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외치는 선교를 생각해봅니다
2011-05-04
오늘날 한국사회는 잘못된 기독교의 폐단으로부터
자유롭지가 않습니다.
특히 최근 우리 개신교의 장로님이 다시 대통령이 된 이후로
이 왜곡되고 굴절된 사회의 모습은
더욱 심화 되었고 마치 이 나라가 신정일치의 국가인것처럼
시대착오적인 모습을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 것은 당연히 예수님께서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부조리한 나라의 모습의 원인이 된 한국 기독교의
근본주의적이고 교조적이며 세속적인 모습,
탈예수적인 우상화로 치닫는 그 범죄적이기까지한 타락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것은 기독교를 믿고 아니 믿고를 떠나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겨서 일련의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 출근 중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교회가 진정 선교를 꿈꾸고 이땅의 천국을 원한다면,
교회가 정녕 예수님의 몸된 교회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교회는 철저히 가난해져야하고 아무 세상적인 권력이 없는
힘약하고 가난한 존재가 되어야한다고.
그것이야말로 우리들이 그토록 외쳐대는 예수님의 방식이라고.
예수님께서는 얼마든지 자신의 가지신 능력으로
단숨에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존재였지만,
그 분은 철저히 가난했고 철저히 약한 존재로 머무셔서
모든 힘있는 것들, 돈있고 권세 있고 명망있는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멸시받고 천대받고 쫒겨 다니며
때론 숨어 지내셨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세상 누구도 가지지 못한 힘으로, 능력으로,
그 위대한 사랑으로, 뜨거운 가슴으로, 눈물로,
그리고 불굴의 정신과 위대한 말씀,
즉 로고스로 이 세상을 변화 시키셨습니다.
그 분은 하늘의 군대를 동원할 수 있다 하지 않습니까
세상의 모든 물질의 복의 근원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 분은 산상에서 수많은 군중들을 모아 놓고 셜교하실 때
요즘처럼 앰프 시설하나 없이 육성으로 설교하셨지만
수천 수만명의 힘들고 가난하며 매일의 삶에 찌들어 살던 외롭고
쓸쓸한 세상의 약자들, 우리의 이웃이요 형제들인 그 사람들이
그 말씀에 감동감화 받았습니다. 아니 예수님의 존재만으로도,
그들과 함께 있는 것 만으로도 위로받고 은혜받고 힘을 얻었지요.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막대한 돈의 힘입니까?
아니면 근사한 교회 건물의 힘입니까. 세상의 권력을 가졌습니까.
오늘 한국 교회가 대통령을 수렴청정하기에까지 이르렀지만,
그토록 지대한 권력을 지녔지만, 엄청난 교회 건물과 성도수,
천문학적인 교회 재정(이번에 사랑의 교회 성전신축을 보면서...)
으로 세상을 호령하며
거의 안하무인으로 정치인들을 좌지 우지하기 까지 하며
사회 여론을 호도하는데 까지 이르렀지만
한국 교회 100년이래 지금이야말로 가장 타락하고 가장 썩어서
어느때보다 사랑이 필요하며 용서와 화해가 필요하고
사회정의와 공평무사가 절실한 오늘날 이 세상에 대해서는
정녕 아무 것도 할 수도 없고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이나 받는
거대한 공룡같은 오만하고 편협한 또하나의 세상 권력,
우상이 되고 말았습니다.(순전히 제생각입니다)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입에 거품물고 가장 공격적인 모습으로
세상에 도전하며 끝없이 분란을 일으키고 화해와 평화는 커녕
분쟁의 씨앗으로 끊임없이 갈등을 양산하고 있는 한국 기독교.
단지 기독교인이었다는 이유로 조선을 침략한 왜군의 수장 고니시를
하늘 군대라 칭하며 이순신을 적그리스도로 규정하는 일부,
그러나 유수한 교회의 게시판 담당자 교역자가 버젓이 용납되는 한
여기에 예수님의 사랑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습니다.
오늘 한국 기독교가 말하는 예수님의 사랑은
세상을 향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자신만을 향한 유아적 수준의 사랑입니다.
\'나를 구원해 주시고, 나를 이뻐해주시고, 나를 잘살게 해주시며,
나를, 나를 나를..\'
전부 나에 대한 이기적인 사랑, 유치하기 짝이없는 미숙한 사랑입니다.
조금 더 발전했다하더라도 우리 교회 식구 정도일까요?
이런 가운데의 선교란 한낱 공허한 외침일 뿐입니다.
그와 같은 바탕에서의 선교는
그 선교 가운데 제아무리 힘든 육체적, 물리적 위험과
고난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예수님께서 받으신 고난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것이며
예수님과 관련하여 아무 필연성도 없는 고난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우리 기독교는 그 고난을 마치 예수의 고난과 동일시 하며
스스로 환상에 빠져 마치 자신들이 순교자라도 되는 듯 행동하고 말하지요.
이것은 단지 몽환적 수준의 자기 도취와 다름이 아니지요.이런 가운데의 선교의 결과들은 대부분 자기 신앙에 있어
지극히 자화자찬의 수단으로만 남아 교회를 키우고
살찌우는데나 기여할 뿐입니다. 그런 껍데기만 남은 경험들은
아무런 변화를 세상에 주지 못합니다.
선교는 사랑의 부산물입니다. 나는 이말을 사랑합니다.
아프리카 오지에, 가난한 서남 아시아지역에 사랑을 하러 가는 것이지
선교를 하러 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 스스로 사람다운 존재로
자각하고 일어설 수 있도록 내가 예수가 되어 찾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한마디도 하지 않아도, 교회를 말하지 않아도,
십자가를 보여주지 않아도 결국 그들로 하여금 저절로 깨치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님 방식의 선교라고 믿습니다.
눈만 뜨고 입만 열면 선교를 외치는 한국 교회는
먼저 예수님의 사랑을 회복해야합니다. 그리고 말보다는 행동과 실천으로
보여야합니다.
웃기는 예를 들어보죠. 어떤 뚱뚱한 사람이 뭘 먹을 때마다
다음부턴 꼭 곡기를 끊겠다 운동을 하겠다등으로
말로만 계속 떠벌이죠. 그러는 동안 자기가 먹는 변명을
합리화할수잇어 마음이 편안한거죠...쩝...
그러하기에 우리는 사랑을 먼저 회복하고 깨우쳐야
비로소 선교가 눈에 보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회복해야한다는 이 단순하고 뻔한 이야기에 식상하고
별 내용이 없는 것이라 치부하시는지요.
생각컨데 예수사랑의 가장 핵심 중 하나는 나를 버리고
남을 대신 채우는 것인데
그것은 곧 나와 다른 존재를 인정하는 것인데
과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처럼 나와 다른 존재들을 인정하고
귀히 여기는지 돌아 보아야 합니다.불교도와 이슬람교도들, 아니 이렇게 멀리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교회내에서 나와 생각이 다른 존재들,
성경을 나와 조금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들,
예수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다른 사람들에 대해 과연 나는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들을 진정 존중하고 인정하는 지..
과연 나는 서로 다른 사이에서 서로를 \'화평케하는 \' 존재인지. 내 약함에 강함되시는 주를 찬양한다 눈물흘리며 인상쓰며
찬양은 하면서 왜 교회가 세상적으로 강해지려 합니까.
왜 교회가 권세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까.
왜 교회가 재정적으로 부자가 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까?
(어제밤 대구에 학회갔다오다 서마산교회의 새로신축한 안디옥선교관
을 보았습니다. 보기에는 너무 좋았습니다.
도로변쪽으로 북까페겸 차도 팔고...어두운 밤을 밝히면서.)
진정 예수를 모르기 때문은 아닌지요.교인수가 적다고 마음 아파하지 말며
교인 수 늘리는 것이 교회 성장이라고
강박관념에 시달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철저히 가난해야 합니다.
철저히 힘없고 세상 빽없고 돈없고 가진 것이 정녕 없어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을 진정 의지하며 참되고 순수한 신앙으로 나아가며
예수님의 힘을 가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진정한 선교는 사랑의 부산물입니다. 볼수록 괜찮은 말입니다.쩝...
오늘 힘들게 쓴 이글이 짤리모 안되는데 너무 과격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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