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행기2
2024-10-13
(인*도 여행기1에 이어 계속)
바.라.나.시-힌두교의 성지, 가장 인.도.스러운 땅
(바.라.나.시에서-어느 선생님 부부의 식사 초대)
※여기부터는 일자별이아닌 테마별이야기입니다
바.라.나.시에 도착하자마자, 박선생님 댁에서 대충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전날 비를 맞고 모두 젖은채 12시간 여를 기차를 타고 왔기때문에 찝집했다. 대충 씻고 옷을 갈아 입은 우리는 식사를 초대한 어느 선생님댁을 방문하였다.
4층 정도의 작은 아파트에 거주하고 계셨다
사모님이 정성스레 점심 식사를 차려 두셨다. 너무 감사했다.
이분들은 전문인으로 파송되어 계셨고, ‘ㄱ선생님’으로 소개 하셨고, 현재 바라.나.시에 있는 ㅎㄷ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계셨다.
이후 이분들은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날 다시 저녁식사 초대를 하여 두번의 식사교제를 하게 되었다. 여행중 계속 감사한일이 많다.
처음 보는 사람일뿐인데, 한국인이고, 단지 같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는데, 이런 호의를 받는 것 자체가 너무 죄송하고 감사했다.
그리고, 델.리로부터 함께 동행한 박,배선생님은 몇일 되지 않았지만, 벌써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친밀함이 느껴졌다. 나와 배선생님부부의 대화를 듣던 그분들은 이번이 처음 만난 사이라 하니, 놀라 하셨다.
이날 ㄱ선생님부부와 식사교제에서 박선생님은 '장로님이 우리에게 선물처럼 오셨다'는 말을 하여 당황하고 놀랐다.
여행내내 두분에게 너무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무슨 말로 그분들을 위로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수준으로 그분들을 위로를 줄만한 위인이 되지 않는데, 오히려 내가 너무 많은 위로와 격려, 배려를 받았는데….그런 표현이 아무리 생각해도 과했다.
그런데, 그분들은 그분들 대로 함께 여행하며, 대화하면서 많은 위로를 얻었다고 하였다.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헤어지는 바.라나.시 공항에서 손편지에 그 마음을 담아 주시기까지 하셨다.
ㄱ선생님 부부의 두차례 식사 초대에서 한국ㄱ회의 ㅅㄱ방향성과 사.역, 그리고, 인.도의 힌.두.교 세계관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인.도.로 오기전 당회에서 '가포ㄱㅎ의 ㅅㄱ방향 변화'에 PT를 두차례 한적이 있었다. 3개월전 초안으로 발표하고, 세계ㅅㄱ위원회 정책회의를 거치고, 인.도.를 오기전에 최종 보고를 하고 왔다.
그안에 주요 내용중 하나가 목.ㅎ.자가현지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있고, 그것이 비자문제로 발생하고 있으며, 향후 비즈니스 ㅅㄱ ㅅ, 전문인 ㅅㄱ로 가야 한다는 것인데, 마치 PT 내용을 확증이라도 하듯 델리에서는 '비즈니스사장님'을또 이곳에서 '전문인 선생님'을 만나게 해 주셨고, 대화 과정에서 그러한 변화의 방향에 대해 흐름임을 강조해 주셨다.
(바.라.나.시 - 사역 현장 속으로)
바.라.나.시에서는 본격적으로 배선생님은 나를 현장으로데리고 다니셨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나의 바.라.나.시와 인.도.에 대한 문화적인 관심을 충족시켜 주시기 위하여 이곳 저곳을 구경시켜 주시려 무척 애를 쓰셨다.
바.라.나.시 첫날은 현지 ㄱㅎ여.ㅅ.도들 모임에 참석을 하였다, 8명이 참석하여 ㅊ.양과 나눔 ㄱ.도.회를 하는 자리였다.
중간 중간에 배선생님의 통역으로 어떤 ㄱ.도요청을 하는지 등을 듣게 되었다.
우시기도 하고, 몸을 바짝 낮추어 엎드려 ㄱ도하는 모습들이 너무 간절해 보였다.
나는 그분들의 ㄱ.도 모습들을 사진에 담기도 하면서, 작은 선물이 될까하여 개인별로 사진을 찍어 폰의 AI 기능으로 수채화로 변환을 하여 보여드렸드니, 다들 너무 좋아하셨다. 배선생님께서 그것을 사진으로 인화하여 선물하면 좋겠다고 하여 보내드렸다.
한국에 도착한후 사진으로 인화된 수채화 사진을 들고 찍은 사진을 내게 보내오셨다.
다음날은 심방을 따라다녔다.
보통사람들의 가정집을 볼수 있는 기회가 기대되었다.
전날 모임에서 뵈었던 분도 계시고, 처음 뵙는 분도 계셨다.
그러나, 막상 심방을 해보니, 경제적으로 보통 사람들일거라 생각했던 그들의 생활 수준이 너무 열악했다.
동네의 집들이 마치 작은 레고를 붙여 놓듯 다닥 다닥 붙어 있고, 그곳에 작은 공간을 마련하여 세대를 이루고 있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방문을 한곳은 출산하여 애를 낳은지 12일 된 집이었다.
정전인지 불이 들어오지 않는 컴컴한 동굴 같은 곳을 들어가니, 모기장을 친 침대에 태어난지 몇일 되지 않은 아기가 눈을 감은채 평안히 잠들어 있었고, 그 옆에 산모가 우리를 환영해주었다.
집 벽은 벽지도 페인트 칠도 되지 않았을뿐 아니라, 벽돌위에 시멘트로 마감 미장도 되지 않은 채 벽돌만 위태하게 쌓아 올려 뼈대가 드러나 보이듯 하나하나가 다 보이는 곳에 …. 그곳에 갓 태어난 아기가 아직은 자기가 살아갈 세상을 모른채 누워 있었다.
잠시 대화를 나눈후 선생님께서 나에게 아기를 위한 ㄱ도를 요청하셨다.
아기의 이름은 '루야'라고 한다. 할.ㄹ.루.야의 ‘루야’를 땄다고 한다.
너무나 조심스레 아기의 머리에 손을 얹고 ㄱ도하려니 막상 ㄱ도가 쉬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하.나.님 주신 소중한 새 생명의 축복과 축하보다는, 아기 주변으로 보이는 열악한 환경을 보는 인간적인 시각이 내 ㄱ도를 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몇초동안 아무말도 못한 채 있다가 나는 민.수.기(6:24절) 축복기도를 '루야'이름을 붙여 ㄱ도하였다. 그리고, 아기의 건강과 미래를 위해간절히 축복하는 ㄱ도를 한것 같은데, 내용은 생각나지 않는다. 성.경구절도 앞뒤가 바뀐채 ㄱ도 한듯 하다,늘 헷갈리는 구절이기도 하다
선생님은 그 가정에서 자매의 성경 필사를 확인하고, 말씀으로 격려하고 함께 나왔다.
나오면서 보니 제대로 된 세간살이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꼭 필요한 것만 어둠진 곳에 겨우 몇 개 있는 정도로 보여졌다.
다음 방문한 집은 대충 2.5평 정도 되어 보일까 … 일반 아파트의 작은방보다 더 작아 보였다. 그공간에서 방, 거실, 부엌 기능을 다 하며 4가족이 살고 있는 집이다. 출입구는 샤터 문이다.
이집의 자매가 난소에 혹이 있고, 자궁이 좋지 않다고 하며, 수술비도 없고, 의료시설이나, 의사들의 의료 기술이 좋지 않아 기도를 통해 낫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또 나에게 ㄱ도 요청을 하여 ㄱ도하였다.
말.라.기(4:2절) 말씀으로 ㄱ도하였다. 여.호.와를 간절히 사모하는 이 자매에게 치료의 광선을 발하셔서 외양간의 송아지처럼 뛰놀듯 낫기를….
이후 배선생님은 심방하는 가정마다 일일이 다 ㄱ도를 요청하셨다.
배선생님 대신 다른 외국인의 ㄱ도가 응답에 도움이 될까? 아님 이분들에게 작은 추억이라도 될까? 꼭 기도 응답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간절함이 내게 더해지는 심방 ㄱ도였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가서도 ㄱ도해야 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ㄱ도하고 있다.
그렇게 몇몇 가정을 심방하며, ㄱ도하고 다닐때 어느 작은 골목에서 우연히 우리를 지켜보는 자매를 만났다. 배선생님은 좀 섞여 있기는 하나 이슬람과 힌두교인들이 나누어 사는 동네라 만난곳은 이슬람 지역이라 ‘이슬람’ 일거라 .말씀하고는 그 자매들에게 다가가 대화를 하셨다. 말을 한참 나누더니, 집으로 가자는 손짓을 보내와 그들을 따라 집으로 갔다.
이 자매들은 다른 지역에서 이사를 왔는데, 크.리.스.챤이고, 인근에 ㄱㅎ가 없어 고민중이었다 한다. 가정을 방문한 배선생님은 성.경.책을 내 달라하여 이.사.야서 어느 구절을 읽게 하며 축복하였다. 그리고, 내게 기도 요청을 하여 ㄱ도하였다. 무슨 내용으로 ㄱ도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선생님은 나오는 길에 자매를 꼭 안고 ㄱ도하였다. 그 모습은 마치 배선생님이 바.라.나.시를 안고 ㄱ도하는듯 하였고, 악한 영이 지배하는 바.라.나.시에서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성도들을 안고 ㄱ도하듯 간절하게 비쳐졌다. 온갖 잡신과 악한 영이 지배하는 이땅에서 믿는 이를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ㄱ도후 선생님은 자매의 손을 이끌고 인근에 있는 우리가 방문한 성도들을 소개시키며 주일 ㄱ회에 함께 올 것을 당부하였다.
그리고, 그자매들은 주일 ㅇ배에 참석하였다.
몇몇 가정을 돌고, 좀 더 떨어진 곳에 있는 가정을 방문하였다. 가면서 전날 ㄱ도모임에 참석하였던 아주머니 댁이며, 그 가정에 임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내게 이야기해주었다. 보니, 전날 울먹이며 몸을 바짝 낮추어 기.도하던 그 아주머니였다.
배선생님은 이 가정에서 동네 아이들을 모아 ㅅㄱ필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배선생님에게는 동역자 같은 분들인 것 같았다.
이집은 그래도 좀 커 보였다. 세간살이도 좀 더 갖추고 있고, 그렇다고 우리나라 어느 중산층의 수준의 기대와는 한참 차이가 난다.
여전히 모든 것이 열악한 집안이다. 다만, 지금까지 방문한 가정보다는 조금 나아 보이고, 여유가 되는 공간은 모두 세를 내어주어 월세도 받는 정도로 좀 더 집이 크다는 것이다.
집에 사는 모든 아이들이 모여 들었다. 그집에 막내 아이가 내게 환영의 꽃다발을 목에 걸어주었다.
그리고, 아주머니에게 간.증을 직접 듣고 싶다고 요청을 하니 기꺼이 해 주셨다. 간.증 내용은 작은 아이가 나면서 부터 걷지를 못했는데 4살때 ㄱ도를 통해 걷게 되었다는 것과 큰 아이는 말을 잘못했는데, 나중에 병원에 가보니 귀에 뭔가가 막혀 있었고...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ㄱ도하면서 ..어느날 자고 일어났더니 큰아들의 귀에서 돌이 빠져 나왔다고 한다. 그때부터 잘 듣게 되었고, 말도 더 잘하게 되었다는데, 아직 약간 말하는 것이 어눌하였다.
그리고, 재물의 축복도 주셔서 겨우 1층에 살던 집이 이제 3층까지 올려 세를 받기까지 한다고 한다.
한 아이가 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데, 배선생님이야기가 그아이는 14살인데, 신랑은 30살이고, 이미 시집을 가서 지금 임신중이라는 말에 다소 충격을 받았다. 인.도.도 조혼제도가 아직 여전히 남아있고, 가난한 집안일수록 우리나라 나이로 초등학교 졸업하는 나이가 되면 시집을 간다고 한다. 그래야 지참금 ‘다우리’가 적다고 한다.
인.도.는 여성이 시집을 갈 때 지참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하는데, “다우리” (dowry)고 하는데, 적지 않은 금액이라 한다. 그래서 딸을 나으면 초상집이 된다고 하는데, 딸 둘을 낳으면 집안이 망하는 수준이라 예전에는 딸을 낳으면 버리기도 했다고 하니, 지참금에 대한 부담이 어느정도 수준인지 짐작이 된다.
그 14살 아이, 아주머니(사진속 침대 옆 앉은 아이)….마음이 아팠다.
남편 되시는 분이 배선생님에게 옥상을 보여 주며 이곳에 ㄱㅎ를 지으면 좋겠다고 하시며, 박선생님 향해 함께 직접 짓자고 하신다.
(바.라.나.시-풍경들)
이곳 저곳을 다닐때 주로 릭샤(일명 '툭툭이')를 타고 다녔다.
자전거로 된 것 부터, 일체형으로 된 릭샤 등 다양하였다.
릭샤는 대표적인 인.도., 특히, 바.라.나.시의 교통수단이다. 어느 거리를 가나 릭샤와 자가용이 엉긴채 경적소리를 울리는 것은 이미 익숙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는 잘 나지 않는듯 보였다. 그리고, 왠만한 접촉사고는 서로 한마디씩 하고 그냥 간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경적소리에도 그들만의 언어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적소리는 ‘비켜!’’조심해!’라는 다소 공격성이 있는 언어가 담긴 경우가 많지만, 이곳의 경적소리는 '나 여기 가고 있어'라는 뜻이라 한다. 그러니, 아무도 경적소리에 짜증을 내거나, 얼굴 붉히는 이가 없다.
바.라.나.시 2일차 아침일찍에는 갠지즈강을 혼자 가보았다.
우버가 갈수 있는 곳까지 간다음에 가트가 있는 곳까지 걸어 갔다.
인.도.의 인구는 이미 중국의 인구를 추월했다고 한다. 중국을 여행하면서도 인구가 많다는 것은 알지만, 그렇게 체감되지는 않았다. 물론 땅덩어리가 넓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도.도 땅덩어리가 결코 작지는 않다.
그런데, 인구가 많은 정도의 체감이 중국과 다르다.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을 인.도.에 있는 내내 체감했다.
우버에서 내려 가트[1]로 가는 길에 갠지스강에 다가갈수록 전국에서 모여든 순례객과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비집고 가야 하는 정도로 많았다. 사두들과 눈에 초점을 잃은 사람들, 이상한 복장의 사람들 등 사람이 많은 정도가긴장이 되는 정도를 넘어서 약간 두려움이 들 정도로 너무 많았다.
갠지즈강은 상류에서 쏟아진 폭우로 강뚝까지 만수가 되어 TV에서 보던 그런 갠지즈강의 모습이나, 배를 타고 나가서 가트를 바라보는 풍경은 볼수 없었다.
다만, 불어난 곳에서도 몸을 담그고 의식을 치르는 그 모습들이 성스러운 느낌보다는 불편한 느낌이 앞섰다. 몸을 담그는 강 옆에 보이는 각종 오물들이 그렇게 느낄수 밖에 없었다.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소들이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소똥도 당연히 보게 자주 된다. 드러 누워 있거나, 돌아다니는 개, 소, 염소들은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쓰레기장을 뒤진다. 생각했던것과 달리 소들의 신세가 가히 神다워 보이지 않았다.
길가에는 일명 ‘사두’라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기도 하고, 구걸인지, 적선인지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늘어져 있다.
강가에 모인 인파로부터 빠져나가는 것이 문제다. 많은 사람들을 헤치고 나오는 길도 만만치가 않다. 구글맵을 따라 가지만, 어디로 가야 우버가 접근 가능한지를 분간하기 어렵다.
좀 걸어나오자 델리처럼 또 어린 한 소녀가 나를 따라오며 볼펜을 사달라고 계속 붙어 다녔다. 몇일전 봤던 그 아이들이 생각이 나서 사줄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 너무 많은 사람들 속에서 지갑을 꺼내는 것이 좀 위험할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은 있었지만, 돈이 없다고 하자, 그 아이는 계속 내 옷자락을 끌며 "밀크!, 밀크!, 노머니! 노머니!"라는 말을 해댔다. 순간 이 아이에 대해 긍휼한 마음이 섬찟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인.도.를 오기전 유튜브를 통해 본 영상이 생각 났다. 외국인을 상대로 호의를 베푸는 것처럼, 혹은, 우리나라의 맛보기 음식처럼 공짜 짜이나, 라시, 밀크에 마약을 타서 마시게 하고, 쓰러지면 지갑을 빼앗고 간다는 그런 내용의 영상이었다.
내 옷깃을 당기는 아이를 뿌리치고 서둘러 인파속을 빠져나와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런 수많은 인파는 갠지스강 주변에서는 흔한 현상이었다.
*푸자
어느 저녁에는 푸자 의식을 보러 갔다. 푸자는 매일 저녁 갠지즈강가에서 행하는 힌두교의 중요한 제사의식의 일종이다. 그것을 보러 전국에서 관광객, 모여들어 장사진을 이룬다. 불어난 갠지즈강 물때문에 제대로 된 공간에서 하지 못하다 보니, 수많은 인파로 인해 보는 것 조차도 일부만 겨우 보는 정도밖에 되지 못했다. 박선생님은 나에게 더 좋은 공간을 확보하여 주려 무던 애를 쓰셨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니 그들은 불을 피워 올리고, 사제들은 일련의 동작으로 푸자를 이끌어갔다. 강가에 자리한 인.도.사람들은 그 풍경을 바라보며 제사에 동참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멀찌감치서 겨우 조금 보고 우리는 빠져나왔다.
*화장터
하루는 갠지즈강변에서 이루어지는 화장터를 갔다.
갠지즈강변 많은 곳들이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을 지나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가 가는 화장터도 마찬가지였다.
좁은 골목길을 미로처럼 한참을 지나서야 겨우 화장터가 가까움을 느낄수 있는 풍경들을 만날수 있었다.
TV에서 보던 장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관도 없이 천으로 싸맨 시신을 상여라 하기에는 너무 간소한 ‘들것’ 같은 곳에 겨우 얹혀 몇사람이 어깨에 짊어지고 좁은 골목을 무슨 소리를 외치며 우리 옆을 지나갔다.
화장터에 거의 다 왔을 즈음에 낯선 한사내가 나에게 다가왔다. 화장터에 대한 소개와 사진은 절대 못찍는다며 주의를 주는 친절을 베풀어주었다. 사진을 못찍는다는 의미가 아마 종교적인 이유라 생각을 하며, 알았다고 하였다.
화장터는 단상으로 된 곳에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어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우리를 안내해준 그 사내는 위에까지 올라가 사진을 찍을수 있게 해주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돈을 내야 한다고 한다. 실망스럽게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고 장삿속이다. 인당 500루피(8000원) 정도를 요구했다. 이곳까지 와서 현장을 볼수 없다는 것이 아쉬워 사내의 흥정에 “OK” 하고 일단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계단을 걸어 올라서자 장작의 열기가 얼굴에 확 와 닿았다.
어림짐작으로 200여평 되어 보이는 단상 같은 가트위 군데 군데서 여러사람들이 장작을 움직이며 화장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사내는 사진을 찍어도 좋다고 친절하게 안내를 했다. 몇컷 찍었지만, 오래 있기에는 더운 날씨에 장작 열기가 너무 강하고, 궁금하기는 하여 올라오기는 했지만, 예상하지 못한 보고 싶지 않은 장면까지(장작사이로 삐져 나와 타고 있는 시체 일부) 눈에 들어오자 오래 있지 못하고 내려왔다.
내려오자 그 사내는 나에게 다가와 약속한 돈을 요구했다. 배선생님에게 이야기를 하니, 주지 않아도 된다고 하며, 나를 앞장 세우고, 그 사내와 실랑이를 하며 나왔다. 배선생과 협상이 잘 안되었는지, 나에게 와서 돈을 요구하여 ‘박선생이 나의 보스’라며 그분과 이야기하라 했다. 계속 따라오자 옆에 있던 박선생님이 100루피를(1,600원) 주자, 더 요구를 하여 배선생님이 경찰을 부르겠다고 하자, 그제서야 돌아갔다.
많은 곳에서 이런 흥정행위와 금품요구까지 있는데, 화장터와 아무런 권리가 없는 사람들로 거절하면 된다는 것을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되었다
갠지즈강변에는 여러 화장터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죽음이 일상이다. 힌두교 신자들은 죽을 때 되면 이곳으로 온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화장되어 갠지즈강에 뿌려지는 것이 평생소원이다. 매일 매시간 시신들이 좁은 골목길을 거쳐 화장터로 향하고, 그 골목길에서 아이들은 천진하게 뛰논다. 장작을 충분히 준비할수 있는 돈이 없으면 대부분 다 타지 않은 시신을 그대로 갠지즈강에 버린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강에서 아이들이 수영을 하고, 사람들은 성수에 몸을 담그듯 하는 의식을 매일 치룬다. 이방인의 눈에는 충격적일 수 밖에 없다.
흔히 이곳을 삶과 죽음이 함께 존재하는 곳이라 하고, 죽음이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 하며, 힌두교의 뿌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종교인들은 종교적, 철학적 의미를 담아 이곳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그러나,그들의 그 시작과 끝이라는 이곳 갠지즈강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종교적 행위와풍습이 단지 문화적인 차이나, 너무 낯설다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이질감이 큰 것은 종교를 떠나 죽음이라는 숭고함과 엄숙함, 어느 인생의 유허나 흔적인 주검을 처리하는 과정이(완전 화장이 되던 안되던 갠지즈강에 뿌려 버리는)너무 불편하고, 기이하게느껴 지기때문이다.
*빨랫터
빨래 공장 같은 빨래터가 있었다. 갠지즈 강물을 끌어와 빨래를 하는 곳이다. 빨래하는 이들은 빨래하는 자티[2]다. 아버지가 빨래하는 사람이면, 아들도 빨래하는 사람이고 그 아들도 그런 카스트제도의 신분이 더 세분화되어 생겨난 것이라 한다. 자티는 대부분 하층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바라나시 호텔의 침대시트는 대부분 이곳에서 빨래를 한다고 한다. 갠지즈강의 누런 강물에 세탁을 하니, 하얗게 될리가 없다. 내가 묵고 있는 시트가 왜 누런지 이해가 되었다.
갠지즈강은 곳곳에 있는 화장터에서 뿌려지는 사체들과 각종 오물이 섞인 물이다.
침대시트가 이곳에서 이렇게 세탁이 된다고 생각을 하니, 내가 묶고 있는 호텔의 시트가 영찝찝하게 느껴졌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사두
바라나시를 다니다 보면 주황색 옷 같은 것을 걸친 사두들을 쉽게 보는데, 갠지즈강 주변으로 갈수록 더 많이 볼수 있었다. 이들은 힌두교의 구도자들로, 세속적인 삶을 버리고 고행을 통해 해탈하기 위해 수련하는 이들이라 한다. 몸은 먼지와 흙으로 덮여 있었고, 머리카락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쩌다, 혹은 TV를 통해 한번 볼까 하는 道人(도인) 이미지와 비슷한데, 이곳에는 너무 많다. 순례자들은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동전을 건넸다.
사두와는 또 다른 자이나교는 나체로 지낸다 하는데, 길에서는 기저귀 같은 것을 차고 다니는 것을 가끔 볼수 있었다. 이들은 비소유, 불살생을 이유로 옷을 입지 않는다 한다.
이런 신기하고, 기이한 것을 훤히 볼수 있다는 점에서는 바.라.나.시는 재미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평생 고생을 하고 죽었을 때 진리가 아닌 것을 알때는 이미 늦었고, 황당해 하고, 당황해 할 그들의 모습이 불쌍히 보였다. 진리는 너무 가까이 있는데…
*카스트와 힌두교, 세계관
인.도., 특히 바.라.나.시 여행을 하면서 안볼 수 없고, 따로 생각할수 없는 것이 힌두교와 카스트 제도였다. 눈에 자주 보이는 것이 힌두신들이고, 계속 보게 되는 것이 아직 남아있는 신분의 차별, 카스트제도의 가장 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신도 버렸다는 불가촉 천민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왜 저리 살까?’ ‘21세기에 왜 저런 신을 신이라 섬길까?”, 교육의 기회도 없는 사람들은 그럴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른 바 지식인, 좀 배웠다는 사람들이 원숭이 쥐에 절하고, 갠지즈강에 몸을 담그고 .. 그래야 해탈하고, 좋은 것으로 환생한다고 생각하는 그들.. 조금만 생각해보면 아니라는 것을 알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텐데 하면서도, 생각하면 수천년 그들속에 뿌리내린 힌두교 세계관에 그들의 상식이 되었다는 생각에 절망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카스트 제도[3]는 헌법으로는 폐지되었지만, 아직 뿌리깊이 남아있다고 한다. 출생에 따라 계급이 결정되고, 사회적 이동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하는 제도이고, 불평등과 빈부격차를 더 심하시키는 이런 원시적인 계급 구조가 내가 본 사람들의 미래를 더 어둡게 만드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철수카페
바.라.나.시를 여행하거나, 여행했던 사람 중 철수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인.도. 아저씨로 갠지즈강 근처에서 한국 식당과 갠지스강 배 관광사업을 하는데, 한국 여러 음식을 잘 만들고, 친절하고, 정직하게 장사를 하는 착한 사람으로 소문이 나서한국인 여행객들에게는 필수 코스다. 배선생님 이야기로는 철수라는 이름도 어느 장로님이 지어주었고, 이 가게의 각종 메뉴판은 배선생님이 적어 주셨다고 한다.
한국인 유튜버에 의해서도 철수는 많이 소개되어 있어 나도 오기전 본적이 있다.
필수 코스이니, 이곳에 들러서 식사를 하고, 철수씨는 마침 들런 배선생에게 여러가지 자문과 조언을 구하는 대화를 나누며 나왔다.
(귀국일)
주.일이다. 인.도 온지 8일째, 그리고, 인.도.에서 마지막날이다.
주.일 ㅇ배는 9시 아동부 , 10:30에 대ㅇㅂ가 있다.
몇일전 배선생님이 ㅇㅂ시간에 나의 간증을 요청하여 간단히 준비하여 미리 보내드렸다.
ㅇ배에 맞추어 박선생님이 호텔로 나를 데리러 오기로 되어 있었지만, 아동부 ㅇ배가 궁금하여 짐을 챙겨 일찍 호텔을 나섰다. 조금 멀지만 걸으면서, 거리 구경도 할 겸 베낭을 메고 걸어갔다. 더운 날씨에 아침햇살이 걸음 앞에서 비추어 땀도 나고, 덥게 느껴졌다.
ㄱㅎ에 도착하여 아동부 ㅇ배를 참관하였다. 영상.설ㄱ와 함께 아이들의 ㅊ양과 성ㄱ암.송 등이 이루어졌다
대.ㅇ배 시간에 ㅅ도들을 만나게 되었다. 어떤분은 수요일 이곳에서, 심방때 가정에서, 그리고, 오늘 세번을 뵙는 분들도 있어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분들처럼 친숙함이 느껴 졌다.
ㅁㅅ님의 말씀이 끝나고, 나의 간.증시간이다.
미리 준비한 간.증.문은 배선생님께서 번역을 하여, 사모님께 전달되어 있었다.
내가 먼저 이야기하고, 사모님이 통역을 하였다. 서로 상대언어를 모르니, 어느 부분까지라는 약속이 사전에 약속이 필요한데, 간간이 사모님 들고계신 번역본을 보니 약속 없이도 서로 눈치껏 잘 맞추어 나갔다.
간.증 말미에 시.편46편으로 이분들을 위로하는 메시지와 인도의 느낌을담았다.
“저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남쪽 지방에 있는 작은 ㄱㅎ에서 왔습니다.
한국의 명절 추석연휴를 맞아 여행을 고민하던중, 인.도. 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인.도.는 처음 방문입니다.
처음 방문한 인.도.의 첫 인상은 여러가지로 놀랄만했습니다.
수많은 릭샤와 차량, 그기에서 울어대는 경적소리, 어딜가도 너무 많은 사람들, 어둡고 짙게 드리워진 가난, 진리를 잃어버린 눈동자들.... 복잡해 보이는 인.도.의 사회구조와 시스템이 돌아가는 것을 짧은 시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웠습니다
마치 자주 경험한 사거리 도로에서 차량.릭샤.사람들이 복잡하게 얽혀 제생각에는 못움직일것 같은 거리가 경적소리 울리며 어떻게든 조금씩 움직여 돌아가듯이, 질서나 규칙이 없어 보이지만, 이땅은 억지로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것 같습니다.
나면서 부터 잘못된 세계관에 견고해진 사람들의 가치관에 거짓영이 뿌리내려 있는 이곳에 소망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본 인.도.의 많은 사람들, 짧은 기간 제가 만난 사람들, 모두가 저의 눈으로 볼때 어려운 환경과 사회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간적인 눈으로 볼때 그 미래가 밝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 눈에는 여러분은 가난과도 싸우고 있지만, 영적인 전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두가지 싸움 모두 이땅에서는 외롭고 힘든 싸움입니다.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ㅇㅅ이름만이 참 소망이요 길입니다.
(중간 생략)
저는 오늘 한국으로 돌아 갑니다. 여러분과 이땅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
ㅇ배후 간단한 다과시간을 갖고 아쉬운 작별인사를 했다.
ㅁㅅ님은 택시를 타는 곳까지 나와 배웅을 해주었다.
두선생님은 나와 함께 바.라.나.시 공항까지 동행해 주셨다.
공항 입구에서 작별 인사를 해야 했다. 인.도. 공항은 티켓과 여권이 없으면 들어가지를 못한다.
박선생님을 안아드리고, 배선생님은 악수로 인사를 했다.
두분은 나에게 과일 도시락과 손편지가 든 봉투를 주셨다. 점심 식사를 못하고 비행기를 타야 하는 빠듯한 일정이다 보니, 과일 도시락을 준비 해주신듯 하다.
준비해온 여비중 남은 것을 다 드리고 왔다. 그분들의 수고에 비하면 많지 않은 금액이다.
출국장 안에서 대기하며 준비해주신 과일을 먹으며 편지를 읽을 때 눈가가 뜨거워졌다.
'받기만 하고, 불편만 끼친 것 같은데, ….'
바.라.나.시는 한국인 관광객은 많이 오고, 불자들의 성지순례 등으로 오지만, ㅅ교팀은 많이 오기 힘든 곳이라서 그럴까?
여행기간 내내 함께 해 주신 것과 여러가지 마음써 주신 것, 사역지에 함께 동행토록 하고, 나의 인.도.에 대한 관심사를 충족시키기 위해 몸으로 애쓰시는 등 많은 빚진 마음이 있는데, 도시락과 손편지까지 두분의 세심한 배려에 너무 감사했다.
'그분들 처음 보는 분들인데, 내가 무엇이관대…'계속 드는 마음이다
마음은 이곳에 일주일 정도 더 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돌아가야 하는 길이 내내 아쉬웠다.
나는 바.라.나.시에서 델.리로 가는 국내선을 타고, 델.리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인천으로 도착 돌아왔다.
돌아오는 여정에 많은 생각들이 있었지만, 일부만 정리 될뿐 쉽지 않다.
하.나.님의 성품은 거룩한 분, 깨끗하며, 순결하다.
마귀는 반대다. 더럽고, 지저분하며, 음란하며, 무질서하다. 성경을 통해 아는 사실이다.
힌두 신들이 그렇다. 온갖 잡신들이 지배하는 이 땅이 그러했다.
악한 영이 지배하는 땅, 억압받는 많은 이들, 거짓 진리와 세계관에 진리를 잃어버린 사람들, 그곳에서 예수님을 믿는 소수, 그들의 삶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섬기며 영적 전쟁을 치르는 선.교.사님들…
수년내 다시 가야겠다.
그리고, 이땅과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겠다.
[1] "가트"는 강변에 위치한 계단식 구조물로, 주로 종교 의식과 일상 생활의 중심지로 사용되는 곳으로 갠지즈 강변으로 여러 유명한 가트가 있다. 이곳에서 시체 화장을 하는 곳도 있고, 매일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목욕을 하거나 기도를 드리며, 종교적 의식을 행하기도 한다.
[2] 자티 : 카스트의 세분화된 계급으로, 지금은 수천개의 직업으로 세분화 된 것중 하나ㅡ예)빨래하는 사람
[3] 카스트는 크게 브라만(사제 계급), 크샤트리아(전사 계급), 바이샤(상인 계급), **수드라(노동자 계급)**로 나뉘며, 이보다 하위로 **달리트(불가촉천민)**가 존재한다. 지금은 하위계급이 더 세분화 되어 수천가지 자티로 나누어져 있다고 한다.
by 이창우
202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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