도착하여 처음 느낌은 시장터안의 조그마한 호텔이라, 그렇구나 라는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다니면서 본 느낌은 대부분의 동네가 이곳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호텔은 제법 평점도 좋고, 깨끗하다, 친절하다는 댓글과 착한 가격에 기대하고 선택하였는데, 그 평점과 댓글이 조작은 아니겠지만, 잠시 본 인.도. 밤풍경만으로도 현지인 기준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워실 벽은 묵은 때 투성이고, 벽에 부착된 샤워기, 드라이기는 금방이라도 목이 부르질 듯하여 조심스럽고, 어느 것도 평점과 부합한 느낌이 하나 없었지만, 그나마 직원들은 친절하였다.

 

델.리의 첫날밤 쉬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일때 밖에서 폭죽과 빠른 템포의 북소리, 함성과 기이한 추임새 같은 소리가 들려와 호기심에 나가봤다.

어떤 神의 형상을 가마에 태워 장정들이 어깨에 메고 그앞에서 춤을 추며 폭죽을 터뜨리며 행진하고 있고, 주위에 많은 사람이 몰려 다녔다. 밤12시인데 아직도 사람이 많고, 이시간에 이렇게 해도 민원도 없다. 이것이 가능한 곳이 인.도.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마치 굿판이나, 동네 逐邪(축사) 행렬 같은 같기도 하고, 춤추는 사내들은 신내림 받은 것 같은 분위기라 꺼림칙하여 더 이상 다가가지 못하고 돌아왔다.

막상 누워도 잠이 오지 않고, 조금전 본 풍경과 소리들이 귓전에 들리는 듯 한게 괜히 보러갔나 싶은 생각을 하며, 찬양을 틀어 놓고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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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 2일차-bsh, ㅅ학.교)

호텔 조식은 인.도.식 뷔페였다. 쉬 손이 가지 않았는데, 다행히 토스트와 커피가 있다. 적응을 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토스트와 커피, 삶은 계란 정도를 먹었다.

선생님은 식사를 하며 오늘 일정에 대해 대략 말씀을 해주셨다. 첫날 일정은 bsh(북.인.도. 선생님 모임) 모임 참석이다.

명절때마다 선생님들과 가족들이 모여 예배드리고, 식사와 교제를 한다고 한다.

메시지는 인.도. 새로 부임한 선생님께서 맡으셨는데, 내내 북받침 감정을 참지 못하시다가 겨우 마치셨다.

선생님은 한국에 어느 지역 중형ㄱㅎ 담임을 하고 계시다가 중도 사임을 하시고, 이곳 한인ㄱㅎ 선생님으로 부름을 받으셨다고 하는데, 사연을 말씀하실 때 마음이 짠해졌다.

선생님 인사시간에 사회자가 '여행객'에 불과한 나를 불러내어 나가서 인사를 하게 되었다.

bsh 회장 ㄱ사장님은 광고시간에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인.도.도 이단들로 인해 큰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하시며, 특히, 신천지, 구원파 등이 재정을 앞세워 현지교회 간판들을 신천지 등 이단으로 바꾸고 있는데, 최근 인.도.에만 200개가 이단으로 간판을 바꾸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모일자에 모이는 대책모임을 말씀하시고 참여를 독려하셨다.

한국ㄱㅎ가 집안 싸움 하고 있을 때 이단들은 하나가 되어 ㅅ교ㅅ님들이 피땀 흘려 세운 ㄱ회들을 너무 쉽게 삼켜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예배후 식탁교제만 하고, 이후 윷놀이 등 친교시간은 참석하지 않고, ㄱ사장님(bsh 회장)과 인사를 나누고 나올때 내일 본인 차량으로 델.리 관광을 시켜 주시겠다고 하여 너무 미안하고, 감사했다.

 

우리는 다음 일정인 제이콥선생님이 인.도.ㅅ.학생을 양성하는 학.교를 방문하였다.

배선생님은 마치 비밀 접선을 하듯 어느 건물을 찾아 전화를 하자, 안에서 누군가 나와 문을 열어주어 조심스레 건물로 들어갔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강의를 함께 하고 계셨다.

 

인.도.가 기독교 박해국 10위안에 들어가고 최근 심해지고 있다고 한다. 이슬람, 힌두교 등을 국교로 두고 있거나, 공산국가 등은 자국민중 ㅅ.학을 하고, 정식 인가를 받은 사람만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외국인이 ㅈ도하는 것은 엄격히 금하고 있고, 인.도.는 위반할 경우 중형에 처해진다고 한다. 

 

현장에 6명의 학생과 온라인으로 여러명이 줌으로 강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00ㅅ학대학교 총장님이 강의하시고, 제이콥선생님은 통역을 하는 과목을 강의하고 계셨다.

쉬는 시간에 선생님과 다과를 나눈후 저녁에 다시 식사를 함께 하며 교제를 이어 가기로 하고, 우리는 나왔다.

 

배선생님은 이곳을 올때도 좀 떨어진 곳에 내려서 걸어오고, 이곳을 나와 차를 탈때도 좀 걸어서 차를 탔다.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이곳 장소가 노출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러시는 것 같았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다시 제이콥 선생님을 만나 제이콥선생님과 현지 선생님들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대화 과정에 배선생님의 제이콥선생님에 대한 깊은 존경심이 느껴졌다. 

두분은 바.라.나.시에서 함께 사역을 하다가, 몇 년전 제이콥선생님은 이곳으로 오셨다고 한다.

대화를 하면서 그분의 성품과 인품이 내게도 느껴져, 어떻게 이 인.도.라는 나라를 섬기고 있는지가 짐작이 되고, 인.도.땅에 헌신한 삶이 얼굴에 그대로 녹아 있는듯 느껴졌다.

식사하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감동이 있었지만, 그날 그날 메모하지 못해 잊혀져 글로 담지 못해 아쉽다.

몇 년전 바라.나시를 나올 때 제이콥선생님이 그곳에서 쫓겨나는 상황이었는데, 오랫동안 선한 삶과 섬김으로 인해 경찰서에서 정중히 떠날것을 요청했다는 이야기가 기억이 남아 있다.

(어떤 선생님의 안타까운 사연은 삭제ㅜㅜ)

제이콥선생님과 헤어지고 호텔 도착무렵 좀 떨어진 곳에 내려 걸으며 호텔 주변을 들러 보았다.

거리와 경계를 가늠하기 어렵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한밤에 골목길 곳곳에서 제사를 지내는 모습은 흔한 풍경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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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 3일차-1달러 소란)

오늘은 11시즈음 ㄱ사장님을 만나기로 되어 있어 조금 늦게 일정을 시작하여 혼자 일찍 호텔 주변 이곳 저곳을 들러 보았다.

인.도. 3일차, 혼자 호텔을 나서 뭐라도 찾기라도 하듯 골목 골목을 돌아다니며, 그들의 일상, 그들의 표정과 눈빛을 담으로 애썼다.

외국인이 많아 보이지 않는데, 이런 현지 골목을 혼자 누비며 이곳이 어느 정도 치안수준인지 모르지만, 내가 너무 무모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기도 했다.

그러나, 간간히 길을 묻거나 하면 그들은 친절하고, 적극적으로 알려준다. 어느 나라던지 보통사람들은 다 순하고, 친절하다,

 

호텔앞에 도착할때 볼펜을 파는 10살이 채 안되어 보이는 어린 소녀 둘이 내게 다가왔다. 볼펜 한자루를 사달라 하였다. 20루피(320원) 라고 한다.

수중에 루피가 없어서 1달러를 주며, 잔돈 필요 없다는 말을 영어와 제스처를 하며, 달러를 내미니, 달러와 나를 번갈아 보며 안된다 한다. 루피 20 숫자보다 훨씬 작은 1 숫자가 적힌 돈인데다가, 달러를 처음 보는 눈빛이다.

1달러면 80루피 이상 되는 가치인데, 이 돈을 본적도 없고, 이 가치를 모르니, 받을리 없다.

옆에서 보고 있던, 오토릭샤 기사가 재빨리 내려 아이에게 20루피보다 조금 더 되는 돈을 소녀에게 주고, 1달러를 자기가 가져가려 하자, 이 상황을 보고 있던 호텔 경비 아저씨가 나와서 오토릭샤 기사를 혼내며 아이에게 제대로 돈을 주라고 하며 뭐라 하는 소란이 벌어졌다.

무슨 상황인지를 알지 못하던 아이도 릭샤기사와 경비아저씨의 대화속에 눈치채고 다시 오토릭샤 아저씨에게 받은 돈을 돌려주며, 1달러를 돌려달라고 한다. 하지만, 아저씨는 루피를 조금 더주고 짜증을 내며, 얼른 릭샤를 몰고 자리를 빠져나갔다.

호텔 경비아저씨는 도망가듯 오토릭샤를 몰고가는 기사 뒤통수에 고함을 질렀고, 얼떨떨해 하던 아이들은 내게 인사를 하고 조금 떨어져서 또다른 외국인 호텔 손님을 기다렸다.

우리나라 돈으로 1,300원(1달러) 정도, 차액으로 보면 몇백원을 가지고 벌어진 잠시 동안의 이 상황에서 이곳의 물가와 화폐가치, 노동가치, 생활 수준이 모두 느껴졌다.

여행을 준비하며 인터넷에서 현지에서는 달러가 더 비싼 가치가 있어, 고액권일수록 더 그렇다며, 가급적 환전하지 말고, 달러를 가지고 가는 것이 득이라는 정보를 본적이 있었다.

 

이들에게 예수님도 마찬가지 아닐까?

힌두교 사상과 카스트제도 속에 수천년을 내려온 이 아이에게 아직 복음이 전해졌을리 없으니, 예수님에 대해 들은 적도 없을테고, 들었다 한들, 이들의 세계관에서는 힌두교 신이 3억개(?), 3억마리(?)가 있다고 하니, (소,쥐, 원숭이도 신이라 하니... 단위를 뭐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다), 그중 하나라 생각할 그들이 예수님의 진정한 가치를 알리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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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ㄱ사장님을 만나 델.리 주요 관광지를 들러 보는 일정인데, 배선생님은 내가 혼자 배낭여행이면 경험했을 것들을 충족시켜 주시기 위해 이동을 우버대신 지하철을 타고 이동을 하자 하였다.

이런 세심한 배려는 여행 내내 느낄수 있었다. 다니다 보니, 너무 많은 사람들속에 기형적인 신체를 가진사람들을 간간히 보게 된다. 어떤 것은 수술을 하면 좋을텐데 왜 불편하게 다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들은 기형적인 어떤 신체 부위들도 모두 신성시 여긴다고 한다. 지하철에서 육손이를 가진 사람을 보았는데, 그 경우가 그렇다고 한다.

인.도.를 알아갈수록 미궁에 빠져들고, 21세기를 살아가는 그들의 뿌리깊은 종교관으로 공고해진 세계관에 미개함이 느껴졌다. 이런 표현이 타민족을 비하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다

 

(코로나 공포)

ㄱ사장님은 우리를 이슬람 유적지, 힌두교 사원 등을 안내하면서, 유적지에 대한 설명을 더하여 주셨다. 타지마할 정도크기가 되어 보이는 힌두교 사원에서는 또다른 우상화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주요 관광지 여행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함께 하였다.

ㄱ사장님은 비즈니스 ㅅㄱㅅ 로 이곳에 계신다고 한다. 식품 가공 유통을 하는 사업가의 도움으로 사업장에 소속되어 일을 하며 ㅅㄱ일까지 감당하고 계신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비자 문제도 없고, 자립도 되며, 현지 직원들을 채용하여 자연스레 복.음을 접할수 있도록 하는 것 같았다.

사업장에 소속되어 있고 페이를 받아야 되니,(사업장의 경우 일정 매출이상 되어야 하고, 급여 소득자는 일정한 소득과 우리나라의 4대보험 등이 가입되어야 인정)  회사일도 겸해서 해야 하는데, 회사일이 바쁠때는 영화'극한직업'을 예를 이야기하시며, 내가 닭집을 하러 여기 왔는지, ㅅㄱㅅ인지 정체성이 모호할때가 있다고 우스개로 이야기 할때 한바탕 웃기도 하였다.

 

이자리에서는 코로나 기간동안 인.도.에서 선생님들이 겪은 공포와 극복한 이야기들을 들을수 있었다.

몇 년전 코로나가 전세계 확산이 될 무렵 한인들과 함께 있는 단톡방에서는 '누가 걸렸다' '누가 죽었다'는 댓글이 수시로 올라오고, 우리나라와는 수준이 다른 격리, 밖을 나가면 TV에서 봤던 경찰의 곤봉세례로 한국과는 차원이 다른 공포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어느날 선생님들이 나서서 위험을 무릅쓰고 한인들을 위해 격리된 가정에 도시락을 나누어 주는 일들을 솔선해서 했다는 이야기가 감동이 되었다.

우리는 우리 살기에 급급했지, 선 교지에서 겪은 선생님들의 이런 이야기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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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분 이야기)

3일여 델.리에 있으면서 박선생님, 배선생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개인적인 이야기들까지 듣게 되었다.

배선생님(아내)은 10대때 하나님께서 환상으로 바라.나시를 보여 주셨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는 환상으로 본 그곳이 어딘지 몰랐고, 잊고 지내다가, 20대후반 선생님으로 헌신하면서 이곳에 와보니, 10대때 환상으로 본 그곳이었다고 한다. 늦은 나이까지 홀로 지내다가 현재 남편이 되신 박선생님을 만나 몇 년전 결혼하게 되었다고 한다.

배선생님은 박선생님과의 만남을 룻과 보아스의 만남으로 비유하실때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선생님은 대한항공 정비사로 정년퇴직 하시고, 늦게 ㅅ.학을 하고 선생님으로 헌신하여 배선생님을 만났다고 한다.

언어와 문화에 익숙한 배선생님이 아이들을 위한 교육 문화 사역 등을 하시고, 박선생님은 돕는 역할을 하는 듯 했다.

배선생님은 바.라.나.시에 계신지 20여년이 되어 바라.나시 그곳 한인 사회에서 거의 대모 수준의 존재감으로 느껴졌다.

배선생님의 바.라.나.시에서의 간증 한부분도 은혜로 기억에 남아 있다.

몇 년전에 배선생님이 아이들과 **공부 하는 것을 보고 어떤 사람이 '고발 협박'을 하자, 마을 사람이 나서서 '나를 때리고 배선생을 고발하지 마라' 하였다 한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배선생을 보호하려는 마을 사람의 그 마음은 오랫동안 그들의 삶 속에 깊이 들어가 섬기고, 헌신한 열매라는 생각에 감동이 되었다.

 

아그라에서

(4일차-비가오는 타.지.마.할)

새벽 일찍 호텔을 나섰다.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로 가는 일정이다.

아.그라는 델.리로 부터 동남쪽으로 2시간여 기차를 타고 가야 하는 거리다

기차역주변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사람의 많기와 지저분한 정도는 상상 이상이다.

도착할 무렵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 우의를 사서 입었지만, 흠뻑 젖었다.

타.지.마.할을 보러 왔으니, 바람과 많은 비에 젖어도 이곳은 가고 싶었다.

 

타.지.마.할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TV에서만 보든 그 자태를 드러내었다. 사랑과 그리움으로 지어졌다는 이 웅장한 건축물을 보며 잠시 감상에 젖어 보면 좋을텐데, 바람과 비로 인해 인증샷 몇 개만 남기고 나왔다.

멀지 않은 거리는 대부분 릭샤를 이용했는데, 그때마다 배선생님은 기사와 흥정을 했다. 릭샤기사들이 외국인에게는 바가지를 씌우기 일상이라고 한다. 인.도.에 있는 동안 수차례 경험했다.

 

다음일정은 아.그.라성을 가보는 것이지만, 바람과 비 때문에 추위까지 느껴져 포기하고, 대신 스타벅스를 택했다.

추운 날씨에 커피로 몸을 데우는데는 좋았다. 바라나시에도 스타벅스를 가보았지만 이곳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와 달리 사람이 많지 않다. 이나라 경제수준으로는 이곳에서 커피 마시는 것은 일반인들에게는 일상이 아니다. 1층의 몇 개 테이블외는 텅빈 2층에서 커피로 몸을 데우고, 의자에 누워 잠을 자기도 했다.

두어 시간을 그곳에서 온기를 채운 우리는 이른 저녁을 먹고, 바.라.나.시로 가기 위한 역을 향했다.

 

비는 조금씩 그쳐갔다.

기차역 주변과 플랫폼에는 기차를 타기위한 사람들과 노숙자들이 이곳 저곳에 누워 있어 구분되지 않았다.

점점 이런 풍경들이 익숙해져 갔다.

기차는 1시간 정도 연착이 되어 7시 넘어서야 출발을 하여 다음날 아침 8시경 도착을 한다.

노선을 따라 925km.. 작선거리로는 700km 거리다, 창원에서 출발하면 북한과 중국경계까지 가는 거리이다

우리는 침대가 있는 2A 좌석이다. 좌우측으로 1.2층으로 침대가 있고, 통로를 커텐으로 가리도록 되어 있다.

내 좌석은 2층인데, 키가 큰 나에게는 겨우 누울수 있는 공간이 좁아 발이 복도로 삐져 나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간간이 발을 스치는 것이 느껴져 미안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여 무릅을 접어 보지만, 나도 모르게 자꾸 삐져 나간다.

여러가지로 불편하고 힘들지만, 한국에서 경험할 수 없는 이런 기차여행은 오히려 낭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베낭을 날개죽지부터 베게로 하여 누워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사람들의 소리에 깨어 내려오니, 두분선생님은 벌써 깨어 앉아 계셨다.

차창으로 보이는 인.도.의 시골 풍경은 한국과 달라 보이지 않지만, 마을과 건물이 있는 곳은 전혀 다른 풍경이다.

찢어진 천막으로 겨우 나무를 대어 세워 그곳에서 잠을 자는 가족들….그것도 없이 자고 있는 노숙인들, 그들은 카스트계급에도 들지 못하는 불가촉천민이다.

침대를 접어 의자로 만들어 앉아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다보니, 한국말의 대화를 듣고 이곳 저곳에서 자고 있던 한국 여행객들이 우리 있는 곳으로 왔다.

대부분이 타.지.마.할을 구경하고, 아그.라에서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를 탄 베낭 여행객들이다.

배선생님의 바.라.나.시 이야기에 모두 귀를 기울이고, 이것저것 질문을 해댄다. 

그중에는 현지 맛집으로 적어왔던 몇몇 리스트를 배선생은 지우라고 하며,

청결문제, 좀더 심한 것들의 가능성을 이야기해 주었다. 덧붙여 바.라.나.시 여행하면서 몇가지 유의사항을 이야기 해주셨다

 

오래 이곳에서 사시다 보니, 바.라.나.시에서 한국인이 여행중 문제가 생기면 영사관에서 배선생 전화를 알려주며 찾아 안내받으라 한다고 한다. 공무원도 아니고, 월급은 주지 않으면서한국인이 이곳에서 격었던 어려움을 도와준 사례들도 듣게 되었다

 

(기찻길옆 화장실)

기차를 달리다 보니 자주 보이는 풍경들이 물병을 들고 마을을 오고 가는 사람들이다.

아침에 일어나 기찻길 주변이나 숲에서 큰일을 보고 뒷처리를 왼손으로 하고, 물병의 물로 왼손을 씻고 간다고 한다.

심지어 너무나 태연하게 기차길 방향으로 엉덩이를 노출한채 일을 보고 있는 형님(?)들도 가끔 볼수 있었다.

인.도.에서는 힌두교 사상이 소똥은 신성시하지만, 사람의 똥은 부정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집안에 화장실을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은 많이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화장실이 있는 집이 50% 수준이라고 한다.

가끔 유튜브 등에서 보면 길거리에서 그일을 보고 있는 풍경은 이런 이유다.

여성들이 가장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그나마 기찻역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기차에 올라타 기차 화장실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자칫 출발 시간에 내리지 못해 먼길을 돌아오는 곤란을 겪기도 한다고 한다.    

우리는 한국인 여행객들과 역에서 함께 인증샷을 남기고 헤어졌다.

배선생님은 이중 몇몇분은 내가 한국으로 돌아간 후 바.라.나.시에서 우연히 만났다고 톡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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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한재동 2024-10-14 21:52:16
여름여행을 선교여행으로 다녀오시니, 참 귀한 발걸음하셨습니다. 사진과 현장의 이야기를 담아주시니 더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장로님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고자하시는 귀한 일을 행하시는 축복의 통로되길 기도합니다. 귀한 나눔 감사해요^^
이창우 2024-10-19 20:02:47
감사합니다.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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