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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박13일의 유럽비즈니스여행 기행문-정박사
2011-05-12 15:41:12
정종철
조회수   1323
지난번에 이어 세 번째 얘기를 나누고자 한다.

어제 오후 예배를 마치고 저녁 식사 후 잠이 들었다.

오늘 아침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13일 동안 방에서 잔 것은 고작 4일 나머진 비행기 버스 열차 소파 심지어 공항

바닥까지 ..... 그러다 보니 매일 코피가 났다.

 

밤11시가 되어서야 도착한 로마에 약속된 민박사장님이 나와 있었다.

민박비용이 너무나 비싸 교회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고 점심시간에 약속된 비즈니스 장소로 갔다.

 

로마의 거리는 지저분하고 오래된 옛 건물들이 그대로 잘 보존되었다.

약속 장소만 듣고 전차를 타고 갔다.

우리가 잘 아는 바티칸도시의 한 여행사 사장님의 사무실.

대충지도를 보고 길을 위치를 파악하고 두 번 묻고 정확한 장소에 도착했다.

잘생긴 사람이 나를 반겨 주었다.

 

나의 사업을 하기위해 하나님이 준비 된 사람을 만나게 해 주셨다.

우리의 만남을 축복하기 위해 로마 지회장님은 이태리 정식을 사주셨다.

아 이게 오리지널 이태리 스테이크구나 정말 맛있었다.

식사 후 커피 삽에 가서 사업소개 지사소개를 한 뒤 서로 잘해보자며 헤어졌다.

 

TV에서 보던 바티칸

부활절후라 수많은 순례자와 여행객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인산인해였다.

바티칸 좁은 성당을 한 바퀴 도는데 만 4시간 이상이 소요되어 기념사진만 찍고

콜로세움으로 향했다.

로마시내 전체가 하나의 건축 예술이었다.

잘 보존된 성터에서 로마의 병정을 만났다.

함께 사진 찰영을 해보고 싶어 물어 보았더니 선뜻 응해 주었다.

심지어 연출을 하며 사진을 찍었다.

잘 찍고 돌아서는 순간 \'헤이 하면서\" 5유로 (팔천원)을 달라는 것이다.

\'I am no money\" 했지만 결국 2유로를 주며 끝냈다.

그 옛날 로마시대나 지금이나 돈 밝히고 여자 밝히는 것은 여전했다.

 

콜로세움 원형경기장을 보면서 크레인도 없이 저 높은 건물을 어떻게 지었을까 궁금 했

다. 로마의 시민권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이 갔다.

날이 저물어 가고 이제 남은 유로는 20유로 (3만4천원)

공항으로 가서 24시간을 보내야한다.

 

지하철을 타고 공항으로 가려고 했지만 찾지를 못해 밖으로 나왔다.

도무지 어딘지를 모르고 있을 때 한 젊은 여인이 지나갔다.

국제 쌀 기구에 근무하는 여인은 유럽에서 태어나 한 번도 한국에 오지 않았지만

부모님께 한국어를 배웠다고 했다.

유태인의 교육이 이제 한국의 어머니들이 그 전통을 이어 너무나 희망적이었다.

 

지하철을 반대로 잘못 탓 다 우기며 공항으로 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다시

지하철을 타고 중앙역으로 갔다.

도심공항철도 타고 공항까지는 약 3만원 그냥타기로 했다.

무사히 공항까지는 잘 왔지만 이제부터가 문제다.

24시간 공항 안에서 대기해야 하는 시간

 

제대로 잠도 못잔 상황에서 뜬 눈을 보내야 할 상황 다른 공항과는 달리 의자마다

팔 받침대가 있어 의자에 자기는 힘든 상황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구석진 자리를 발견하고 쓰레기통 2개를 앞을 가리고 화장실에서 가져온 신문지를 깔고 더러 누었다.

두 가방은 벨트로 서로 묶고 혹시 자는 도중 누가 가져 갈까봐 다리에도 묶었다.

세상이 이처럼 편할 수는 없었다.

 

날이 밝자 마자 대한항공 제휴스카이라운지에 갔다.

내가 대한항공 VIP고객이라고 했지만 안 된다고 했다.

하는 수없이 맥도날드로 갔다.

 

어제 먹다 남은 햄버거를 꺼내어 먹으며 다리를 쭉 펴고

있으면 여직원이 와서 눈치를 주었다.

이리 가면 이리오고 저리가면 저러 와서 조금도 다리를 펴지 못하게 눈치 구덩이였다.

 

수속을 밝고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사실 해외 초보자는 스카이라운지를 이용 할 줄도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금방 라운지를 찾고 안으로 들어갔다. 인터넷이며 커피 빵. 땅콩 과자가 모두 무료다.

지친 허기를 채우며 메일을 확인 후 다음 비즈니스 장소인 태국의 수도 방콕으로 향했다.

 

비행기는 찬영이 찬휘가 있는 비엔나를 경유하고 태국에 도착했다.

방콕에는 합포CBMC 동료들이 10년 만에 처음 해외 단합대회 나왔다.

어렵게 연결된 호텔만 알려주고 전화는 끊겨다.

호텔이 300개나 넘는 이곳

 

난 내 자신을 실험 해보기로 했다.

택시를 타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 공항 안내 데스크에 대충 위치를 파악 후 도심공항을 타기로 했다.

내가 온다는 소식을 알았는지 경찰들이 짝 갈려 있었고 역마다 요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표도 끊지 않았는데 타라고 해서 탔다.

철도 안에서는 앙케이트지를 주며 조사에 응해주길 바랬다.

정답도 없는 객관식이라 성의껏 표시 해주고 볼펜세트 선물로 받았다.

나가려고 하는 순간 여기는 내릴 때 표를 내야했다.

 

다시 걸어서 지하철을 타고 호텔 근처에 내려 묻고 또 묻고 걸어서 우리의 일행이 있는 호텔에 도착했다.

마침 일행들은 관광을 마치고 호텔로 들어오던 중 모두들 나를 반갑게 맞이하며 고생했다며

 

비즈니스는 잘 했냐며 등 모두들 나를 위해 기도를 많이 했든 것처럼 보였다.

방콕의 한인 타운 식당에서 김치랑 한국음식을 배불리 먹고 다음날 영화에 나왔던 콰이강의다리에 갔다. 가는 관광차 안에서 서울에서 시무하는 목사님 가정을 만났다.

부모님이 교회 사찰이어서 평생을 교회에서 보낸 목사님은 술도 담배도 직장도 오로지 교회생활만 전념해서 사회생활은 모른다고 하면서 지식을 통한 간접체험만 가지고 설교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저녁에 준비된 사업 파트너를 호텔방에 모셔서 사업에 모든 과정을 잘 설명하고 잘 해보자며 헤어졌다.

 

당초 버스를 타고 여운식 선교사님가정에 가려고 했으나 시간상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남은 경비는 태국 돈 10만원

하는 수없이 여행사 친구에게 라오스 인근 공항 우돈타니 왕복 티켓을 구하여 핸드폰 문자로 예약번호를 받았다.

태국에서 라오스까지는 50만원이 넘지만 국경 근처까지는 26만원이 소요되었다. 평상시 원만한 인간관계가 전화 한통으로 해외에서도 통해 기분이 매우 좋았다.

회원들의 격려금 10만원 이제는 기분 좋게 떠날 수 있었다.

 

우돈타니 공항에 나를 위해 대기된 벤 봉고를 타고 국경까지 갔다. 기사에게 용돈 200밧트 (팔천원) 주며 천천히 가자고 했다. 차안에 여행객 위장한 인터폴 요원들이 나를 경호하며 수도인 비엔티엔 국경에 도착했다.

 

비행기 안에서 무지개를 보았다. 그리고 하늘에서 구름 사이로 비치는 광섬 같은 빛은 라오스 땅에 새로운 희망을 보여 주는 듯 했다.

 

태국의 날씨는 무척 덥고 마치 찜질방에 있는 듯했다. 가는 도중 비가 내렸다.

주님 비를 그쳐 주소서 기도했더니 국경근처에 이러러 맑은 하늘을 보게 하셨다.

한국 고속도로에 차가 밀려 도저히 갈 수 없는 상황 시간은 없고 마음은 급해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더니 길이 열렸다. GOD(갓)길

 

태국국경에 라오스택시 기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수도비엔티안까지 40분 거리 30달러를 달라고 했다.

난 10달러하고 버티니 10달러에 국경 우정의 다리를 넘어 라오스 딸라싸니 터미널 까지 갔다. 기사와 난 영어 수준이 비슷해 내일 라오스 관광을 30달러 (3만원)에 합의하고 내일 내가 있는 곳으로 왔다.

 

도착한 라오스 마중 나올 사람은 보이지 않고 오토바이택시(툭툭이) 기사들이 때거리처럼 모여 가자고했다.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째 땡볕을 보니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

날은 어두워져 가고 급기야 한국에 전화를 걸었다. 박상진집사에게 SOS

곧이어 날 부른 소리 내가 버스를 타고 온다고 계속 터미널 안에서 기다리던 선교사님부부는

이제 안 온다 생각하고

버스를 타고 집에 가려는

순간 딸이 아빠 정집사님 2시간째 기다린다는

말을 듣고 버스에 내려 보니 잘생긴 동양의 카우보이가 서 있었다.

우리는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서로를 맞이하며 툭툭이를 타고 선교사님 집으로 향했다.

 

차맹렬 선교사님 집을 임시로 있는 선교사님 댁은 여러 용도에 쓰기

좋은 게스트하우스였다.

내가 온다고 모처럼 갈비를 사다가 꾸었다.

여선교사님과 함께 시장을 보러 갔다. 오토바이를

타며 우린 라오스 땅을 누비며 다녔다. 정말 그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형제처럼 웃으며 달렸다.

 

저녁식사를 한 후

그동안 있었던 유럽일정과 교회얘기 선교사님의 얘기를 서로 나누었다.

남 보기에는 선교사님 하면 보기 좋을지 몰라도 아무도 모르는 낮선 땅에 산다는 그자체가 왠지 쓸쓸한 생각이 들어 보였다. 찜통 같은 날씨에 도마뱀과 두꺼비가 시도 때도 없이 나오고

모기와의 전쟁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정말 사명 없이 올 수 없는 이곳 눈물 없이 하루를 버티기 힘든 이곳 인생의 마지막여정이 될 수 있는

이곳 라오스 주님의 뜻이 있어 이들을 불렀다.

라오스의 영혼을 사랑하고 제2의 여운식 박신자와 같은 믿음의 일꾼을 세우기

위해서다.

 

때론 왜 불러 을까 생각도 해보았다.

목사님의 평신도 사역 공부를 열심히 한 탓도

있겠지만 내가 볼 땐  라오스 현지인과 잘 어울리는 스타일 같다.

 

자기 전 교회를 위해서 서로를 위해서 기도를 했다.

마무리 기도를 박신자 선교사님의 눈물의 기도로 마치고 나의 라오스별장에서

첫 밤을 보냈다.

 

선교사님 하루일정은 스케줄에 따라 둘만의 새벽기도로 시작하여 언어학습과

유치원 사역에 착실하게 움직였다./ 오전  늦잠을 자는 동안 선교사님부부는

유치원에 경비실 방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모처럼 한국에서 왔다고 차맹렬 선교사님 부인이 점심을 준비했다고 유치원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갔다. 날씨가 더운 탓인지 멍멍탕이 나왔다. 식사 후 차를 한 잔 나누며 10년 동안 적자의 유치원을

유지해 오다 작년부터 하나님은혜로 흑자로 들어섰다고 했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며 힘겨웠던 지난 날 들이 짧은 대화 속에 느껴졌다.

차맹렬 선교사에게는 이들 부부가

때론 형님과 언니처럼 사도 바울의 좋은 동역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을 것이다.

 

오후에 어제 예약한 택시기가 분양을 불렀다. 택시는 아니고 스타렉스 중고차였다.

갈 곳 이라곤 사찰과 독립문 별로 없었다.

1000원 선글라스와 2500원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한 손에 야자수 물을 들고

이 곳 저곳을 둘러보았다.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스님들이 나와 있었다.

함께 기념 찰영을 하고 독립문으로 갔다.

들어서는 순간 라오스 전통 음악이 흘러 나왔고 분수대에서는 물줄기가 하늘로 향했다.

독립문 꼭대기에 올라 사방을 보면서 “내가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어둠의 권세는 물러 갈 지어다.

여운식 박신자 선교사를 통해 축복의 통로가 되어 달라고 기도 했다.

 

식사비용으로남집사가 준 5만원을 태국에서 분명 라오스 돈으로 환전 했는데

 여기 와서 보니 역시 태국 돈이었다. 여기서는 쓸 수가 없으니 양집사 맛있는 것 사 주라며 도로 주셨다.

심지어 한국에서 100만원 상당의 상황버섯을 주면서 목사님과 저희 가정것을 챙켜 주셨다.

목사님 덕에 선물을 받아 어디를 가든 목사님 옆에 앉아 있어야 대접을 잘 받는 사실을 해외 서도 확인했다.

 

어려운 형편 이었지만 그래도 선교지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교사의 마음을 이해 할 뿐 아니라 잘 못 오해 할 부분도 현지에 와 보면 모든 것이 이해가 되고 무엇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도와야 할지 알 수가 있었다.

우리가 선교지에 보내는 10만원이 선교지에서는 가뭄에 소나기와 같은 역할이라 볼 수가 있다. 가포교인들이 자랑스럽고 선교의 마인드를 가진 목회자와 이를 따르는 성도님들이 훌륭해 보였다.

 



 



세계 50개 도시를 돌아보았다 아직도

주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이 지구상의 사람들 그리고 축복받은 나라들이 교회를 술집으로,

이슬람회당으로 탈바꿈 하는 과정을 보면서 아버지의 속 타는 마음을 그들은 알까

하면서 기나긴 여정을 마쳤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준비 된 사람들의 만남과

나의 영업을 위한 유럽한인대회개최

나의 지친 몸을 위해 합포cbmc 회원들의 위안 방콕관광

라오스 나의 선교지 별장을 준비하신 하나님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준비되어 다고 생각하니 마냥 즐겁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기대가 되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혼.창.통이란 책을 보았다.

혼은 꿈이고 비전이며 신념이다. 하는 일에 목적의식 소명의식을 가지는 것이다.

혼이 씨를 뿌리는 것이라면 , 창은 거두는 것이다. 한마디로 창은 실행이다.

꿈을 현실로 바꾸는 과정이다.

통은 문자 그대로 통하는 것이다.

상대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서로의 차이를 존중해야한다.

우리 가포 젊은이들이 혼.창.통의 정신으로 세계를 품기 원한다.

생각이 바뀌면 세계가 보인다. 젊은이들에 간곡히 왜치고 싶다.

제발 영어 공부 좀하시라고, 영어회화 하나만 잘 해도 취직 걱정 할 필요가 없다.

 

누군가 나에게 인생이라 무엇이라 묻는 다면

인생은 한마디로 수업료라고 말하고 싶다.

모든 것이 공짜가 없고 죽는 그날까지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한 수 한 수 깨달을 때 마다 비싼 대가를 치르며 money를 지불 해야 한다.

“인생과 신앙생활은 거리 제한 없는 마라톤 경주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뒷심이 있어야 한다.

.때론 좌절되고 사방이 막혀 있는 상황에서도 하늘은 뻥 둘려있다.

우리가 기댈 곳은 나를 길러 주신 아버지 그리고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

오늘도 아바를 외쳐야한다. 목이 터져라 하고 아--바 아-----바

 


 

정박사올림

 

그동안 저를 위해 기도하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림벽지 홈피(www.bj1004.co.kr) 많은 이용바랍니다.

 

유럽 &아시아 그동안 사진첨부

현지인 여싸라비아 형님사진도 있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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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정청 2011-05-12 16:35:37
아주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사업이 하나님 은혜로 잘 풀리기를 기대하고 기도합니다. 아울러 글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정박사를 귀하고 요긴하게 쓰실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말로 표현 할 수가 없네~~ 정박사!!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박경환 2011-05-13 10:58:51
은혜로다~. 여행스케줄을 볼때 정녕 하나님의 은헤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소화해낼수없는 무리한... 가포교회의 그 어느누구도 흉내낼수없는 기발하고 기이(?)한 ... 당신을 奇人으로 인정합니다.
김소년 2011-05-13 12:41:41
모든 일정들이 라오스의 여운식,박신자 선교사님 방문을 위한 준비 일정 같은 느낌~! 지친 몸과 마음으로 선교사님 방문하고 오신 것 너무 잘 하신 것 같습니다. 살아 돌아온 정박사님 축하, 축하~ !
이항무 2011-05-13 14:30:56
기인보다는 그리스도인이 더 멋질거같은데요 ㅋ 자신의 기질을 따라 계속 전진하시기 바라고 욕심버리고 진실되게 가정과 교회를 잘 섬기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좋은 길을 여실 겁니다.
정다영 2011-05-13 19:53:28
학교에 있어서 아빠 배웅도 못해 드렸는데 ㅠㅠ 이렇게 재미있게 쓰신 글 보니 역시 우리 아빠에요!!^^ 제가열심히 공부할게요^^힘내세요!!! 사랑해요 아빠♥
박경환 2011-05-14 10:17:50
아~ 부럽다. 아빠가 글을쓰고 사랑하는 딸이 댓글 달고... 우리딸은 댓글은 고사하고 태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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